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 지음/ 문학동네

 

일평생 짙푸른 망망대해를 동경하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굴곡진 인생사를 사랑해온 작가 한창훈의 신작 장편소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가 출간되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닷사람들이 뿜어내는 생생한 활기를 소설화하여 ‘한국의 헤밍웨이’로 불리기도 하는 작가의 이번 소설은, 전작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고독감은 깊어졌고 회상하는 시선은 더욱 먼 곳을 향한다. 무엇보다 작가는 인간의 야무진 생명력보다는 소중한 존재의 죽음과 그후 남겨진 이들의 삶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생의 순간들을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이제껏 작가가 그려온 어떤 장면보다도 그 자신의 삶에 가까이 닿아 있는 듯하다.

26년간 소설을 써온 작가로서, 태어나고 자란 거문도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섬사람으로서 삶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쓴 듯한 이 정갈한 장편소설은 2018년 여름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인기리에 연재되며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마치 이별을 준비하듯이, 한창훈은 이제까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모든 이야기를 이 한 권의 소설 속에 꾹꾹 눌러담았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는 어린 왕자가 다시 한번 지구에 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을지 상상하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이어 쓴 소설이기도 하다. 한창훈은 생텍쥐페리가 남긴 사소한 설정 하나하나를 작품으로 끌어와, 어린 왕자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복원해낸다. 인간의 잃어버린 순수를 상징하는 어린 왕자와 함께하는 섬마을 일상을 따라 읽고 있자면 우리의 마음도 절로 맑아진다. 그런데 사막에서 생텍쥐페리를 만난 후 8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지구를 여행하는 어린 왕자의 눈에 비친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이 별에서 어른들은 여전히 이기심 넘치는 속물들이고, 생텍쥐페리를 죽게 한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면 어린 왕자는 얼마나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일까.

이 소설에서 어린 왕자가 생텍쥐페리와의 추억을 더듬어보기 위해 사막을 찾았을 때, 이 우려는 실현되고 만다. 한창훈은 삶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과 묵직한 사유가 담긴 문장으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밝힌다. 그리고 특유의 애수 어린 절절한 문체로 어린 왕자와의 또 한번의 이별을 먹먹하게 그려낸다. 과거의 잘못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는 미운 지구별의 모습을 재확인한 어린 왕자를,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는 서로의 소중함을 모른 채 반목하고, 홀로 남고서야 뒤늦게 후회하는 우리에게 한창훈이 보내는 직설보다 뭉클한 우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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