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어린이들, 스웨덴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다
당돌한 어린이들, 스웨덴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다
  • 이석원
  • 승인 2018.12.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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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나는 여기 구걸이나 하러 온 것이 아니다.(중략) 세계 정상들은 과거에도 우리를 무시했고, 지금도 우리를 무시하려 하고 있다.(중략) 세계의 주요 지도자들은 개인의 인기에 연연하며, 행동은 하지 않고 ‘녹색 성장,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말로만 떠벌이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연설중인 툰베리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연설중인 툰베리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에서 멀지 않은 남부 도시 카토비체에서 열렸던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4)는 특별한 소란과 충격에 휩싸였다. 스웨덴으로부터 날아온 한 15세 소녀 때문이다.

언뜻 말괄량이 삐삐를 닮은 듯도 한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들의 시위’라는 주제로 한 이 국제회의의 공식 연설에서 “지난 25년간 이 회의에 참석한 많은 사람이 세계 지도자들에게 탄소 배출을 중단하자고 호소했지만, 현재까지 탄소배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며 ”더 이상 그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돌봐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려 한다”고 일갈했다.

회의에 참석한 190여 회원국의 대표들은 뜨끔했다. ‘도대체 저 꼬마 아이는 누구?’하며 밝지 않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 툰베리는 “우리는 살기 위해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무언가를 이제 해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점입가경이다. 연설을 듣던 일부 참석자들은 눈과 귀를 의심했다.

12일에 이어진 연설에서 툰베리는 한술 더 떴다. 툰베리는 “당신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무엇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당신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외쳤다. 한 마디로 그 자리에 모인 각국의 대표들을 ‘도둑’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기후정의네트워크(Climate Justice Now Network)의 대표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석한 툰베리는 이미 지난여름부터 스웨덴에서는 유명 인사가 된 중학생이다. 그는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9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는 피켓을 내걸고 1인 시위를 했다.

당시 툰베리는 “스웨덴은 점점 더 나쁜 것들로 인해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그들이 스웨덴의 땅이 건강해지도록 노력하기를 촉구한다”며 스웨덴의 총선 날까지 시위를 했던 것이다.

툰베리의 1인 시위 소식은 스웨덴 전국으로 퍼졌고, 다른 학생들의 동조 시위는 물론, 교사들의 동조 시위까지 이끌어냈다. 스톡홀름을 찾은 여행자들을 통해 전 세계로 소식이 전해졌고, 삽시간에 툰베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어린이가 됐다.

지난 8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당시의 그레타 툰베리
지난 8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당시의 그레타 툰베리

 

그런데 툰베리의 그 같은 행동은 스웨덴 사회에서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스웨덴 10대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크고 넓다. 특히 기후나 동물 보호, 어린이 인권 등에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종종 낸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정당한 토론에 익숙해있고, 또 각 정당의 정치 캠프를 통해 정치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현역 국회의원들 상당수도 이미 중학교 시절 일찌감치 특정 정당에 가입을 하고, 그 정당에서 운영하는 정치 캠프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지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스웨덴민주당의 임미 오케손 당수도 15세에 보수당 청소년 조직에 몸담으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가 16세 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웨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인물이다.

지난 6월 스톡홀름 시의회 특별 회의실에서 특별한 정치 세미나가 있었다. ‘난민에 대한 생각’이라는 주제였다. 13세에서 16세의 청소년 30여명이 참석했다. 최근 강화된 스웨덴의 난민 심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이 자리에서 2014년 난민으로 스웨덴에 정착했던 터키 쿠르드 출신의 16세 아심은 “난민 어린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정치 행위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다”며 “특히 아랍 지역에서 석유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유럽은 부끄러움을 가지고 난민 어린이들을 대해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심은 4년 간 스웨덴 학교에 다니면서 어떻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민당에 가입했고, 난민 어린이들을 구호하는 국제기구에도 가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심의 말처럼 스웨덴의 학교에서는 다양한 토론 시간을 통해 어린이들도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피력하는 법을 배운다. 비단 학교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가족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결정이란 것은 없다. 모든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회의와 토론을 통해 어린이들의 의견까지 다 듣고 결정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스웨덴의 제주도’로 불리는 고틀란드에서 매년 7월 첫째 주에 열리는 ‘알메달렌 (Almedalsveckan)’은 스웨덴의 모든 정당 대표들이 참여하는 최대의 정치 캠프다. 이 때 고틀란드는 1년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그들의 상당수는 가족 단위다. 특히 청소년은 물론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그 나이에 맞는 이벤트에 참여해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

몇 년 전 알메달렌에서는 7살 어린이의 깜짝 발언이 화제였다. 토미는 당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 앞에서 “스웨덴은 현금을 쓰지 않고 카드만 쓰는데, 우리들은 카드가 없기 때문에 우리들이 사탕을 살 수 있도록 현금도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스웨덴 사회가 점점 현금을 거래하지 않는 상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항의성 발언이었다.

부모님도, 학교의 선생님도 아이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놀라지 않고, 경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라도 해도 당연한 자기 권리고, 명확한 학습을 통해 터득한 정치적 능력이지 ‘시건방진’ 일이 아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8세부터 주어지는 투표권은 분명 타당한 근거가 있다. ‘교육이 부족’하거나, ‘가치 판단이 미숙’하거나, ‘부모나 교사에 의해 편향’되지 않는다. 하나의 정당한 정치적 인격체로서 자신의 표를 행사한다는데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스웨덴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바탕일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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