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 지음/ 창비

 

최근 들어 부쩍 판사, 변호사, 검사의 저서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종종 등장하곤 한다. 엄격해 보이기만 한 법복 아래 숨겨진 그들의 인간적 면모에 독자들이 반전 매력을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는 판사로 일했고, 소설로 등단했고(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 지금은 방위사업청에서 일하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인 정재민 작가의 첫번째 산문집이다. 판사로서 마지막 재판을 진행하며 느꼈던 소회를 형사재판 과정에 맞춰 써내려간 책으로, 10여년간 판사로 일하며 느낀 무수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지금은 재판정을 떠난 전직 판사이자 작가로서, 현직 법관들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진솔하고 자유롭게 재판과 법, 일상의 정의와 법정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실제 법정에서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곳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해도 속으로는 함께 울고 웃는 판사의 마음을 따뜻하고 유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저자는 재판뿐만 아니라 가지각색 피고인의 삶도 들여다보며 딱딱하고 준엄할 것만 같은 법정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법정이야말로 가장 뜨겁게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곳임을 보여준다.

저자가 10여년간의 법관 생활을 그만두는 마지막 한해 동안 맡은 형사재판을 토대로 쓰인 이 책은, 독자들의 재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형사재판의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재판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면서, 독자들은 때로는 판사의 입장에서 정의와 양형을 고민하게 되고 때로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삶과 사람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특히 저자가 피고인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양형 문제를 꺼내들거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마녀사냥과 도덕주의 문화를 꼬집는 부분들은 제도의 문제를 넘어 인간에 대한 문제로 고민을 확장시킨다.

한국사회에서는 ‘좋다’ ‘나쁘다’라는 도적 잣대를 기준으로 쉽게 ‘마녀’를 지목하고 함께 돌을 던지는 여론몰이가 유독 심하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그토록 도덕을 따지면서도 막상 다른 사회에 비해서 더 도덕적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의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가 도덕을 꺼내드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주로 ‘나쁜 놈’을 지목하기 위해서다. 또한 그 도덕적 기준조차 자의적이어서,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부당한 청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출세하더니 변한 나쁜 놈’이 되고,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의 청탁을 들어주면 ‘부패한 나쁜 놈’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밖에 법적으로는 처벌이 아님에도 신체의 자유가 지나치게 많이 제한당하고 사회적으로도 명예가 크게 실추되는 ‘구속수사’ 문제, 기소권보다 위력적인 검찰의 불기소권 남용, 형사재판 과정에서 정작 사건의 피해자는 소외되는 지점 등을 속속들이 짚어내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법 제도의 불완전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의를 일깨운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재단하고 판단하고 형벌을 내려야 하는 극한 직업, 판사. 더구나 형사재판이라면 누군가의 목숨과 눈물이 걸린 일이라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끝내 칼을 들어야 하는 것이 판사다. 저자는 판사 생활을 통해 좀더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인간을 판단하는 삶이 아닌 인간과 부대끼는 삶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판사 시절에도 유엔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등 다양한 도전을 즐겼던 저자는, 또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해 결국 과감하게 재판정을 떠났다. 판사라는 직책을 용감하게 내려놓은 이유로 ‘사는 듯 사는 삶’을 말했던 저자는 여전히 인간과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판사로서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 범죄와 재판, 정의와 불의, 인생과 처벌을 끈질기게 고민한 저자의 이번 책은, 제대로 된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이 시대 독자들에게 분명 뜨겁게 가닿을 것이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