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스웨덴 정치가 재밌게 돌아간다. 한국에서는, 또한 비슷한 정체를 지닌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일이 지금 스웨덴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웨덴에서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던 것이 지난 9월 9일이다. 이미 2개월이 훌쩍 지나가고, 3개월이 다가온다. 그런데 스웨덴은 아직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스웨덴은 내각제다. 즉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총리와 장관 등 정부를 구성한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스웨덴의 원내 7개 정당 중 과반을 차지한 정당은 없다. 이른바 헝 의회(Hung Parliament)다. 내각제 국가에서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는 의회를 일컫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집권당도 없고 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 그래서 유럽의 내각제 국가에서는 이런 경우 연정을 통해 정부를 구성한다.

 

울프 크리스텐손 – 지난 14일 총리 인준이 부결됐다. 보수당 울프 크리스텐손이 스웨덴 총리가 되는데 실패한 것이다.
울프 크리스텐손 – 지난 14일 총리 인준이 부결됐다. 보수당 울프 크리스텐손이 스웨덴 총리가 되는데 실패한 것이다.

 

스웨덴은 최근 계속 헝 의회였다. 그래서 연정이 계속된다. 지난 2006년과 2010에는 보수당(M)과 중앙당(C), 자유당(L)이 연정을 이룬 보수연정이 집권했다. 2014년에는 사민당(S)과 녹색당(MP)이 연정한 진보 적록연정이 정부를 구성했다. 정체성이 비슷한 정당 간의 소연정이다.

지난 9월 총선이 만들어낸 스웨덴의 의석 분포는 총 349석 중 사민당(S) 101석, 보수당(M) 70석, 스웨덴민주당(SD) 62석, 중앙당(C) 31석, 좌파당(V) 28석, 기민당(KD) 23석, 자유당(L) 19석, 그리고 녹색당(MP) 15석이다. 어느 정당도 과반인 175석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연정을 해야 하는데 연정에도 문제가 있다. 두 달 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지만, 사민당을 중심으로 한 사민계 진보진영(S+V+MP)이 합쳐도 144석으로 과반에 턱없이 부족하고,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비사민계 보수진영(M+C+L+KD)이 합쳐도 143석 밖에 안된다. 그러니 정부 구성의 키는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에게 있었다. 하지만 사민계든 비사민계든 그 누구도 스웨덴민주당과의 연정을 거부했다.

그런데 사태는 묘하게 진행됐다. 지난 14일 국회에서는 보수당의 당수인 울프 크리스테르손을 새 총리 후보로 내세워 총리 인준안을 상정했다. 보수당은이 연정 파트너로 정하지 않았지만 스웨덴민주당이 알아서 그를 지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인준안은 부결됐다. 보수당(70표)과 스웨덴민주당(62표), 그리고 기민당(22표)이 찬성했다. 하지만 그 표는 154표에 불과했다. 반대가 195표였다.

 

의회 – 총리 인준안을 투표하고 있는 스웨덴 의회
의회 – 총리 인준안을 투표하고 있는 스웨덴 의회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은 물론,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중앙당과 자유당이 반대한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의 지지를 받았다는 이유다. 중앙당과 자유당은 보수의 기치를 내세운 정당이지만 신나치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반이민 반난민을 내건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과는 뜻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러다보니 스웨덴의 정부 실종 사태는 장기화되고,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 정가에서는 결국 다른 방식의 연정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즉 진보와 보수의 정당간 대연정이라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번 총리 인준안을 봤을 때는 사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연정에 중앙당과 자유당이 합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스웨덴 정가에서는 안드레아스 놀런 의회 의장은 스테판 뢰벤 현 총리이며 사민당 당수나 중앙당의 아니 뢰프 대표를 총리 후보로 내세우고 인준안을 다시 상정하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전한다.

14일 인준안 부결 사태를 보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어차피 보수당은 자격을 잃었고, 스웨덴민주당 임미 오케손을 후보로 내세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뢰벤과 뢰프 두 사람 모두 또 다시 부결되면? 스웨덴 법은 3번의 총리 인준이 모두 부결될 경우 총선거를 다시 실시하게 한다. 즉 사상 처음으로 총선 재실시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초유의 혼돈 상태에 대해서 스웨덴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극우정당에게 62석을 안긴 것으로 인해 벌어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스웨덴 시민들은 “그게 바로 시민들의 뜻”이라고 말한다. 스웨덴 정치권이 그 동안 안일하고 나태했으며, 정신 못 차리고 방임했다는 경고라는 것이다.

 

투표 결과 – 총리 인준안은 찬성 154, 반대 195로 부결됐다.
투표 결과 – 총리 인준안은 찬성 154, 반대 195로 부결됐다.

 

스웨덴 정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투명하고 선명하다. 민의를 잘 반영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도 부족하다는 게 시민들의 인식이다. 언제나 제1당인 사민당은 무능하고, 언제나 제2당인 보수당은 안일하다는 생각이다. 나머지 정당들도 제 할 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당들끼리 연정 꾸려봐야 시민들의 삶에 보탬이 안된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웨덴민주당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시민인 요나스 틸베리손은 “나는 스웨덴민주당에 동조하지 않지만 그들에게 표를 줬다. 사민당의 무능과 보수당의 안일함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서다”면서 “스웨덴민주당에 표를 준 것은 현명하지 못한 어리석음이었지만, 어쨌든 정치인들이 무언가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보기 나쁘지 않다”고 정치권에 일침을 가한다.

스웨덴의 정치 평론가인 미카엘 구스타브손은 “스웨덴 정치는 자정 기능을 작동한 것이다. 어떻게든 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재선거를 통해 의석 분포를 달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신의 표로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다. 그건 스웨덴 정치에 분명하고 효과적인 경고였다”고 말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를 하는 스웨덴은 각 당의 의석수가 그대로 민심을 반영한다. 정당의 의석 점유율과 정당의 지지율은 거의 동일하다. 스웨덴민주당에게 준 표는 스웨덴 시민들의 민심이다. 그것이 스웨덴민주당에 동조해서 준 표이든, 아니면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정부 구성의 난맥상을 유발시키기 위한 표이든 민심을 보여준 것이다.

스웨덴의 민주주의는 그래서 아직도 성장 중이다. 철저히 시민의 의지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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