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정상화’ 될수록 노동자 불안과 고통 심화돼
자본주의 ‘정상화’ 될수록 노동자 불안과 고통 심화돼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12.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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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1회

얼마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청년노동자가 숨졌다. ‘위험의 외주 화’에 내몰린 노동현실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노동인권과 산업안전이 무너졌음에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탐욕적인 자본카르텔 사회로 고착화 돼 버렸다. 인간 대 인간, 사측과 노동조합, 국가와 국민간의 신뢰도 찾기 어렵다. 자본과 권력이 우리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장악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 속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양극화된 오늘날 세상과 너무 흡사하다. 인간폭압에 반기를 들고 평등한 이상세계를 그렸지만 자본의 폭압은 지금도 계속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모순과 불평등을 통렬히 비판했다.

인류는 한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돼 치열한 이념전쟁을 했다. 결국 공산체제가 무너졌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만인평등세상을 만든 것도 아니다.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인 21세기에도 ‘독점(獨占, Monopolization)과 분배(分配, Distribution)’ 문제가 인류의 영원한 미제로 남아 있다. 질문이 생긴다. 지금 한국의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

“한국은 본래 ‘천민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정상 자본주의’였지만, 자본의 힘에 의해 노동의 불안전이 더 악화된 것이다. 옛날보다 더 자본화됐고,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학자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가 지적하는 말이다. 한국이 ‘정상 자본주의’라는 말이 조금 놀랍다. 그가 말하는 ‘정상’(正常)이란 ‘정상이 아닌 정상’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가 ‘정상화’ 되면 될수록 불안정과 어려움이 더 심해진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렇다.”

자본의 힘은 노동을 비틀어 버렸다. 이 교수는 “자본가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상적 노동을 원하기 때문에 노동이 비정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생산유연화와 고용유연화가 발동하면서 필요 없으면 사람을 자르고, 필요하면 다시 쓰는 방식을 선진자본국가들이 써먹기 시작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에게 386운동권의 대표 이론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지도 30년이 넘었다. 1987년 대학원 시절에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은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이들의 필독서였다. ‘지하 조직운동’을 하다 옥고도 2년 치렀다. 그는 최근 2년 새 두 권의 불교책을 냈다. ‘불교를 철학하다’(2016, 한겨레출판)와 최근 나온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모과나무)이다.

연희동에 있는 지식공동체 ‘수유너머104’에서 이진경 교수를 만났다.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카르텔과 노동문제, 교육카르텔, 사법적폐 등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근황이 어떤가.

▲ 글 쓰느라 좀 바쁘다. 이곳 ‘수유너머104’ 연구공간에서 강의도 하고, 불교와 관련한 책을 내기도 했다. 얼마 전에 불교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한 불교출판문화상을 2년 연속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지난해 낸 ‘불교를 철학하다’와 올해의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이 선불교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열린 한국불교학회 학술대회에서 ‘불교와 마르크시즘’을 주제로 연기법과 역사유물론을 발표하는 등 강연회 활동도 하고 있다.

 

- 올해도 다사다난한 해였다. 사회학자로서 2018년 우리사회를 평한다면.

▲ 무술년도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사건사고가 많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정치, 경제, 사회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 특히 자본카르텔 사회에서 심화된 양극화와 노동문제로 삶이 더 힘들어졌다. 최저임금에 멍든 자영업자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린 청년문제가 그렇다. 촛불정부가 출범한지 1년 8개월 됐지만 국민이 명령한 재벌개혁과 사법개혁이 후퇴했고, 대법원장의 재판거래로 국민적 공분(公憤)을 샀다. 안전실종과 초미세먼지도 국민 불안을 가중시켰다. 3차에 걸친 남북한 정상의 만남이 한반도 평화무드를 조성했고, 남북교류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사회병리학적으로 볼 때,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개혁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 삶이 갈수록 팍팍하다. 우리만 그런 건가.

▲ 지금 사람들의 삶이 불안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자본화가 더 나쁘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한국재벌들은 1200조원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투자처가 없어 갖고만 있다. 지금의 현물경제에 투자했다가는 실패확률이 높기 때문에 안정적인 금융 쪽에 투자할 태세다. 그런데 금융산업도 이미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해서 모든 일을 하고 있고, 고용도 1~2명만 쓸 뿐 일자리가 거의 없다. 자본이 노동자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도 비슷하게 겪는 현상이다.

 

- 자본이 음지로 흐르면 부작용이 클 텐데.

▲ 한국의 자본가들은 현물투자의 10배가 넘는 큰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대부분 파생금융상품에 현금을 묻어두고 있다. 자본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흘러버렸다. 혈액처럼 돌고 돌아야 경제가 살지만, 본질적으로 자본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소위 낙숫물효과 같은 ‘떡고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항상 ‘떡고물 이론’을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자본은 고용창출이 적은 금융에 쏠려있기 때문에 떡고물이 떨어질 여지가 거의 없다. 문제는 현물투자 산업도 생산을 줄이는 생산성 유연화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미국, 일본, 중국 모두 비정규직이 30%를 넘는다. 양극화도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더 심하다.

 

- 한국 자본주의의 형질을 말한다면.

▲ 한국은 처음부터 천민적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원래 ‘정상적인 자본주의’였지만, 본질상 노동의 불안정성이 더 악화됐을 뿐이다. 갈수록 노동이 사라지고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을 ‘정상적 자본주의’라 부른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옛날보다 더 ‘정상화’ 됐고, 다른 나라들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정상화’ 되면 될수록 ‘불안정’과 ‘어려움’이 커지는 속성이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 과연 차이가 무엇인가.

▲ 고용형태가 변이된 것뿐이다. 정규직은 노동의 정상상태다. 비정규직은 노동이 비정상인 상태를 말한다. 정규직은 휴가비를 받지만, 비정규직은 휴가비가 없다. 여기서 보듯 자본주의의 정상상태가 바로 ‘비노동’이다. 비정상적 노동환경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비정규직은 다른 범주의 노동자다. 실업자에 훨씬 더 가깝다. 실업자이자 비정기적인 노동자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생산을 줄이기 위해 생산유연화를 발동했고, 사람을 줄이는 고용유연화를 즉각 쓰기 시작했다. 필요 없을 때 사람을 자르고 필요하면 다시 쓰는 방식을 도요타가 써먹었다. 지금은 도요타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모두가 그런 식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 신 ‘노동 프리랜서’의 출현이라고 봐야 하는가.

▲ 본래부터 노동 프리랜서가 있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일 뿐, ‘먹고 사는 것은 당신이 알아서 해결해!’, ‘필요할 때 와서 일해!’ 하는 새로운 노동시장이 생겨났다. 이는 자본가의 기본개념이고,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쓰겠다는 거다. 사실 프리랜서 노동자에게는 수당을 두 배로 주는 것이 국제적 원칙이다.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그렇게 한다. 한국은 노동자에게 수당을 더 얹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임금을 더 깎는 등 탐욕스럽다. 압박하고, 그 강도도 심하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이다 보니 자본가들은 고임금 정규직을 쓸 이유가 없다. 언제든 불러 쓸 수 있는 값싼 비정규직을 원한다. 해고할 필요도 없고 지속적으로 써도 돈은 절반만 주면 된다. 이것이 한국이 외국과 비교되는 특이한 부분이다. 외국은 노동임금이 생산유연화 측면에서 다뤄지는데 비해 한국은 어떻게 하면 임금을 깎을까에 매달려 있다. 노동안전성도 없는 ‘반 토막 임금’의 비정규직만 양산될 뿐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이진경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 학위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학위
연구 공간 수유 너머 연구원
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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