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풍경] 정릉천 산책로에서

 

춥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손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종종 걸음이다. 두터운 다운점퍼에 마스크, 털모자까지 썼지만 추위는 어쩔 수 없다. 이곳 정릉천 산책로를 지배하는 이들은 비둘기떼다. 추운 날씨 탓인지 더 자주, 더 많이 뭉쳐 날아다닌다. 먼지를 일으킨다. 산책로는 이들의 배설물로 범벅이 된다. 이들은, 그래도, 보금자리가, 있다. 용두대교 바로 옆 커다란 주차장 바로 아래다. 주차장을 떠받치는 철구조물, 그 사이에 이들의 아파트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비둘기에게 모이 주지 말라’는 경고문을 깔아뭉개는 어르신들 덕분에 가끔 만찬도 즐긴다.

 

그런데 이곳에는 또 다른 생명도 깃들어 산다. 사람이다. 일 년 내내 이곳이 집인 사람이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노숙인이겠지만 외양은 다르다. 매일 정릉천에서 세수를 하고 몸단장을 한다. 그리고 나선 배낭을 메고 느릿느릿 이곳저곳을 걷거나 앉아 쉬면서 시간을 때운다. 무얼 먹고 어떻게 사는지는 모를 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봄여름가을에만 볼 수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번 겨울이 시작되고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날, 산책로에서 낯선 광경과 조우했다. 산책로 다리 아래에 펴있는 얇은 이불 한 장. 이불 위쪽에는 종이 상자 하나. 상자 안에는 그 사람이 매던 배낭. 설마…. 가만히 숨죽이고 지켜봤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이불 사이로 사람의 숨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사방은 훤히 트여있다. 사람은 계속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잔다. 꽁꽁 싸맨 채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은 사람이 안중에도 없다. 비둘기들이 빙빙 돌며 사람 주위를 난다. 모이라도 물어다줄까? 하는 듯이. 참 추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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