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지난주에는 우리 시대의 전사(戰士) 시인이자 민중 시인이던 고 김남주 시인의 24주기 문학제가 열렸습니다. 고향이자 생가가 있던 해남의 김남주문학기념관에서 행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도 바쁜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금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살아 있던 시절, 형님 아우라 칭하며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인정으로 보거나, 그런 위대한 시인의 문학제에는 반드시 참석하여 그의 시를 기리고 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졌어야 했건만 그러지 못한 죄스러움을 이기기 어려웠습니다.  

 

박석무
박석무

 

그래서 뒤늦게라도 그를 생각해보고 또 그의 뛰어난 시라도 읽어보고 싶어서 그의 시선집인 『꽃 속에 피가 흐른다』(창비, 2004)라는 책을 찾아 몇 편의 시를 읽으며 그와 지내던 그 막역했던 시절도 회상해보고 탁월한 그의 시와 시 정신에 마음을 기울여보기도 했습니다. 1973년 이른바 「전남대학교 함성지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연루되어 그와 나는 함께 유신시대 악법의 첫 손님으로 감옥에서 생활하던 생각이 떠오르고, 1980년 5·18로 내가 구속되어 광주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그는 이른바 「남민전사건」이라는 일에 걸려들어 우리는 또 함께 81년 1년을 교도소에서 살았습니다.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고, 또 세상과 나라에 대한 많은 걱정을 하면서 긴긴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되자, 묶이고 갇혀 살던 그 처참한 생활이 생각나고, 그 부자유와 그 불편이 몸서리쳐지는데, 남주의 시를 읽으니 더욱 마음이 서러워졌습니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몇 구절 

 

꽁꽁 묶여 광주교도소에서 다른 교도소로 이감 가던 버스에서 읊었던 시로 보이는데, 갇힌 사람의 서러움이 이 이상 더 절실한 시를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오랜 유배살이로 갇혀 살았던 다산 선생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을바람 흰 구름에 불어

 푸른 하늘 가린 것 없구나

 이 몸도 갑자기 가볍게 느껴져

 훌쩍 날아 세상으로 나가고 싶네

 

 秋風吹白雲 

 碧落無纖?

 忽念此身輕

 飄然思出世

 

 「백운(白雲)」  

 

유배살이가 지겨워 바람에 흘러가는 흰 구름처럼 세상으로 훌쩍 떠나고 싶던 다산, 유배살이 초기 포항 곁의 장기에서 읊었던 시인데, 그런 마음으로 18년의 귀양을 살았으니 그의 닫힌 생활은 얼마나 비참하고 서러웠을까요. 

자유를 잃은 서러움, 묶이고 갇혀 남의 감시 아래서 살아야 하는 생활, 역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주와 함께 감옥을 살던 어느 가을, 차창 밖으로 언뜻 보이는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면서 ‘저 미치게 푸른 하늘’ 아래서 우리는 이렇게 갇혀만 살고 있다는 서러움을 토로하던 그 시절이 다시 간절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남주가 간지 24년, 추모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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