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해가 바뀌어 새해를 맞으며 늙음을 재촉하는 것만 같아 용기를 얻어내려는 마음으로 『논어』를 꺼내서 읽어봅니다. 젊은 시절에는 실의에 빠져있다가도 공자님의 용기에 대한 구절을 읽다보면 불쑥 힘이 솟을 때가 있었던 기억이 있어 고경(古經)을 찾게 됩니다.

“3군(三軍)의 총지휘자인 대장군은 빼앗을 수 있으나, 일개 필부(匹夫)의 뜻은 빼앗을 수가 없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子罕).”  

 

박석무
박석무

군(軍)은 1만2천5백 명의 군대이니 3군은 그 세배인 3만7천5백 명의 군대입니다. 그런 거대한 군대의 장수는 탈취할 수가 있으나 한 사람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니, 공자가 아니고 누가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요. 벌써 4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교사로서 30대 후반이던 나는 수업시간에 그 글귀가 너무 마음에 들어 흑판에 크게 써놓고 10대의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더니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다짐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기억됩니다. 나는 그 구절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학생들도 그 글귀에 느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때 학생 중에는 지금도 나와 만나는 사람이 몇몇 있는데, 그들은 나를 만나면 그 구절을 외우면서 크게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주자의 해석도 의미가 깊습니다. 3만7천5백 명의 군인들 용맹이 어떤 것인데 그들의 지휘관은 통째로 체포할 수 있으나, 일개 인간의 뜻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음은 3군의 용맹이야 남의 용맹이지만 필부의 뜻은 자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빼앗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다산의 해석은 우리를 훨씬 더 감격적이게 해줍니다. 

“뜻을 빼앗을 수 없다함은 부귀에 음(淫)하지 않고, 빈천에 본마음을 바꾸지 않고, 위무(威武)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不可奪志 謂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라고 말하여 맹자의 대장부론을 끌어다가 뜻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더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력을 지니고도 방탕해지지 않고, 아무리 가난하고 천해도 자신의 절개를 바꾸지 않고, 아무리 무서운 위엄과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이 바로 의지를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풀이를 하였으니 얼마나 통쾌한 해석인가요. 공자나 맹자가 아니고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귀한 인간의 의지를 다산은 더 확대 해석하여 그렇게 하는 것만이 뜻을 지키고 자신의 주체성을 끝까지 확보하는 일이라 했으니, 우리로서야 가슴이 뛰고 부러움이 앞서지만 그렇게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다산은 또 말합니다. 

“뜻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志非在外也).”라고 말하여 장수의 마음 밖에 있는 3만7천5백 명의 군대를 패배시키면 혼자 있는 장수야 바로 포획할 수 있으나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뜻은 외부의 어떤 힘으로도 빼앗지 못한다는 것이니,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요. 독립운동가들, 애국지사들, 민주투쟁가들 그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죽일 수는 있어도 그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던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용기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그 구절을 계속해서 암송하면서 그런 용기 지니기를 염원해 보기만 합니다. 

한해 두해 세월만 흐르면서 용기만 점점 잃어가고 있으니 ‘불가탈지(不可奪志)’라는 네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 봅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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