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그대로 의회에…왜 연동형 비례대표제여야 하는가
민심이 그대로 의회에…왜 연동형 비례대표제여야 하는가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12.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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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 정부의 신뢰도를 조사한 것을 보면 공공보건기관과 학교 기관, 그리고 시민단체 순으로 신뢰가 높게 나타났다. 그 뒤를 군대, 공기업, 민간기업, 경찰, 언론, 법원, 검찰, 공무원, 지방정부, 그리고 정부와 행정부가 이었다. 전반적으로 정부의 공공기관들의 신뢰가 낮게 조사됐다.

그런데 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신뢰가 낮은 곳은 바로 국회와 국회의원이었다. 표시된 18개 기관 중 국회의원이 18위, 국회가 17위였다. 또 지방의회가 16위, 지방의회 의원이 15위. 그러니까 18개 기관 중 선출직이거나 선출직들로 구성된 기관이 가장 낮은 신뢰도를 보인 것이다.

 

스웨덴 국회의사당 – 349명의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완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의해 각 정당의 득표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기 때문에 민심이 그대로 국회에 반영된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 국회의사당 – 349명의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완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의해 각 정당의 득표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기 때문에 민심이 그대로 국회에 반영된다. (사진 = 이석원)

그런데 왜 대한민국 시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투표라는 정치 행위를 통해 뽑은 이들을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의 선택을 신뢰하지 않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 시민들은 자신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과 정당을 선택했지만, 한국의 선거 시스템은 그런 시민들의 의지를 완벽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이 조사에서 알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화두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민주적 선거 결과가 실제 민심과 달라지는 왜곡현상을 바로잡자는 데서 시작한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지역구 선거를 위주로 정당 득표에 따른 비례대표제를 보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즉 300명의 국회의원 중 253명은 지역구 선거로, 그리고 47명은 정당 투표에서 얻어진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비례대표 형식이다.

그런데 253개(현행)의 선거구가 똑같은 인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동일하게 1명의 국회의원을 뽑다보니 심각한 민심 왜곡이 발생한다. 즉 인구가 67만 명에 이르는 서울 송파구도, 합쳐서 16만 명에 불과한 속초 양양 고성도 똑같이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러다보니 송파구의 민심과 속초 양양 고성의 민심이 정확히 국회로 반영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스웨덴은 어떨까?

스웨덴은 전반적으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등에 대한 신뢰가 대단히 높다. 오히려 민간기업이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물론 한국과 비교하면 그것도 결코 낮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공공이 민간보다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국회나 정부에 대한 신뢰는 대단히 높다. 최근 정부와 의회에 대한 신뢰가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난민 유입이나 주택난, 러시아에 의한 안보 위협과 복지 축소 등이 이유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정부를 구성하던 여당인 적녹연합이 많은 의석을 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다’는 것은 다분히 상대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어지간한 아시아 국가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의 다른 강대국들과 비교해도 정부나 의회에 대한 신뢰는 기본적인 선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이것은 의회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정부나 의회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시민 스스로가 선택했다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거다. 시민 스스로의 선택으로 꾸려진 의회, 그 의회에 의해 구성된 정부가 다소 잘못하더라도 시민 스스로가 그 책임감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스웨덴 시민들의 그런 생각은 어째서 가능할까? 스웨덴의 선거제도에 그 답이 있다.

내각제인 스웨덴은 완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개인에 대한 투표는 이뤄지지 않는다. 100% 정당에 대한 투표를 한다. 각 정당은 꽤 많은 비례대표 후보들을 공천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각 지역별로 정당에 한 표를 행사한다.

선거 결과는 정당 지지도와 일치한다. 각 정당은 득표율에 따라 349개의 의석을 분배한다.

지난 9월 9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노동당(사민당)은 28.3%를 득표해 100석, 보수당은 19.8%를 득표해 70석, 스웨덴민주당은 17.5%를 득표해 62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8.6%를 득표한 중앙당은 31석, 8%를 득표한 좌파당은 28석, 6.3%를 득표한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은 22석, 5.5%를 득표한 자유당은 20석, 4.4%를 득표한 녹색당은 16석의 의석을 얻었다.

시민들이 선택한 것은 8개의 정당이다. 원내 들어가지 못한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라는 정당까지 포함해서. 시민들이 선택한 정당은 다 다르지만, 결국 의회에 진출한 정당들은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의석을 가지기 때문에 설령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정당이라고 해도 포괄적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가운데 구성된 정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한국의 선거 제도의 손질은 불가피하다. 민주주의라는 탈을 썼지만 민주적이지 않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은 이미 국회의원 선거에서 효력을 잃고 있다.

얼마 전 ‘한 부모 가정 지원 시설’ 예산 60여 억 원을 삭감하자고 했다가 ‘비정한 국회의원’이 된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숱한 여론의 몰매를 맞았지만, 21대 총선에서도 ‘배지’를 탈 가능성이 높다. 지역구 예산 수백억을 잘 챙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5000만 시민들이 욕해도 13만 명 정도의 지역구민들이 그를 뽑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공공의 영역에서 투명성이 높은 사회이다. 국회의원들은 정직하고 거의 특권이 없다.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늘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보좌관 하나 없이 밤새워 도서관에서 입법을 위해 노력한다. 부러워하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짜 그런다. 거의 예외 없이.

그런데 그것은 스웨덴의 의원들이 한국의 의원들보다 정의롭기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한국이 완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가기에는 아직 길이 멀다. 하지만 현재의 선거제도를 손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한다면 지금보다는 민심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앉을 자리가 많아질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해서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은 하는 게 진짜 민주주의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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