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에 묻힌, 슬픈 전설이 되어간 두 남녀
국화에 묻힌, 슬픈 전설이 되어간 두 남녀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8.11.1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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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고달프고 애절했을까.

오랜만에 고향땅 매산을 갔다가 문득, 갑자기, 불현 듯,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나 생뚱맞은 생각이어서 나 자신도 놀랐다. 국화꽃 향기가 너무 진해서 그만 취해 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느닷없이 그런 생각을 먼저 했고, 그리고 주인공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누구라고 딱히 특정할 수 없는 다수의 마을 사람들.

 

통통방아 소리가 들리는지
통통방아 소리가 들리는지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아마도 거기 어디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나의 순수와 그 시절이 묻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마냥 달콤한 것만도 아니다. 달콤은커녕 지독한 고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은 고통으로 머물지 않고 달콤한 그 무엇인가로 치환돼 간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고향이란 단어와 그 공간이 갖는 매력인지도 모른다.

내 나이 아마 열 살 이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고인돌 공원으로 널리 알려진, 거대한 바위와 작은 바위와 더 작은 돌들이 마치 조각 작품처럼 여기저기 도처에 솟아나 있는, 사람이 흙을 일궈먹고 살기에는 너무도 척박한 땅 우리 마을 매산, 거기 어디 우리 집 앞에 참외밭이 있었다. 등에 아이를 업은 엄마와 그녀의 시어머니가 하루 종일 땡볕 속을 기어다니다시피하며 돌을 파내고 똥거름을 주고 해서 일궈가는 참외밭이었다.

가끔은 남자가 나와서 두 여인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일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봐도 그의 행동거지는 굼뜨기 짝이 없어서 병자 같았고, 가까이서 보면 혈색을 하나도 느낄 수 없는 것이 마치 하얀 종이로 만든 인형 같기도 하고, 만화에 나오는 유령 같기도 해서 쳐다보고 있기가 어려웠다.

오래지 않아 그 남자는 꽃상여를 타고 산으로 갔다. 가는 길이 하필 우리 집 앞 그 참외밭 두렁이어서 펄럭이는 만장과 꽃상여를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었다. 어노, 어허어-노, 하는 식으로 들리는 구슬픈 상두꾼 소리가 너무 서러워서 눈물을 철철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거니와, 신기하게도 그 해 가을 새로운 한 가족이 우리 마을로 이사를 왔다.

 

누가 그 시절을 알까
누가 그 시절을 알까

 

새로운 가족이 들어오면서 우리 마을은 갑자기 문명사회가 되었다. 그 가족의 가장 아저씨가 이발사이면서 방앗간 기술자이기도 했다. 손으로 있는 힘껏 바퀴 같은 것을 돌려서 발동을 거는 통통방아 소리가 무시로 들렸고, 명절 같은 때 십리 가까이나 걸어가야만 이발 한 번 할 수 있었던 우리는 이제 아무 때나 “이발하러 가자”하고 집을 나서면 금방 이발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통통방아는 방아만 찧은 게 아니었다. 비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돌과 자갈투성이 천수답이 태반인 우리 마을에서 통통방아는 아주 훌륭한 양수기가 되어주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에 가득한 물을 보면서도 그것을 끌어다 쓸 도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시절에 통통방아가 마을에 들어 왔으니, 다소 과장을 하자면 아주 그냥 신세계가 열린 셈이었다.

게다가 그 아저씨는 방아와 이발 기술만 있는 게 아니었다. 태풍 같은 것으로 집이 망가지면 뚝딱뚝딱 금방 복원시켜 놓는 신기한 기술도 있었고, 자전거와 라디오를 동시에 갖고 있는 유일한 집이기도 했으며, 소를 몰고 나가 쟁기질을 하면 어느 상일꾼 못지않게 일처리를 잘해낸다는 것으로도 명성이 점점 높아져 갔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일러 방앗간집이라 하기도 하고, 이발소집이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기술자네라 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웃사촌에 대한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타지에서 들어온 까닭에 외양으로 정을 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정이 많다는 것이 느껴졌다. 길거리에 퍼질러 앉아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달려가서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것 정도는 기본이었고, 이웃에서 뭔가 까탈스런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일을 뒤로 미루고 달려가서 해결하기를 마치 직업처럼 하고 있었으며, 이웃 간에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또한 달려가서 뜯어말리고 화해까지 시키느라 막걸리 값을 쓰기도 했다.

