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시 헤드 지음/ 정소영 옮김/ 창비

 

아프리카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베시 헤드(Bessie Head)의 작품 '권력의 문제'가 발간되었다. 백인과 흑인 사이의 성행위나 결혼을 금지하는 ‘부도덕법’(Immorality Act)이 시행되고 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37년 백인과 흑인의 혼혈로 태어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성장한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베시 헤드가 일종차별로 인해 겪은 신경증을 토대로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환상 속 인물 쎌로와 댄이 각각 제1부와 제2부의 흐름을 이끌며 결말을 향해 밀고 나가는 형식을 지닌다. 인종차별, 성폭행, 정치적 망명 불허로 겪은 무국적 생활 등 삶의 질곡 속에 섬세하게 감지해낸 권력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꽃피운 베시 헤드의 대표작이다.

'권력의 문제'는 자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우선 베시 헤드의 일생을 간단히 살펴보는 게 좋을 듯하다. 베시 헤드는 193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09년 영국에서 독립하지만 베시 헤드가 태어났을 때에도 극심한 인종차별은 여전했다. 그곳엔 흑인과 백인만이 아니라, 네덜란드계인 아프리카너(Afrikaner)와 영국계 백인, 흑인, 베시 헤드 같은 혼혈(Coloured)까지 여러 층의 분열과 갈등이 존재했다. 게다가 1948년 아프리카너가 주도하는 국민당(National Party)이 정권을 잡아 인종격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공식 정책으로 삼은 뒤 여러 차원에서 차별과 억압이 심화된다.

베시 헤드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위탁가정에서 자랐는데, 혼혈이라는 이유로 백인과 흑인 위탁가정 양쪽에서 쫓겨났을 때부터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도 하겠다. 교사 자격증을 받고 잠깐 교사생활을 한 뒤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범아프리카운동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남아공을 떠나 보츠와나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다. 보츠와나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한 채 망명생활을 하면서 여러 나라에 망명을 요청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보츠와나에 산 지 15년 만에 시민권을 얻게 된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으며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86년 간염으로 세상을 떠난다.

엘리자베스의 망상 속에 등장하는 쎌로와 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가 평생 대면해야 했던 인종적 차별과 억압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 탐색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단순화하자면 쎌로와 댄은 선과 악을 대표한다. 특히 어느 시점부터 쎌로는 자신에게 너무 기대지 말고 분석적인 정신으로 독립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엘리자베스에게 경고하는데, 사실 절대적 선에 대한 믿음은 악에 맞설 힘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쎌로를 통해 나타나는 엘리자베스의 문제는,혹은 베시 헤드가 보는 우리의 문제는 선과 악이 두부 자르듯 구분된다는 이분법적 사고이고, 그런 이분법을 역사속의 주요 종교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쎌로가 선을 집약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악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우리를 절망으로 내모는 것은 악이라기보다 선과 악의 이분법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면 댄은 말 그대로 순전한 악이다. 댄은 악으로 뭉뚱그려진 생물학적 본질성의 문제, 피부색이나 성적 욕망 같은 육체적이고 따라서 저속하다고 여겨져온 면의 극도로 과장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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