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겨울, 그것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즈음한 시기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길고 어두운 밤의 세계로 빠져든다. 특히 독일 중부 이상의 북쪽으로 갈수록 세상은 더욱 어두워진다. 절기상으로 동지가 낀 시기이니 북쪽의 유럽은 극야(極夜), 낮의 종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그 무렵 북쪽의 유럽은 1년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 그 길고 어두운 밤, 밤인지 낮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그 시간들을 찬란하게 비쳐주는 크리스마스의 불빛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장인 크리스마스 마켓(Christmas Market. 독일어로 바이나흐트마르크트(Weihnachtsmarkt))이 있다.

 

스톡홀름 구시가인 감라 스탄 대광장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뒤로 보이는 건물이 노벨박물관이다. (사진 = 이석원)
스톡홀름 구시가인 감라 스탄 대광장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뒤로 보이는 건물이 노벨박물관이다. (사진 = 이석원)

지금이야 매년 11월 말부터 12월 23일 무렵까지 대부분 유럽의 도시들이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래된 것은 독일이다. 그래서 초기 크리스마스 마켓이 주로 열린 곳은 독일과 독일어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이다. 그리고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의 동쪽 도시들에서도 일찍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작됐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도시에 대해서는 몇 개의 도시들이 저마다 주장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1310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것이 최초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알려졌다. 물론 현재 세계 3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빈은 자신들이 이미 1298년에 크리스마스 마켓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누가 먼저인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아무튼 1384년 독일 동부 작센 주에 속한 바우첸(Bautzen), 1393년 프랑크푸르트, 1434년 드레스덴, 1498년 아우구스부르크 등은 전통이 깊은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의 광장 문화와도 밀접하다. 유럽의 도시 대부분은 시청이나 대성당이 있는 광장이 생활 문화는 물론 정치와 경제의 중심을 이룬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평소 그 광장은 일반적인 시장이다가 크리스마스를 즈음한 시기가 되면 그곳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특화된 상품을 판다.

상인과 시민의 구분도 없다. 저마다 자기가 집에서 만든 전통 음료와 쿠키를 가져와서 팔고, 직접 구원 만든 도자기 장식품과 화려한 천으로 기워 만든 인형 등을 다른 물건과 바꾸기도 한다. 시장의 한 편에는 다양한 놀 거리를 가져와서 동네 사람들이 흥겹게 축제의 마당을 펼치기도 한다.

규모가 큰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에 모여 있다. 드레스덴,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슈투트가르트 쾰른 등이 그렇다. 뉘른베르크와 드레스덴의 마켓에는 매년 거의 2백만 명이, 슈투트가르트와 프랑크푸르트 마켓에는 거의 3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린다. 또 규모면에서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쾰른에는 45m나 되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에 300개가 넘는 상점들이 줄지어 서고 4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찾는다.

 

대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아기자기한 스웨덴 전통이 엿보이는 도자기와 장식품, 전통 음료와 과자 등이 판매된다. (사진 = 이석원)
대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아기자기한 스웨덴 전통이 엿보이는 도자기와 장식품, 전통 음료와 과자 등이 판매된다. (사진 = 이석원)

한국과 일본 등의 여행사들은 보통 독일 뉘른베르크 마켓과 오스트리아 빈 마켓, 그리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켓을 유럽 3대(결국은 세계 3대)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는 알퐁스 도테의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알자스로렌 지방이다. 1871년 보불 전쟁 때 독일에게 빼앗겼다가 1차 대전 때 되찾고, 다시 2차 대전 때 독일에게 점령당했다가 전쟁 후 되찾은 지역이다. 그래서 프랑스지만 독일의 느낌이 강한 도시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큰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도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스톡홀름 구시가인 감라 스탄(Gamla stan)의 스투르토리엣 율마르크나드(Stortorgets julmarknad)다. 스투르토리엣은 감라 스탄의 중심, 노벨 박물관 앞의 대광장이고, 율마르크나드는 크리스마스 마켓의 스웨덴어다.

여기서 잠깐. 영어 크리스마스는 스웨덴어로는 율(Jul), 독일어로는 바이나흐트(Weihnacht), 프랑스어로는 노엘(Noël), 스페인어로는 나비다드(Navidad)로 부른다. 세상 모두가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구시가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광명소지만, 노벨박물관 앞 대광장(Stortorget)에는 14세기부터 연중 특별한 시기에 시장이 열렸다. 부활 시기에는 포스크 마르크나드(Påsk marknad)가,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율마르크나드가 열렸다.

특히 1520년 12월 이곳에서 당시 스웨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앙 2세가 스웨덴 주요 귀족 90여 명을 몰살 시키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물론 이 사건은 이후 스웨덴이 봉기해 덴마크를 몰아내는 결정적인 게기가 됐지만, 이후 그날을 기억하려는 스웨덴 사람들은 특히 더 대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아꼈다.

 

스톡홀름 외곽 태비(Täby)라는 동네의 센트룸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마켓. 규모는 작지만 스웨덴 전국에는 이 같이 작고 아담한 지역 크리스마스 마켓이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 약 한 달간 열린다. (사진 = 이석원)
스톡홀름 외곽 태비(Täby)라는 동네의 센트룸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마켓. 규모는 작지만 스웨덴 전국에는 이 같이 작고 아담한 지역 크리스마스 마켓이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 약 한 달간 열린다. (사진 = 이석원)

오랫동안 유지되던 대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1776년 지금은 노벨박물관과 스웨덴 아카데미로 쓰이는 증권거래소 건물이 세워진 후 인근에 있는 스웨덴 왕궁의 중정으로 옮겨진다. 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 300여개가 넘는 상점들이 들어서 규모면에서는 가장 융성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마켓은 1837년 다시 대광장으로 되돌아왔다. 현재의 모습으로 마켓이 열린 것은 1915년이다.

대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놀 거리, 그리고 스웨덴의 전통적인 장식품이나 도자기들을 판매한다. 특히 스웨덴에서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서 먹는 전통 음료인 글뢱(Glögg)과 페파르커쿠르(Pepparkakor)라고 불리는 진저브레드를 판다. 글뢱은 포도주에 계피와 여러 가지 과일, 그리고 향신료 등을 넣고 오래 끓인 후 마시는 뜨거운 와인이다.

지금 스웨덴에는 도시마다 또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밝게 빛난다. 비록 오전 8시가 넘어서 해가 뜨고, 오후 3시 전에 해가 져서 어두움이 찾아오는 스톡홀름이지만 거리마다 아름답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아기자기하게 예쁜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