 

그때는 없었던 다리
그때는 없었던 다리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가 하는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물론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따위 허황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낮은 음성으로 조곤조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는 식의 매우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마을 이장으로 추대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이장으로 앉힐 것인가.

그랬다. 그는 우리 마을에 이사를 온 지 삼 년도 채 안 돼서 이장을 맡게 되었다. 우리 마을은 한때 이장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던 시절이라 관공서에 볼 일이 생기면 이장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고, 때문에 이장이 마을 사람들 전체의 인감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못된 이장이 인감을 멋대로 사용해서 막대한 금액의 대출을 받아 가지고 자기 아들한테 줘버렸다. 그 바람에 마을 전체가 차압을 당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등의 수난을 십 년 가까이나 겪어야 했다.

그 사건 이후 마을 사람들의 이장 선출에 대한 기준은 매우 까다로워져 있었다. 아무리 가까운 일가친척이라도 평소의 언행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이장 자리만은 절대로 맡기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이사를 온 그 남자는 세상천지에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도덕군자였기에, 이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기기에 모자람이 하나도 없다 여겼다.

 

마을 시정이 있던 자리
마을 시정이 있던 자리

 

한편 남편을 폐병으로 잃고 시어머니의 구박은 구박대로 받아가며 어린 남매를 키워가는 참외밭 여인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 자신이 슬프다거나 힘들다거나 고달프다는 따위 얘기를 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아이나 업고 다녀야 할 등에 똥지게를 지고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는 등 남자들도 힘들어 하는 일을 피하지 못하고 해야만 하는 그녀의 삶은 철부지 어린아이들의 눈으로도 팍팍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새로 선임된 이장의 넓은 오지랖은 당연히 참외밭 여인에게도 미쳤다. 쟁기질 삯이 없어서 삽과 괭이로 천수답을 일구는 참외밭 여인이 싫다는데도 반강제로 밀어내고 쟁기질을 해주는가 하면, 극심한 가뭄으로 벼가 말라죽어갈 때는 통통방아를 끌고 와서 이런저런 그럴싸한 이유를 대 가며, 그러니까 참외밭 여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논에 물을 채워주는 등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선행을 베풀었다. 그러면 여인은 시어머니의 허락을 구한 다음 없는 반찬이나마 정성을 다한 밥상을 차리는 방식으로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내고자 애를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당시의 이장은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이성에 대한 연민의 정은 오래지 않아 사랑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것을.

 

여기 어디에 참외밭이 있었더란다
여기 어디에 참외밭이 있었더란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두 사람의 관계가 명실상부하게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도 못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이장의 태도는 마을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아이가 다섯이나 되는데도 아내를 바라보는 그 눈길이 아직도 반짝반짝 빛난다는 둥의 얘기가 엄마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도 가정적이고, 그렇게도 애처가인 남자가 어찌 차마 ‘가난한 과부’에게 사심을 품을 수 있으랴.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돼 가고 있었다. 누구도 뭐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게 남녀관계라 했던가. 당사자들도 아마 그렇게 돼 가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을 몰랐을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느릿느릿, 가랑비에 젖어드는 옷처럼 물들어가는 자기 자신의 마음이 이상하다고 가끔 생각은 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흠뻑 젖어버릴 줄은 꿈에서도 몰랐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 또한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의 거리가 차근차근 좁혀져 간다는 것을 눈치 채지는 못했다.

