[기획인터뷰] ‘그림 그리는 재미’ 민화 전시회 작가 4인을 만나다 - 1회

가을 향기 물씬 나는 연희동 골목길로 접어들면 자리하고 있는 황창배미술관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오는 10일(토)까지 이루어지는 이 전시는 여느 미술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민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86학번 이화여대 동양화과 동기 작가들이 모여 만든 모임인 이화채색화연구회에서는 민화를 연구하고 직접 그린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며 대중들과 소통의 장을 열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늑한 갤러리 카페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며 알록달록 채색이 아름다운 민화의 매력에 푹 빠지고 나면 문득 가을이라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어떤 예술적 감성을 떠올리게 된다.

 

허서령, 차보경, 임수경, 박연옥 작가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허서령, 차보경, 임수경, 박연옥 작가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그러나 민화는 대중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심지어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다. 왠지 민화라 하면 서양화나 수묵화에 비해 천박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속화라 하여 궁중과 사대부에서 그려지는 그림과 구분되어 왔었고, 일제시대 이후에는 전근대적인 미개한 그림으로 취급되어 그런 대접을 받아 왔다. 현대에 들어서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우환, 김호연 등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고, 김기창, 권옥연, 황창배 등 한국의 주류 화가들에 의해서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화채색화연구회 또한 이런 노력에 기여하고 있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화채색화연구회는 소위 스스로를 ‘붓을 놓았다가 겨우 다시 잡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작가 16명이 구성하고 있다. 이들의 전시는 단순 미술 전시가 아니라, 민화의 부흥이자 작가들의 삶이 부흥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일종의 르네상스인 것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오래 소외받았던 민화와, 주부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바쁘게 사느라 붓을 놓았던 이십여 년 간의 인생이 주인공이 되는 르네상스. 그렇기에 그들의 작품은 예술과 삶 그 중간에 놓여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삶을 살아가는 향기가 난다. 오래 붓을 내려놓았기에, 다시 잡는 순간 풍기는 새로운 향기가 아닐까. 그 향기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열망과 꿈이 묻어나고 있다.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들과 민화 이야기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눠 보았다. 민화가 맞고 있는 현실과 민화가 예술로서 갖는 위치에 대해 진중한 답변을 듣기도 하고, 한편으론 민화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를 들어 보았다. 아직도 대학 시절 소녀 같이 수줍음과 웃음이 많은 민화 작가 넷을 만나보자.

 

- 네 분의 작가님 소개 간단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연옥 : 저는 박연옥이라고 합니다. 이화채색화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어요. 작업실에 다 같이 모여 활동하다보니 어쩌다 제가 맡아 해야 할 일이 생겨 이렇게 나름 중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웃음)

임수경 : 안녕하세요. 저는 임수경입니다. 졸업 이후부터 그림을 열심히 그린 건 아니지만 늘 열망은 갖고 있다가 박연옥 작가를 만나 민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주로 수묵 담채 위주로 공부해오다가 민화가 갖는 채색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어 뒤늦게 합류했어요. 모임에 들어온 지는 1년 정도 되었네요.

허서령 : 저는 허서령입니다. 이 모임의 초기 멤버에요. 3년 정도 있었지만 뭐, 종이를 몇 장 더 썼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차보경 : 차보경입니다. 저도 1년 정도 되었어요. 결혼 이후에 전공과 담 쌓고 살다가 우연찮게 친구네 화실에 놀러갔다가 시작하게 되었네요. (웃음) 학교 다닐 때 민화를 구경할 때도 참 좋다고 느꼈는데 이제 여유도 생겨서 박연옥 작가를 따라 민화의 세계로 한발 한발 들어서는 것이 마냥 즐거워요. 막 시작하는 단계랄까.

허서령 : 저 친구는 항상 가방끈이 짧다고 투정이죠. (웃음)

 

- 민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임수경 : 확실한 건 민화가 주류는 아니라는 점이에요. 저는 전공자이지만 민화는 흔하게 그려지는 것이라고 느꼈었어요. 중요성도 별로 생각해본 적 없고요. 학문적으로도 심지어 연구가 되어있지 않아요. 그런데 정말 우연히 그리다보니 깨닫게 된 거 같아요. 민화 자체가 행복한 그림이라는 말이 크게 와 닿더라고요.

허서령 : 이전에는 창의적인 작품만 하다가 본이 있는 그림을 그리다보니 뭐랄까, 하찮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점점 그 의미를 알게 되고 매우 소중해져요. 결혼 이후 오로지 아이와 남편을 위해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전혀 없었죠. 아이가 겨우 대학 진학을 한 후, 헛헛한 마음이 생기면서 인생도 그제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민화를 그때 접하면서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기게 되었어요. 인생의 정화를 시켜주는 어떤 의미들이랄까요. 민화로부터 오는 그림의 완성도도 느끼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인생 자체를 수도하는 느낌도 들어요. 우리 나이 대 여자들이 그리기에 참 좋다고 알리고 싶어요.

차보경 : 민화를 보는 순간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더라고요. 어릴 때 아는 선생님 집에서 ‘이조의 민화’라는 귀한 일본 자료집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나라 민화에 대한 책이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었다니 우습죠? 그 책을 지금은 구할 수도 없대요. 요즘에 그 복사본을 구해 읽는데 그때 기억에 젖어들더라고요. 늘 그런 뭉클한 마음으로 민화를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박연옥 작가가 항상 해봐, 해봐, 라며 잘 끌어주고 그러다보니 이렇게 민화를 그리게 된 거죠.

박연옥 : 작가가 창작의 세계를 열기 시작하면, 그 기간이 참 길어지고 고민하는데 오래 걸리게 돼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란 그만큼 어렵죠. 그러나 이미 완성된 작품을 모사하고 재구성하는 민화는 접하기에 참 좋고 나름의 장점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쉽게 아마추어들이 그 완성도를 느낄 수 있게끔 하는 아주 좋은 원천 아닐까요?

 

- 이 모임의 구심점은 사실 박연옥 작가이시잖아요. 작가들이 각각의 개인성을 깨고 나오도록 한 그 과정이 궁금한데요.

허서령 :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봐주고 많은 도움을 줘요. 같은 동료보다는 선생님 같은, 우리를 키워주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각자 집에서 아이들만 키웠는데 모임을 가지면서 27년간 묶여 있던 손을 풀어준 셈이죠. 그 세월을 회복시켜준 고마운 친구예요.

차보경 : 무엇보다도 우리의 시작을 열어준 존재라고 생각해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시작을 열어줬으니 반이나 해준 거나 마찬가지죠. (웃음) 그리고 그림을 바라보는 안목이나 기술적 측면을 친구들과 교류하며 성장하게끔 만들어줬죠.

임수경 : 리더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참 많잖아요. 심지어 우리는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다보니 또 나름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본인이 배웠던 정보나 민화에 대한 테크닉 등을 잘 알려주고 대외활동의 장도 열어주었어요. 그런 힘든 일들을 해내는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소중한 친구라고 할 수 있죠.

<2회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