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닿는 길, 사랑으로 가는 길
슬픔에 닿는 길, 사랑으로 가는 길
  • 한상봉
  • 승인 2019.01.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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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한상봉 칼럼

싸륵싸륵 눈은 내리고, 광화문에서 집회가 열렸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스물네 살 청년이 혼자서 순찰업무를 돌다가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사고가 나고도 네 시간가량 방치되었던 한밤중, 그의 영혼은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참혹하였을까?

그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쓰인 손피켓 하나를 유서처럼 미리 남겼다. 그의 언어는 청와대에 닿았을까? 그를 너무 앞질러 열사라 부를 필요는 없다. 그 순간 참혹한 죽음의 의미가 흐려질 테니. 그는 희생자였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리기 전까지 그 어머니와 그를 사랑하던 이들이 슬퍼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남겨진 것 역시 충분히 슬퍼하는 일이다.
 

'우물에서 하늘보기', 황현산, 삼인, 2015
'우물에서 하늘보기', 황현산, 삼인, 2015

그대 봄빛 손길로다

황현산은 <우물에서 하늘보기>라는 책에서, 몇 가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가수 양희은이 낸 첫 번째 앨범 [아침이슬]에 <엄마 엄마>라는 노래가 실려있다.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의 곡조에 붙인 가사는 이렇다.

엄마 엄마 나 잠들면 앞산에 묻지마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바른 곳으로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주
정든 그님 오시거든 사랑했다 전해주

이 가사의 출처는 작가불명으로 떠돌던 어느 시였다. 본래 이 시의 마지막은 구절은 약간 다르다. “내 친구가 찾아 와도 나 죽었다 말하지 마”라고 한다. 황현산은 이를 두고 “앞산과 뒷산에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달라는 말은 앞산 뒷산에 양지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땅에 묻히기가 그렇게도 두렵다는 뜻일 테고, 찾아오는 친구에게 제 죽음을 말하지 말라는 말은 지난날의 우정에서 영원히 따돌림을 당하기 싫다는 뜻”이라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서 유족들이 아이들을 대신해 호소한 말도 “저희를 잊지 마세요!”였다. 2018년 대한민국은 청년들이 죽어나가는 세상이다. 아이들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땅이다. 청년들이 구석으로 주변으로 내몰리는 참담한 곳이다. 그들에게 한사코 달라붙었던 프로필은 ‘알바’와 ‘비정규직’뿐이었다.

비슷한 시 한 편 더 소개한다. 혁명투사였던 시절에 박노해가 지은 <그대 나 죽거든>.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부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로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진땅이든 언 땅이든 가리지 않는 혁명가의 결기가 보이지만, 결론은 “그대 봄빛 손길”을 받고 싶은 거다. 숭고한 이념의 푯대는 한량없이 높지만, 혁명가라 해도 푯대 아래선 여지없이 외롭고 슬프고 두려워 ‘따뜻한 손길’을 갈망한다. 이게 사람의 마음이다. 슬픈 현실이다.

박노해는 지금 혁명의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결국 ‘그대 봄빛 손길’에 천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혁명의 길에서 빼앗긴 ‘양지바른 마음’을 보상받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의 시는 사진과 더불어 점점 간결하고 섬세하고 단정하고 부드러워졌다. 선문답 같은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어느 글에서, 박노해는 노동해방의 의미를 담은 박‘노해’라는 그 이름마저 버려야 정말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친절하지만 여전히 슬프고 아프고 그늘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

최근에 책 제목만으로 나를 사로잡은 사람이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그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박형준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를 소개하고 있다.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빈한(貧寒)한 그에게도 간신히 사랑이 왔다. 그는 딱딱한 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그래서 여자는 허리가 아팠다. 다음에 사내는 요를 사두고 여자를 기다렸다. 허나 그 여자는 한동안 오지 않았다. ‘물론’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오기는 했다. 이날 사내는 요를 갈며 “천진하게” 웃지만 여자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게 끝이다.

신형철은 “그녀의 마음속에선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 테고, 그녀는 영영 떠났을 것”이라 예감했다. 사내에게 남은 것은 슬픔뿐이었다. “요 하나가 방을 채울 만큼 작은 방이 문제였을 테고, 여자를 침대에 눕힐 수 없는 가난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줄 모르는 사내의 간절한 사랑은 “천진한” 것이었고, 여자는 ‘바뀌지 않겠구나’ 하는 절망감, 결국 이 천진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윽고 사내를 미워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랑보다 가혹한 현실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순간 느꼈을 슬픔에는 ‘밝은’ 해답이 없다.

