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보기]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2회

 

여덟시. 알람이 울린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두 번째 날이 밝았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아침을 여행만 오면 부지런히 챙겨먹는다. 지금까지 다녀본 호텔들과 달리 식당이 꼭대기 층에 있다. 눈곱도 차마 못 떼고 부랴부랴 올라간 식당. 입구에서 룸넘버를 말하고 자리를 스캔한다. 창가 쪽이 좋겠다. 세상에. 생각지도 못한 뷰가 펼쳐졌다. 분명 시내 쪽인데도 불구하고 항구를 낀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여행 내내 폭우가 쏟아진다고 했는데 날씨도 화창 그 자체. 햇빛에 반사된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이며 일렁인다. 그 위에 알록달록 떠있는 배들, 하늘엔 새하얀 뭉게구름이 유유히 지나간다. 그림 같은 뷰를 뒤로하고 음식 앞으로 달려갔다. 뷔페식 음식이 그렇듯 맛은 별로다. 허기진 배는 구운 빵과 커피로 채웠다. 그림 같은 뷰를 보며 먹고 있자니 맛없는 조식도 용서가 됐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하자며 바로 호텔을 나섰다. 잠옷을 입고 나온 상태라 멀리는 가지 못하고 호텔 건물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돌았다. 맑은 날씨에 들 뜬 우리. “날씨 요정이 따라다니나 보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 지나가는 택시, 야자수, 바다…. 모두 예뻐 보인다. 한밤중에 도착해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오는 바람에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야 느껴진다. 이곳이 코타키나발루구나.

이제 짐을 싸야 된다. 두 번째 숙소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이다. 일단 준비를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체크아웃이 정오여서 일단 캐리어는 호텔 카운터에 맡기고 장을 보러갔다. 두 번째 숙소는 시내와 동떨어진 리조트다. 주변에 시장, 마켓, 식당을 찾으려면 택시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때문에 우린 조식만 신청해놓고 나머진 마트에 들러 라면과 주전부리 등을 사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켰다. 아니, 지구 어느 곳도 상세하게 알려줄 것 같은 구글 지도가 켜지질 않는다. 유명하다는 KK마트를 찾아가야 되는데 살짝 당황했다. 걸어가기 좋은 거린데 택시를 탈 수도 없고…. 그래, 그럼 택시 어플 ‘그랩’으로 지도를 보자. 구글보다 GPS가 더 잘 잡힌다. 다시 한 번 느꼈다. 동남아 여행에서는 그랩이 최고다.

수월하게 KK마트에 도착했다. 1층에서 부족한 돈을 환전한 뒤 마트에 들어갔다. 장을 보며 기념품쇼핑도 일단 간단히 하기로 한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인기 있는 쇼핑물품은 카야잼, 차, 커피, 새우과자, 라면, 치약 등이다. 이슬람국가라 주류 종류는 많지 않다. 흔히 많이 보이는 타이거맥주를 집어 든다. 큰 병 두 개와 작은 캔 두 개.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에 비해 친구는 더 사야 된다며 무리를 한다. 여행 와서 숙취로 고생하지말자. 겨우 설득해서 라면 코너로 갔다. 라면을 좋아하는 기자의 눈이 바빠진다. 특히나 동남아 향신료가 들어간 똠양꿍 같은 종류의 라면을 좋아한다. 친구는 절레절레. 그럼 컵라면으로 일단 몇 개 사가서 맛을 본 뒤 그중 괜찮은 걸로 골라서 마지막 날 한국에 사가자. 어느새 묵직해진 장바구니. 네 봉지로 나눠 들고 점심 먹으러 고고!

 

다시 지도를 켰다. 걸어서 약 10∼15분 거리. 낑낑 거리며 이동한다. 나름 해외여행이라고 한껏 멋부리고 왔지만 무거운 짐과 맑디맑은 날씨에 어느새 땀범벅이다. 게다가 신호가 정말 느리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려면 뙤약볕에서 약 5분은 기다려야한다. 참지 못하는 현지인들은 무단횡단이 일상이다. 땀으로 샤워를 했을 즈음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친구가 찾아놓은 맛집이다. 로컬푸드로 유명해져 현재는 현지인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 국수, 사태꼬치, 카야잼 토스트가 유명하다. 가장 즐겨 먹는 메뉴로 골고루 시켰다. 사람이 가득했지만 회전률이 좋다. 순서대로 국수, 토스트, 사태가 나왔다. 음식을 해주는 파트가 나눠져 있어 음식이 나올 때마다 음식의 값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대체적으로 향이 강하지 않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사태꼬치는 포장도 된다. 리조트 안에서 맥주 안주로 먹기 위해 포장했다.

 

다시 짐을 들고 호텔에 도착했다. 땀 좀 식힐까 했지만 부지런한 친구는 바로 택시를 잡는다. 맡겨둔 캐리어를 챙겨 바로 택시에 올랐다. 다행히 택시 안은 시원했다. 약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 해안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다구경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땀을 식혔다.

어느덧 리조트에 도착했다. 프런트 데스크 앞에서 내려줘 리조트 직원들이 무거운 짐을 챙겨줬다. 체크인을 하고 리조트 이용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들었다. 이곳은 독채로 된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어 마치 마을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리조트다. 우리는 두 명이어서 저렴한 빌라동으로 갔다. 리조트 타운(?) 안은 굉장히 한적하다. 열대나무가 우거지고, 파도소리, 새소리만 가득했다. 리조트 리무진을 타고 동으로 이동했다. 걸어가도 3∼4분이면 되는 거리지만 짐도 무거웠고, 무엇보다 서비스니까.

 

제일 꼭대기 층인 5층이다. 방 번호가 555번이다. 괜히 기분이 좋다. 방문을 여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꼭대기 층이라 바다가 다 보이고 리조트 내에서 운영하는 수영장도 바로 아래 있다. 바다를 보며 수영할 수 있는 것이다. 바다 수영은 파도가 워낙 세서 포기하고 수영장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둘이 사용하기엔 어마어마하게 큰 방. 그리고 부엌, 거실, 침대방에 넓직한 화장실도 두 개나 있다. 해외여행 때마다 돈을 아끼느라 항상 비좁은 호텔방만 썼었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곳저곳 만져보며 어린아이처럼 방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곤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더위도 시킬 겸 바로 수영장으로 직행이다.

수영장은 한적하다 못해 아예 개미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전부를 전세내기라도 한 듯한 기분. 파도소리가 시원하게 들리고 날씨도 선선하다. 혹여 물이 차가울까봐 준비 운동을 열심히 하고 발을 담갔다. 미지근하다. 이곳은 일교차가 큰 탓에 혹여 추울까봐 물이 차갑지 않게 미리 온도를 맞춰놓은 놓은 것이다. 덕분에 해가 진 저녁에도 춥지 않게 수영할 수 있었다. 실컷 수영을 하고 들어와 씻은 뒤 테라스에 앉았다. 친구가 가져온 무선 스피커로 노래를 틀고, 맥주와 라면을 먹었다. 친구는 “진짜 좋다. 여기가 내 인생 최고의 휴양지야”라며 눈을 반짝였다.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의 두 번째 밤도 그렇게 저물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