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사찰 VS 제재완화 이견 여전, ‘빅딜’ 조율 난항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한동안 교착 상태에 들어갈 전망이다. 돌연 연기된 북·미 뉴욕회담으로 비핵화 논의는 ‘장기전’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된 것은 북한이 비핵화 상응조치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협상 전략으로 풀이되지만 한동안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살펴봤다.

 

 

북한과 미국의 고위급 회담이 연기됐다. 미국은 회담 일정을 확정한 뒤에도 ‘급할 것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대북제재 완화 등 별다른 상응조치를 언급하지 않았고 이에 불만을 느낀 북한이 회담 연기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회담 연기는 북한의 뜻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국에서 받은 설명으로는 북측이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득환 외교부 부대변인도 “미측은 이번 회담 연기를 알려오면서 ‘북측이 일정이 분주해 회담을 연기하자 이렇게 알려왔다’고 전해 들었다”며 강 장관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북한이 일방 통보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순조로울 것 같았던 비핵화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됐다. 이번 회담 연기는 핵시설 사찰·검증을 요구하는 미국과, 제재완화 등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차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는 다른 날짜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서두르지 않는다. 정말 서두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재는 계속되고 있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얻어낼 것은 얻은 만큼 ‘속도조절’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회담이 전격 취소된데 대해 핵사찰과 제재완화를 둘러싼 양측의 이견을 핵심 이슈로 꼽는다. 뉴욕타임스는 '모래수렁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이로써 비핵화 협상은 미국의 시간끌기와 북한의 압박전략 속에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초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는 만큼 북미협상은 앞으로도 몇 번 고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협력사업 차질

북·미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된 데 대해 북한이 비핵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협상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일정 조율을 위한 지연으로 알려졌지만, 북측이 이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북·미는 당초 고위급회담을 열고 비핵화 실행조치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주고 받는 '빅딜'을 논의할 것으로 약속했으나, 회담 개최 하루 전 일정이 전격 연기됐다.

양국이 조율 중인 '비핵화-상응조치' 이견이 극대화 돼 결국 협상이 진흙탕에 빠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잡을 것"이라며 "전적으로 일정을 잡는 우리의 능력에 관한 문제다. 그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북·미는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제재 해제'로 가기 위한 1단계 카드를 놓고 이견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됐다.

무엇보다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에 나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이번 고위급회담을 이른 시일 내 갖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미국이고, 앞서 무산된 북·미 실무협상도 북측이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아직 회담이 아예 결렬된 것은 아니어서 북·미 간 이결조율을 거치며 대화 기조는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 어느 쪽이 협상의 판을 흔들려는 의도보다는 신중하게 숨고르기는 쪽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제 화두는 북·미대화가 언제 재개될 것인지로 초점이 모아진다. ‘서두를 것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중간선거라는 미국의 중요 정치일정이 종료되고서 나왔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북한의 '대응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제재완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검증된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제재가 유지될 것'을 강조하는 등 회담 예정일을 앞두고 북미간 장외신경전은 치열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내년초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속도조절’을 언급했다. 조기에 후속 대화가 개최된다면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대타결을 향한 2개월가량의 준비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일정이 잡히지 않는다면 미국이 강조하는 북핵 사찰·검증과 북한이 중시하는 제재 완화 등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장기전에 진입할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화의 일방이 무너뜨린 것이라고 하긴 어렵다. 멀고 먼 길을 가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북·미 고위급 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연내 철도 착공식 등 남북 협력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국의 회담 준비상황에 대해서 여러 레벨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다”며 “남북 채널을 통해서도 협의가 재개될 수 있도록 촉구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언제쯤 다시 돛을 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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