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시아평화 이끌려면 주변국 고통 외면하면 안 돼”
“한국이 아시아평화 이끌려면 주변국 고통 외면하면 안 돼”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12.06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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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구수정 '한국-베트남 평화재단' 상임이사-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구수정 '한국-베트남 평화재단' 상임이사
구수정 '한국-베트남 평화재단' 상임이사

- 이외에 다른 자료들은 없는가.

▲ 1960년대에 미국의 한 단체가 작성한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조사보고서’를 봤다. 베트남어에 능통한 미국인 퀘이커교도 다이앤과 마이클 존스는 5년간 한국군 작전지역에서 집중조사를 한 결과 미 해병이 개인 병기로 100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학살한 밀라이 사건과 비슷한 규모의 학살 사건을 12건 밝혀냈다. 소규모 학살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으며, 학살의 희생자는 대부분 여자, 어린이, 노인이었다. 이 보고서엔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학살을 목격한 전쟁난민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 내용이 실려 있다. 보고서를 만들 당시 전쟁이 한창이었고 때문에 학살마을로 직접 들어가지는 못했다. 전쟁난민 캠프에 여러 마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다. 한 인터뷰에서 ‘한국군 때문에 마을이 완전히 초토화돼 간신히 몸만 빠져 나와 도망쳤다. 마을 사람 몇 명이 죽었을 거다’고 말하고 있다. 또 미군 감찰부가 조사한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 학살보고서도 있다.

 

- 한국정부는 아직도 학살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한국과 베트남 양국 간에 불행했던 역사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자체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의 극빈지역과 산간지역에 병원 5곳과 학교 40여 개소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병원 5곳은 한국군 전투부대가 주둔했던 다섯 곳에 세워졌다. 40여개 학교는 학살이 일어났던 마을마다 하나씩 지었다. 공식적으로 정부차원에서 민간인 학살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병원과 학교를 세워줬다는 건 의미가 있다. 그 후 아직까지 한국정부 차원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해결을 위한 노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사과의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다.

 

- 공식적인 배상도 없었다.

▲ 사실 이 문제는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역사화해는 국가 차원의 정치적 화해만으로는 어렵고 시민사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며, 국민과 국민 사이의 지속가능한 사회문화적 화해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제가 이 문제를 반복해서 제기하면 비난하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왜 국익을 생각하지 않느냐?’다. 어떤 분은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분도 계시다. 저는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이 장차 한반도 통일과 아시아 평화를 위한다거나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이 문제를 먼저 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정부지원 없이 재단차원에서 운영이 힘들지 않나.

▲ 모든 학살지역에 지원하기는 솔직히 재정여건상 어렵다. 베트남 피해지역에 가보면 이분들이 한국정부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기보다는 ‘기억해 달라. 그리고 알려 달라. 마지막으로 위령제에 와 달라’고 말한다. 이들은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는데 저희가 참배단을 꾸려서 가기도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매번 휴가기간에 위령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저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은 몇몇 마을에는 가지만 수많은 마을들을 모두 찾아 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모든 위령제에 갈 수 없어서 조화(弔花)를 보낸다. 앞으로도 더 많은 마을에 보내려고 한다.

 

- ‘따이한 제사'를 지내는 마을에 지원금을 보내고 있는데.

▲ 재단에서 후원금을 모아 베트남 현지에 지원하고 있다. 위령제 조화성금은 어느 정도 모이고 있다. 조화는 베트남 대도시 화원에 주문해서 시골 마을 위령지로 배달을 주문하는 방식이다. 제사후원금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한번 보냈던 마을에는 어떻게 하든 꾸준하게 보내드리려 하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제사비용 100만 원은 충분한 돈은 아니지만 마을에서는 해마다 제사를 어떻게든 이어가고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이 돈이 기운을 준 것 같다. 부족한 비용은 마을사람들끼리 십시일반 갹출해 제사를 지낸다. 마을주민들은 이 제사를 ‘따이한 제사’라 부른다. 일반화돼 있다. 한국인은 이 제사를 ‘합동제사’ 또는 ‘집단제사’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담지오 따이한’이라 부른다. 담지오(Đám giỗ)는 ‘제사’라는 뜻이다.

