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허리’ 빨간불

빚을 갚기 위해 오늘도 일을 한다. 월급이 들어오는 날엔 기쁨과 안도와 함께 뼈아픈 현실을 절감하기 일쑤다. 서민금융 관계자는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고 소비를 하는데 무언가 방향이 어긋나고 있다”며 “다음달 돌아오는 대출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중장년층 과반이 은행빚으로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함에 따라 15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는 이미 경보음이 울린지 오래다.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계빚 상황을 살펴봤다.

 

“빚이 없다면 빛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40대 중반 남성인 K씨의 한숨 섞인 목소리다. 그가 한달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의 절반 이상은 주택대출 등 각종 빚을 갚는데 사용된다. 여기에 자녀들이 학교에 진학하면서 교육비 지출은 매년 늘어만 가고 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배우자의 수입이 없다면 이미 파산 상황에 들어갔을 것이라는게 그의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일을 하는 의미가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해도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나마 은행권 대출은 양호하다. 뒤이어 따를 2금융권과 사금융권의 부채는 후폭풍이 배가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저소득층일수록 중복 대출이 많아 말 그대로 눈덩이에 짓눌릴 지경이다. K씨는 “은행권, 카드사, 2금융권 등 4곳에 대출이 있는데 한달 이자만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이라며 “월급 통장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빚으로 빚을” 돌려막기

통계청에 따르면 만 40∼64세 중장년층의 절반 이상이 금융권에 갚을 빚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영업자 등 비임금 노동자의 금융권 대출 규모가 임금노동자보다 더 많았고, 주택 소유자의 대출은 무주택자의 4배에 육박했다. 자기집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장년층 10가구 중 약 4가구는 집을 소유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기준 중장년층 행정통계 결과’를 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금융권 가계대출(제3금융권 제외)을 보유한 중장년층은 55.2%로 전년보다 0.8% 상승했다. 최소한 두 명 중 한 명은 금융권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잔액별로 보면 1000만원 이상∼3천만원 미만 비중이 24.3%로 가장 많았고 1000만원 미만(19.3%)이 뒤를 이었다. 중장년 대출 잔액의 중앙값은 3911만원으로 전년도의 3633만원보다 7.7%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출 잔액의 중앙값은 남자가 4607만원으로 여자 3000만원보다 1.5배 수준으로 많았다. 행정 통계상 취업자로 분류되는 '등록 취업자'의 대출 중앙값은 4720만원으로 미취업자 2422만원의 1.9배로 나타났다.

비임금 노동자의 대출 중앙값은 5654만원으로 임금 노동자 4448만원보다 1.3배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주택 소유자의 대출 중앙값은 7941만원으로 조사돼 주택대출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무주택자 2000만원의 4배에 해당된다.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주택을 한채라도 소유한 중장년 인구는 812만 8000명으로 전체(1966만 4000명)의 41.3%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0.6%포인트 상승한 셈이다. 배우자 등을 포함한 가구 기준으로 주택소유 비중은 63.3%로 전년보다 0.4% 올랐다.

 

“재취업도 하늘의 별따기”

여기에 일자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장년층들은 더욱 허리를 조여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 취업한 중·장년 임금근로자 3명 중 2명은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버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p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새로 일자리를 얻은 만 40∼64세 임금근로자 70만 8000명 중 3분의 2는 월평균 임금이 2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100만원∼200만원 미만을 벌어들이는 경우가 53.0%로 가장 많았고, 100만원 미만을 벌어들이는 경우도 13.9%였다.

200만원 미만이 66.9%인 셈이다. 200만원∼300만원 미만을 벌어들이는 임금근로자는 19.7%에 불과했다.

월평균 임금수준은 208만원으로, 남성(271만원)이 여성(165만원)보다 높았다. 재취업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40대 초반이 220만원, 50대 초반은 213만원, 60대 초반은 172만원으로 연령이 올라갈수록 낮아졌다.

통계청 관계자는 “중·장년이 된 뒤 재취업할 경우 동일하거나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나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2년 가까이 무직인 이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지난해 만 40∼64세 미만 중장년층 10명 중 3명은 2년째 무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2년째 미취업 상태인 중장년층은 625만 7000명으로 전체(1966만4000명)의 31.8%를 차지했다. 2016년 10월 취업했다가 무직으로 돌아선 중장년은 132만명(6.7%)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상실한 중장년층은 나이가 많아질 수록 비중이 높아졌다. 40대 초반(67.6%)이 등록취업자 비중이 가장 높았고, 60대 초반(46.7%)이 가장 낮았다.

종사상 지위별로는 임금근로자는 929만명(76.9%), 비임금근로자가 240만명(19.9%)으로 나타났다. 비임금근로자는 자영업자와 자영업체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가족종사자들을 의미한다. 임금근로와 비임금근로를 병행하는 사람은 39만 8000명(3.3%)이었다.

중장년층의 소득을 구간별로 보면 '1000만원~3000만원 미만'에 위치한 비중이 33.5%로 가장 많고 '1000만원 미만'이 30.2%로 뒤를 이었다. 3000만원∼5000만원 미만은 14.5%, 5000만원∼7000만원 미만은 8.7%, 7000만원∼1억원 미만은 7.9% 순으로 나타났다.

평균소득을 성별로 살펴보면 남자는 4394만원으로 여자(2015만원)의 2.2배 정도였다. 연령별로는 50대 초반까지는 평균소득이 높아지다가 50대 후반부터는 연령구간이 높아질수록 낮아졌다. 40대 초반 3521만원, 40대 후반 3622만원, 50대 초반 3667만원, 50대 후반 3103만원, 60대 초반 2394만원으로 나타났다.

한국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중장년층의 고민은 계속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늘어나는 대출 속에서 이들이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흔들리고 있는 중장년층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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