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있구나…참, 다행이다
아직 남아있구나…참, 다행이다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8.12.0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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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탐방] 휘경동 ‘이경시장’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이경시장. 사는 동네와 가까워 자주 다녔다. 지금은 지하차도도 뚫리고, 지하철역도 새 단장하며 주변이 전부 재개발 지역이 됐다. 아직도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정답던 동네는 주민들, 상인들도 많이 떠나고 이제 삭막해진 느낌이다. 우연치 않게 그 앞을 지나다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던 이경시장을 발견하곤 기뻤다. 아직 남아있구나. 다행이다.

이경시장은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전통시장이다. 1974년에 개장했다. 주변에 대형마트가 많이 생긴 탓에 찾는 사람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지역민에게 다양한 식료품과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군데군데 문을 닫은 점포도 있으나, 현재 60개에 달하는 점포가 남아 있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한다.

 

외대역에서 내려 이경시장 방면으로 나간다. 역을 중심으로 외국어대학교 방면과 이경시장 방면으로 나뉜다.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까진 옛날 모습이 남아있다. 높은 건물이 많이 생기지도 않았고, 오래된 건물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점점 공사 현장들이 보인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들이다. 여느 시장들과 마찬가지로 이경시장도 위기를 겪었다. 상인들을 몰아내고 시장조차 재개발 구역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잘 보존되고 있지만 걱정이 앞선다.

시장까지 가는 길에는 맛있는 먹거리가 넘친다. 젊은 상인이 운영하는 만두집도, 떡볶이, 어묵, 튀김을 파는 노점상도,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붕어빵, 호떡도 보인다. 찬바람 쌩쌩 부는 날 모락모락 피어나는 맛있는 냄새가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준다. 추운 겨울이 그래도 좋은 건 이렇게 길거리 음식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맛있는 냄새에 즐거워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이경시장이 보인다. 입구가 매우 작아서 그냥 스쳐지나가기 쉽다. 그래서 여태 없어진 줄만 알다가 지나는 길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작은 골목형 시장. 입구를 알리는 간판은 예쁘게 단장을 했다. 작지만 갖출 건 제법 갖췄다. 안으로 들어간다. 통일된 간판이 죽 이어진다. 바뀐 시장의 모습 때문일까, 너무 오랜만에 온 탓일까, 옛날 모습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시장 곳곳에선 조용하고 꿋꿋하게 버텨온 세월이 느껴진다.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정돈됐다. 더 환해진 분위기. 찾는 손님들도 꽤 있다.

만두, 찐빵집이 먼저 나온다. 옛날 방식으로 만드는 것 같다. 추억의 고기만두, 찐빵, 도너츠, 꽈배기가 있다. 가게 외관엔 ‘옥수수가루를 넣어 더욱 맛있습니다’ ‘우리가게에서는 실리콘 시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형광증백제 없는 천연 광목 면 보자기를 사용합니다’ 등이 쓰여 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겠다. 당당함이 엿보인다.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반찬가게엔 항상 손님이 있다. 단골인지 반찬가게 주인과 가벼운 농담도 던지며 훈훈한 모습이다. 주인은 이것저것을 더 추천해준다. 손님은 망설임 없이 추천해준 반찬을 더 담는다. 주인과 손님 간의 돈독한 신뢰가 엿보인다. 전통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훈훈함이다.

반찬시장 맞은편에는 음식점이 있다. 메뉴는 단출하다. 팥죽, 호박죽, 팥칼국수, 추어탕, 보리밥, 잔치국수. 아마 주인이 가장 자신 있는 메뉴들만 엄선해놓은 게 아닐까.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다.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며 TV만 보는 상인의 이마엔 주름이 가득하다. 가게 문에는 ‘이경시장 상인회’를 인증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 작은 시장에도 상인회가 있다.

 

시장은 작지만 맛집은 많이 보인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취향저격인 가게의 메뉴들. 전, 족발, 순대, 순대국 등. 전들은 종류별로 주문이 가능하다. 순대도 일반 순대가 아니고 야채순대다. 비닐에 잘 덮여있던 족발을 꺼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손님에게 나갈 준비를 한다. 침샘을 자극하는 비주얼이다.

분식집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곳은 수제어묵, 핫바가 시그니처 메뉴다. 치즈핫바, 깻잎핫바, 햄핫바, 떡핫바, 새송이핫바, 맛살핫바, 순대핫바, 해물핫바 등. 독특한 메뉴가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전, 떡볶이, 순대, 쫄면, 냉면, 라면, 어묵 등도 판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온 남자 아이는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엄마를 붙잡는다. 엄마도 어쩔 수 없는 듯 함께 메뉴를 고른다.

 

이 외에도 식사와 술 한 잔 할 수 있는 식당도 서너 군데 보인다. 대부분 5000원~1만원 꼴이다. 오리, 백숙, 소머리수육 같은 메뉴도 다른 데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김치가게 앞에선 김장김치를 포장해 묶어서 팔고, 벽면엔 시래기, 우거지가 걸려있다. 겨울철에 최고의 메뉴다. 섬유질이 풍부해 다이어트에도 좋고, 비타민과 미네랄도 많아 감기예방에도 탁월하다.

 

시장의 끄트머리에는 큰 마트가 있다. 원랜 이경마트였으나 이름도 바뀌고 새단장을 했다. 시장에서 마트로 이어지는 길은 마트의 창고다. 원래의 상점들은 사라지고 마트 창고가 된 것이다. 아직 간판도 떼지 않은 빈 상점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작은 시장이 별다른 홍보도 없이 오랜 세월 버텨준 게 너무 고맙다. 하나의 추억이 사라질 뻔 했지만 상인회의 단결력 덕분에 시장이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일대가 재개발이 되더라도 사리지지 않고 번창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경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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