 

- 위령제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 베트남에서 위령제는 인민위원회 등 정부기관에서 주관한다. 유가족들은 제사를 지낸다. 한날한시에 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합동제사를 지낸다. 전쟁 유가족들은 아무래도 가정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단체로 제사를 지내려면 돼지도 잡아야 하고 음식도 장만해야 한다. 베트남은 우리처럼 음복문화가 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모든 마을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먹도록 음복을 권한다. 따라서 제사비용이 많이 든다. 저희 재단에서 모든 비용을 해드리면 좋겠지만 어렵기 때문에 몇몇 마을에 100만 원 정도를 제사비용으로 보태드리는 실정이다.

 

- 올해 베트남 유족들이 방한했다고 들었는데.

▲ 올해 4월 초에 베트남전쟁 당시 퐁니⋅퐁넛과 하미 학살사건에서 생존한 두 명의 응우옌 티탄 씨(동명이인)가 방한해 국회에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진상규명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이들과 학살진상규명 시민평화 모의법정을 열기도 했다. 베트남이 원고석에 앉고, 한국정부가 피고석으로 학살책임을 묻는 법정이었다. 하미 마을 피해자인 티탄 씨는 ‘한국정부와 참전 군인들이 사실인정과 함께 사과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마을에서 학살된 135명이 내 등을 떠밀어 한국까지 왔고 한국인들이 이런 진실을 꼭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그들의 증언 내용은.

▲ 퐁니 마을 피해자인 티탄 씨는 ‘50년이 지났지만 엄마와 동생이 죽어가며 지르던 비명과 신음소리를 잊지 못한다. 집에서 뛰놀던 6명의 아이들이 갑작스런 총소리를 듣고 집에서 작은 방공호 속으로 피했지만, 한국군에게 발각돼 온몸에 총탄세례를 받았다. 이중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가 당시 8살 여아였던 아이가 탄 씨다. 그는 배에 총을 맞아 밖으로 창자가 튀어나온 상태였다. 창자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빠져 나와 미군에게 구조됐다. 한국군이 마을을 떠났을 때는 74명 시신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 꽝남성 학살지도를 만들었다.

▲ 꽝남성 20여개 마을을 찾아 학살희생자 추모위령비와 위령관, 묘지, 학살현장 안내 구글 지도를 제작했다. 베트남의 유명관광지인 다낭과 호이안, 하미 마을, 퐁니⋅퐁넛 마을도 여기서 1시간 거리에 있다. 꽝남 순례길도 만들었는데 이 길은 1968년 호이안 인근마을에서 있었던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현장 3곳을 추념하는 길이다. 한국군의 학살은 주로 베트남 중부 5개성인 꽝남성과 꽝응아이성, 빈딘성, 푸옌성, 카인호아성에서 이뤄졌고, 9000여 명 이상이 희생됐다. 새롭게 업데이트 됐지만 아직 발표하지 않은 통계다. 최근에는 수많은 한국관광객이 인근의 다낭을 찾고 있지만, 30분 거리의 학살지역을 모르고 지나쳐 안타깝다.

 

- 베트남, 어떻게 도와야 하나.

▲ 학살은 복원될 수 없다. 복구될 수 없는 영원한 상처다. 회복이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억하고 기록하고 역사에 남기는 일뿐이다. 복구할 수 없는 상처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나. 이미 죽었고 이미 가족을 잃었고 이미 팔은 잘렸고 다리도 잘려 나간 그 상처를 복구할 수는 없다. 희생자들은 베트남 정부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보상도 받지 못했다. 우리가 피해자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상처들을 기억하고 기록도 당연히 해야 한다. 이를 역사에 남겨서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길이다. 저희 재단에서도 미래세대에게 교육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리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한국은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통일을 하려면 주변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주변국가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추스르지 않으면 어렵다. 나만 잘되고 이웃국가는 홀대하는 방식으로는 두고두고 발목이 잡힐 것이다. 정부가 주도해서 해결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절대로 저해되지 않는 일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이 평화로운 길이고 화합하는 길이다. 한국이 아시아의 미래를 열어가려면 이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그것이 국익과 직결된다. 과거 나치독일의 만행에 대해 독일 빌리 브란트 수상의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가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됐음을 상기해야 한다. 나아가 유럽연방통합에도 도움이 됐다. 한국도 베트남에서의 학살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지 않으면 미래도 열리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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