어느 하루 밤중에 농약 소동이 일어나고 난 뒤에서야, 그것도 매우 더디게 조금씩 그들의 사랑은 밝혀져 갔다. 남편도 없는 여인이 임신을 했고, 여인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그 사실을 숨기고자 했지만, 절로 터져 나오는 입덧까지 숨길 수는 없어서 시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고, 겁먹은 며느리는 그만 죽자 하고 농약을 마시려 하던 중에 시어머니가 그것을 발견하고 벌어진 소동이었다.

한밤중에 벌어진 느닷없는 소동에 마을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크게 놀랐다. 똥지게를 지고 엎어져도 울지 않고 삶을 회의하지도 않았던 여인이, 그렇게도 부지런히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열심을 다했던 여인이 농약을 마시고 죽으려 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일단 놀라서 입을 쩍 벌린 채 고개를 회회 내둘렀고, 자살을 소망한 이유가 원하지 않은 임신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고, 임신의 한쪽 당사자가 그토록 존경을 받던 이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아예 다들 넋을 잃고 말았다.

 

저기 어디에 그녀의 천수답이...
저기 어디에 그녀의 천수답이...

 

믿음이 크면 배신감도 크기 마련이었다. 세심한 이유나 원인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밝혀진 결과만을 놓고 사람들은 생각했고, 판단했고, 비난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장의 지위는 이제 아주 몹쓸 인간으로 급전직하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람으로 치지도 않는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없이 내놓았고, 그의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 또한 발견하면 멀리서도 침을 뱉었다. 더 이상은 마을에서 얼굴 보며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얘기가 터져 나오고 있을 즈음, 그들 가족은 어느 하루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이장 가족이 마을을 떠난 뒤에 마을 사람들은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이 하나씩 둘씩 지난날의 이상했던 점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이장이 어느 하루 남의 보리밭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고 사방을 둘러보고 있어서 그때는 거 참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참외밭 여인이 바로 옆에 있었던가 보다, 라는 이야기서부터, 참외밭 여인이 어느 날 한밤중에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러 들어가듯이 살금살금, 잰걸음으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더라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한두 가지씩 두 남녀에 관한 기억을 새롭게 재해석해서 어려운 퍼즐 맞추기를 완성해 나갔다.

한편 상상도 못한 임신을 했다가 농약 소동과 함께 유산을 한 여인은 한동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에 대한 얘기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고 가만히 집안에 웅크리고 있다는 추측성 얘기만 무성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그녀가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는 얘기가 들렸다. 마을을 떠난 그녀가 서울의 어느 집에서 식모살이를 한다는 얘기가 들린 것은 그 뒤로도 수 년이 지난 뒤였다.

 

참외밭 여인이 지금 여기에 없다 해도...
참외밭 여인이 지금 여기에 없다 해도...

 

쫓기다시피 마을을 떠난 이장은 부산에서 공사장 날품팔이를 한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파트 공사장 비계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는 얘기가 들리고, 다시 얼마 뒤에는 그만 죽고 말았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마을 사람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다음 천천히, 느릿느릿 망각의 강을 건너 어딘가로 사라져 갔다.

그랬다. 그들의 사랑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의 입에서도, 그 어떤 자리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혹시 모르겠다. 두 명 이상 모여 앉았다 하면 온갖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엄마들만의 자리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등장하고 있었을지도.

그 뒤로 흐른 세월이 얼마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기라도 한다면, 나는 아마 그때의 어른들은 대부분 다 돌아가시고 딱 두 분만 남아서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중이라고나 말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세월은 엄청나게도 많이 흘렀다. 마을 사람들의 삶을 그토록 팍팍하게 했던 크고 작은 바위들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 고인돌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참외밭 여인의 자갈투성이 참외밭을 포함한 각종 전답들은 고인돌공원이란 이름으로 꽃 장식을 하고 관광객들을 유혹해 들이고 있으니, 그 시절 그 마을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처연하기 그지없었던 두 남녀의 상열지사를 문득, 갑자기 회고해보지 않을 수 없으리라.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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