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골목, 사방에서 들려오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
텅 빈 골목, 사방에서 들려오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9.01.08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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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실 가기] 창신동 봉제거리

재개발, 신도시만 외치는 요즘, 오래된 동네 고유의 분위기를 살려 인기몰이 중인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상인들이 많이 들어와 꾸며놓은 예쁘고 감각 있는 가게들 덕분에 순식간에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다. 젊은 층들을 공략,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더욱 많은 발길을 끌고 있다. 이렇듯 오래됐지만 다시 뜨는 ‘핫 플레이스’ 동네들을 시리즈로 탐방해본다.

 

두 번째 찾은 곳은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1번지 창신동 봉제거리다. 창신동골목시장이 바로 근처에 있다.

창신동 봉제마을은 동대문시장의 주요 생산지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공장들(약 900개)이 모여 있는 봉제산업 집적지다. 2017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으로 창신동 구석구석을 재정비하며 새로운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창신동봉제거리박물관은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창신동이 가지는 문화적, 지역적 특색을 기록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말로 설명하기 애매하지만 막상 가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나오면 만나는 골목으로 쭉 올라가다가 창신동골목시장 끝자락과 만나는 사거리에서 오토바이가 무수히 다니는 골목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이 좁은 골목이 맞다고? 그렇다. 그저 오래된 동네 골목 느낌. 추운 날씨, 보일러에서 나는 연기인지 다리미 열기인지 집집마다 뽀얀 수증기가 피어나온다. 정겹다. 골목에 들어가자마자 낡은 재봉틀들이 보인다. 재봉틀가게다. 재봉틀가게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작은 골목부터가 봉제거리의 시작이다.

놀랐다. 별다른 게 없어서다. 입구에 봉제거리의 자랑인 봉제역사관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붙어있을 뿐. 살짝 오르막길이다.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가 급하게 내려온다. 창신동, 동대문을 지나다니면 원단, 옷 등을 대량으로 나르는 퀵 오토바이가 많다. 스피드가 생명인 그들은 엄청난 무게의 물건들을 싣고 다닐 정도로 고도의 운전 실력을 겸비했지만 좁은 골목길에선 항상 주의해야 한다.

 

골목 바닥은 마치 천을 붙여놓은 모양이다. 텅 빈 거리가 색다르게 보이는 이유다. 왼쪽으로 노동자 인권의 상징 전태일재단 건물이 있다. 전태일열사는 초등학교 4학년때 학교를 그만둔 뒤, 17세 때부터 동대문 평화시장의 의류제조회사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동료 재단사들과 바보회를 만들어 평화시장의 노동조건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청 등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묵살당했다. 결국 22세의 젊은 나이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재단 건물 앞으로 이어지는 봉제거리는 추운 날씨 탓인지 인적이 드물다. 도대체 봉제공장들은 어디 있는 거지? 잘 살펴봐야 한다. 오래된 집들마다 통일된 작은 간판이 붙어있다. ‘○○패션’ ‘○○사’ 등. 그렇다. 전부 봉제공장들이다. 조용한 거리에 가만히 서있으면 기계소리 사이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공장들 앞에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전부 자투리 천이다. 부지런히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폴폴폴 뿜어 나오는 연기만 봐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이곳의 열기가 느껴진다.

 

창신동봉제거리박물관 표지가 보인다. 거리를 박물관이라고 지정한 것을 보면 봉제거리의 역사가 체감된다. 조금 더 들어가니 창작단 팻말이 보인다. 팻말 옆에 봉제골목의 역사가 쓰여 있다. 한 쪽엔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기 쉽게 설명돼있다. 더 걷다보면 ‘봉제인 기억의 벽’도 있다. 이런 팻말은 공장의 외관 벽마다 붙어있으니 꼼꼼히 살펴보며 걸어야 한다.

골목에서 그나마 새 건물로 보이는 빌라는 ‘서울봉제산업협회’ 건물이다.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수업 커리큘럼도 마련돼 있다. 주차장문에 그려진 그림이 눈에 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 열두 살’을 패러디한 그림이다. 포근해 보이는 얼굴에 손으로 다리를 쥐고 있는 모습이 골목과 잘 어울린다.

 

골목 끝에 다다르니 국내 최초 봉제역사관인 ‘이음피음’이 나온다. 지하 1층은 봉제작업실, 지상 1층은 봉제자료실 및 안내데스크, 2층은 봉제역사관 및 단추가게, 3층은 봉제마스터 기념관 및 야외테라스, 4층은 바느질 카페다. 산업혁명 때부터 시작된 봉제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봉제역사관의 설립 배경과 함께 도심제조업의 중심인 창신동의 이야기까지 모두 담고 있다. 또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인의 봉제인을 선정,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직접 사용했던 가위와 도구들도 구경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재봉틀, 인타로크 등 봉제작업과 관련된 기계설비 시설과 패턴, 재단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이 갖춰져 있으며 기기 사용도 가능하다. 컴퓨터 자수기, 열전사 프레스기 등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봉제거리를 한 바퀴 돌고나와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귓속에서 드르륵 거리는 재봉틀 소리가 계속해서 맴돈다. 생각보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진 않았지만 낡은 건물들,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봉제거리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산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음피음 봉제역사관’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니 시간, 날짜를 확인하고 언제든 찾아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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