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나’라는 작은 존재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나’라는 작은 존재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9.01.04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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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미여행기-스물한 번째 이야기 / 강진수

 

41.

한참 사막을 달리던 승합차가 점점 낮은 지대로 내려오더니 드디어 멈춰 섰다. 약 해발 3000m 고지에서 막 내려왔으니 이제 더 이상 고산 기후로 괴로워할 일이 없다. 차에서 내리니 우유니보다 훨씬 뜨겁고 무더운 햇빛이 우리를 휘감았다. 건조하고 따가운 공기에 놀랄 시간도 없이 칠레 출입국사무관들이 바쁘게 우리가 갈 길을 안내했다. 차에서 무거운 짐들도 다시 다 빼고 사람들 사이에서 길게 줄을 서야 했다. 칠레는 페루나 볼리비아보다 입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짐 검사도 철저히 하는 편이었으니 한참 기다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두 번 정도 사무소를 옮겨 가며 여권 검사와 짐 검사를 번갈아 받았다. 레오와 라리샤, 로게르는 우리와 함께 자리와 짐을 맡아주기도 해가면서 겨우 그 긴 시간을 견뎠다.

아타까마 마을에 온전히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쯤, 점심이 늦어져 우리는 매우 배가 고픈 상태였다. 우리 다섯 일행은 여전히 아타까마에서도 함께 다녔다. 일단 환전을 해야 했기에 함께 환전소를 찾았다. 환전을 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식당이었다. 우유니에서도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기에 거의 첫 끼니라고 할 수 있었다. 첫 끼니인 만큼 근사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난한 배낭여행객들에게 근사한 식사라고 해봤자 피자나 파스타 정도. 가장 괜찮아 보이는 피자집에 들어가서 순식간에 피자를 해치웠다. 그제야 아타까마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의 사막 마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흙으로 지어진 조그만 건물들과 승용차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은 골목들. 관광 마을이라서 이렇게 잘 관리된 부분도 있겠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매우 호감가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여행사를 찾아갔다. 아타까마 사막은 달의 계곡이라는 특이 지형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을 가려면 운송 수단이 있어야 하므로 여행사를 통해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하는 방법이 제일 간편하다. 프로그램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와 형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고, 그저 달의 계곡을 한 번 보고 가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였으므로 가장 기본 프로그램인 버스 투어를 신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버스 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투어 역시 함부로 신청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산티아고로 가는 밤차가 없을 경우 무조건 이 마을에서 하루 숙박을 해야 했기에 먼저 터미널을 들러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터미널로 가는 사이, 로게르와 라리샤 그리고 레오는 여행사를 통해 싸고 질 좋은 숙소를 구했다. 이곳 아타까마는 매우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숙소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어차피 투어를 예약할 것이라면 여행사를 통해 숙소를 구하는 것이 가격 면에서 유리하다. 나와 형은 레오가 머무는 도미토리 호스텔의 주소를 알아 놓고 터미널로 이동했다. 마을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무더운 날씨에 짐을 메고 터미널까지 걷기란 고역이었다. 그리고 터미널에 도착해서 차편을 알아보자, 우려했던 대로 밤에 떠나는 버스에는 남은 좌석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하고 서둘러 여행사로 돌아가 투어 예약과 레오가 머무는 숙소 예약까지 마쳤다.

숙소 카운터에 가서 레오의 이름을 댔더니, 직원이 레오가 있는 방으로 배정해주었다. 레오는 역시 우리를 다시 만날 줄 알았다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반겨 주었다. 그는 며칠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 자전거를 타고 달의 계곡을 도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저녁 시간에야 다시 마을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레오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라리샤와 로게르도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와 형도 서둘러 버스 투어 시간에 맞춰 가야 했다. 우리 다섯의 마지막 저녁을 기약하며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42.

오후 4시, 아타까마 마을 광장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온통 스페인어였고, 가이드가 중간 중간 영어도 조금씩 섞어주었지만 거의 스페인어에 가까운 발음이라 알아듣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버스 안을 통틀어 아시아인이 우리뿐이라는 것에 다시 놀랐다. 남미 여행은 아시아인들에게 매우 어렵고 고되다고 알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확연히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버스에 대부분이었는데, 우유니와 쿠스코의 경우와는 달리 노부부가 꽤 많았다. 아무래도 버스 투어 자체가 편안하기도 하고, 칠레의 인프라와 치안 등 여러모로 고려해보았을 때 연령대가 있는 사람들도 여행하기 좋은 곳일 테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자 달의 계곡 초입이 나타났다. 잠시 버스가 멈춰 서고 티켓을 끊었다. 매점에도 들를 시간이 있어 시원한 콜라 하나를 형과 나누어 마셨다. 달의 계곡 내부로 들어가면 매점을 찾을 수 없기에 미리 음료 정도는 사두어야 한다. 아타까마 사막은 세계에서 건조하기로 손꼽히는 사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버스 투어라 하더라도 걷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타는 듯 하는 갈증을 겪게 된다. 버스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하얀 소금이 암석들을 뒤덮고 있다. 꼭 소복이 눈이 내려 쌓인 것처럼. 버스에서 내리면 그 소금 눈 위를 저벅저벅 걸어볼 수도 있고 교과서에서나 본 성모 마리아 모양의 암석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과 내딛는 걸음들은 꼭 내가 화성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실제로 SF 영화 촬영이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지구라고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이드가 1시간 정도 시간을 주었고 형과 나는 달의 계곡 정상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좁은 계곡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점점 그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모래투성이였던 길은 점점 돌길로 변했다. 한참 암석을 타고 올라갔을까, 어느 정도 고도에 올라가자 바람이 마구잡이로 불었다. 그 거센 바람을 뚫고 우린 계곡 끄트머리까지 나아갔다. 계곡 끝에서 위태로운 낭떠러지를 마주하자 아타까마 사막의 광대하고 신비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먼 곳에는 바닷물이 말라 남은 소금이 강물처럼 줄기를 이루고 있었고, 사막 중간 중간에는 뾰족한 돌산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더 높은 벼랑으로 올라가서 일몰을 구경했다. 해가 아주 천천히 사막의 서쪽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노랗게 물들던 하늘이 점차 불그스름해지며 그 뜨거움을 더했다. 그렇게 사그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다시 달이 떠오를 사막의 계곡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형과 많이 다투고, 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여행에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얻어갈 수 있을까. 그것은 사막도 사막의 노을도 소금의 강과 고대의 바다도 알려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이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나’라는 작은 존재. 그 안에서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보다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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