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태풍의 핵’

여야가 우여곡절 끝에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시작했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원 간선제', '임의적 조정' 등 표현을 빌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판하며 대국민 여론조사 실시를 요구했다. 단식 농성까지 했던 다른 야당들의 속은 다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유섭 한국당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찌 보면 국회의원 간선제라는 것"이라며 "국민이 직접 뽑지 않은 국회의원이 늘어나는 것을 국민이 정치개혁으로 봐줄 것인가라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새해 정국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전망해 봤다.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여야 정치권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정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한다고 지역구 사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배분 방식에 대해 납득이 안 되는 측면도 있다. 지역구 의석수가 적을수록 비례의석을 많이 가져가면 어느 정당이 치열하고 힘든 선거구에 나가겠느냐. 정치 상식, 경험과 대조적"이라고 주장했다.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로 새로 선임된 장제원 의원은 "국민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여론조사를 하자"며 "50%이상 반대하면 300명 이내로 논의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에 기본적으로 충실하고 존중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공식, 비공식적으로 의원들 간의 간담회나 토론회를 전개하고 있다. 토론하는 과정에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확대하자는 데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최 의원은 이어 “비례성과 대표성을 확대하는 방식에 대해 합의되거나 모아진 의견은 아직까지 없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기반 하에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연동형 방식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있다"고 했다.

정개특위 1소위원장인 김종민 의원은 이와 관련 "한국당 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을 심각하게 고민해보자고 했다"며 "민주당 의원들은 비례대표 의석과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한국적인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여론에 밀려 일단 논의는 시작했지만 복잡한 두 거대 정당의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단은 찬물을 끼얹는 자유한국당과 고민이 한창인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으로 요약된다.

 

‘한국적 방식’ 고민 중

특히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시간 끌기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민주당도 야3당이 주장하는 비례성 강화에는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한국적 방식을 내세우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의회 다수당이 필요한 대통령제의 숙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요구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민주당은 의견 수렴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 관련 당내 토론회를 개최하며 대안찾기에 나설 전망이다.

자유한국당의 반발은 노골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병길 비상대책위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 "한국당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도이며 솔직히 민주당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를 이끌어낸 손학규 대표를 직접 거명하며 "OECD 국가 어디에서도 대통령제와 연동형제를 동시 채택하는 나라가 없고 민주주의 원조인 영국에서는 아예 비례대표제 자체가 없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당내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며 "우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의원수가 무한정 계속 확대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독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3당은 즉각 반발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면 제가 왜 단식을 풀었겠느냐. 합의문 문구 하나하나 손보고 뜯어고치고 직접 서명까지 했던 나경원 원내대표가 부정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과 관련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한 바 있다. 비례대표 확대, 비례대표 및 지역구 의석 비율, 의원수 확대 여부, 지역구 선출방식 등 구체적 사안은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고 합의문에 담았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정개특위에서 이상기류가 발생하는 것 같아 단식을 중단한 제 마음이 편치 않다. 과연 제가 단식을 중단한 것이 잘 한 일인지 회의가 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기득권 포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양날의 검이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는 사표 없이 모든 득표가 의석 수로 연결돼 원내 군소 정당에 유리한 제도로 인식되지만 다른 많은 원외 군소 정당들의 국회 진입도 더 수월해지기 때문에 기존 원내 정당들의 기득권이 잠식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권 태풍의 눈으로 떠 오른 ‘선거제도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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