신형철은 또 다른 슬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 한국전쟁을 앞두고 현기영의 제주에서 이청준의 장흥에서 자행된 ‘전짓불 만행’이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얼굴에다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소문의 벽>, 문학지성사, 2011, 219쪽)

끔찍한 것은 50퍼센트의 확률로 오답을 말했을 경우에 가해질 폭력이다. 신형철은 “그 폭력은 답안 채점 이후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짓줄을 들이미는 순간 이미 시작된 것”이라 했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은 이렇게 시작되는 긴 이야기 끝에서야 겨우 떠오르는 것이지만, 전짓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다 들을 생각이 없다.

그러나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는 진실이 어디 있을까. 이처럼 슬픔은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도, 양지바른 무덤에도, 그대 봄빛 손길에도, 지하방 사내의 심장과 그 여인에게도, 전짓불 앞에도 ‘구체적으로’ 놓여 있다. 다만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슬픔의 깊이를 헤아리려 해도 충분히 가서 닿지 않는다.

 

사진=pixabay.com
사진=pixabay.com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입을 빌어 언뜻 슬픔의 본질을 토설한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가 이집트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는 패전국 이집트 왕 프삼메니토스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다. 이 왕을 길거리에 세워두고, 그의 딸이 하녀로 전락해 물동이를 지고 우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했다. 이 광경을 보고 모든 이집트인들이 슬퍼했으나 정작 왕은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포로행렬에서 늙고 초라해진 자신의 오래된 시종을 알아보고선 주먹으로 제 머리를 치며 슬퍼했다. 여기서 벤야민은 “왜 가족보다 시종의 모습을 보고서야 왕은 슬퍼했을까?” 물었다.

벤야민의 연인 아샤 라치스는 “실제 삶에서는 우리를 감동시키지 않으나 무대 위에서는 감동시키는 것들이 많다. 시종은 그런 배우였을 것”이라 했다. 사람들은 정작 내 가족들의 고통은 무심히 넘기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뜻밖에 펑펑 울기도 하기 때문이다. 슬픔에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일까. 이걸 벤야민은 이렇게 해석했다.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시종을 본 순간이 바로 그 이완의 순간이었다.”

이를 두고 신형철은 “별안간 부모의 초상을 치르게 된 사람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현관에 놓인 부모의 낡고 오래된 신발 한 짝을 보고 비로소 주저앉아 통곡하게 되는 상황 같은 것일까” 하고 되새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확인해 보면, 이야기 속 노인은 시종이 아니라 왕의 ‘친구’였고, 왕은 이렇게 해명한다. “제 집안의 불행은 울고불고하기에는 너무나 큽니다. 하지만 친구의 고통은 울어줄 만 합니다.” 정말 커다란 슬픔은 우리의 입을 막는다. 그 ‘말없음’을 헤아려 슬픔에 공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형철은 “인간이 배울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라고 했다.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뛴다. 내 심장은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그래서 신형철은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한계 앞에서 인간은 마땅히 슬퍼해야 하며,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그 사람의 심장은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 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충분히 다가서지 못하고 매번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거든 슬픔을 통해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절망 속에서 치러지는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끝없는 사랑’으로 ‘끝없는 슬픔’을 치유하려면, 먼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공감 없는 사랑은 ‘영혼 없는 사랑’이며, 이런 사랑에서 진정성을 확인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랑은 슬퍼하는 사람을 ‘수혜자’로 전락시킨다. 그건 일방적인 사랑이며, 사랑을 주는 자에게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만족감’을 제공하고, 받는 자에겐 ‘비굴한 감사’를 압박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참된 사랑의 시작은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베풀기 전에 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력해도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데 늘 실패한다는 것 역시 참담한 일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처럼 우리도 “그럼에도 슬퍼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몬 베유는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는 암담한 상태라 해서 우리가 사랑하기를 그칠 때, 하느님은 정말 없어진다”고 했다. 우리가 슬퍼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인간이기를 정말 포기하는 것이다.

싸륵싸륵 내리던 눈이 그치고, 어두운 하늘이 개이면서 창밖에 볕이 따뜻하다. 공기가 차가와질수록 그 볕이 얼마나 고마운 줄 깨닫게 된다. ‘인간이 희망’이라는 말은 이럴 때 진실이 된다.

<한상봉님은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이면서 ‘가톨릭일꾼’ 편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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