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언덕배기집에는 해가 뜬다
갯마을 언덕배기집에는 해가 뜬다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9.01.14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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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의 어른을 위한 동화] 해 뜨는 마을

윤지네가 사는 곳은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있다. 앞으로는 봉긋봉긋한 섬들이,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에워싸고 있는 아늑한 갯마을이다.

윤지는 거의 매일 그랬듯이 오늘도 그 맑은 소리에 눈을 떴다. 바다 쪽으로 난 창문을 열어젖히자 갯바람이 달려들었다. 쏴아, 하는 파도 소리도 들려왔다.

윤지는 언제부터인가 이 시간이면 잠에서 깨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도시에서 살 때는 엄마가 깨워주거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지만, 바닷가 마을에 이사 오고부터는 혼자 일어나는 날이 많았다. 엄마는 그런 윤지가 대견한지, “우리 윤지 많이 컸구나. 스스로 일어날 줄도 알고."

 

사진=pixabay.com
사진=pixabay.com

윤지는 잘 안다. 자기를 깨워준 것이 참새라는 것을. 매일 아침, 바깥마당에서 들려오는 참새 소리에 눈을 뜨곤 했던 것이다.

윤지네 집 마당가에는 아름드리 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바다 쪽으로 가지를 뻗은 전나무는 늘 푸른 모습으로 새들의 놀이터가 돼 주었다. 참새뿐만 아니라 고운 목청을 뽐내는 새들이 많이 날아들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새 소리가 떠날 줄 몰랐다. 윤지는 참새와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날 깨워줘서 고마워.

참새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깜빡이며 윤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윤지는 잠옷 바람으로 거실로 나왔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어서 세수하렴. 밥 먹어야지.

세탁기를 돌리던 엄마가 윤지를 보고 말씀하셨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 수평선으로 해가 떠오를 것이다.

서해에서 해가 뜬다니! 거짓말 같지만 이건 정말이다. 동해에서 뜨는 해가 마치 잘 익은 석류알 같다면 서해에서 뜨는 해는 활활 잘도 타는 장작불 같다.

식탁에 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거실 창문으로 해가 뜨는 모습이 보였다. 윤지가 탄성을 질렀다.

“아빠, 해가 떠올라요!

매일 대하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랐다.

수평선을 박차고 솟아오른 해는 아기의 볼처럼 발그레했다. 윤지는 눈이 부셔 손바닥으로 해를 가렸다. 구름에 살짝 가린 해는 수평선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윤지네 집에서는 그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윤지는 언젠가 아빠한테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는 이유를 여쭤보았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고 배웠는데, 서쪽에서 해가 뜨는 게 궁금했기 때문이다.

서쪽에서 해가 뜨는 곳은 여기밖에 없단다. 자세히 보면 수평선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땅의 모양도 동쪽을 향해 툭 튀어나왔단다. 서해에서 해가 떠오르는 이유는 이 수평선과 땅의 모양이 동해 쪽과 비슷하기 때문이지.

윤지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했지만 얼른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윤지네가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내려온 것은 지난 초가을 무렵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게 된 아빠는 긴 고민 끝에 결국 고향행을 결심하였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대하셨던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짐을 꾸리셨던 것이다.

윤지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무엇보다 싫었다.

그런 윤지의 마음을 읽은 아빠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윤지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거야. 그곳에 가면 윤지가 보고 싶어 했던 바다도 있고 아담한 학교도 있단다. 새 친구들도 있고.

이사 온 지 서너 달이 지난 지금, 처음의 서먹함은 점차 뿌듯함으로 변해갔다. 도시의 편리한 생활에 비길 수는 없지만 맑은 공기하며 파도 소리, 그리고 곳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은 이곳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빠는 얼마 전,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마을에다 어린이 도서관을 연 것이다. ‘아이들 세상’. 아빠가 지은 도서관 이름이다. 긴 책상 두 개와 의자 스무 개, 그리고 컴퓨터 다섯 대도 사놓았다.

어린이 도서관을 열던 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조촐한 잔치를 벌였다. 엄마는 과일이며 과자를 푸짐하게 준비해 아이들한테 나누어주었다. 마을 어른들께는 손수 만든 떡과 고기를 대접했다. 아빠 친구 분들이 꽃다발이며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적적하던 마을이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도서관은 마을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학교 공부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모여들었다. 자리에 빙 둘러앉아 동화책을 읽기도 하고, 숙제를 하기도 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옛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글짓기 지도도 해 주셨다.

오늘은 모처럼 아빠가 쉬는 날이다.

윤지는 아빠와 함께 바닷물이 빠져나간 개펄로 향했다. 저만큼 아랫마을에 사는 민형이가 윤지를 보고 손짓했다. 민형이는 윤지와 같은 반으로 공부도 잘 하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다.

민형이 아빠는 원양어선의 선장이었다. 늘 먼 바다에 나가 있어 일 년에 네 번 정도 집에 온다고 했다. 윤지는 얼마 전 민형이 아빠를 본 적이 있다. 키가 크고 구릿빛 얼굴에 가방을 든 민형이 아빠는 아무리 봐도 멋쟁이셨다.

물이 빠져나간 개펄에는 머릿수건을 둘러쓴 할머니들이 바지락이며 굴을 캐느라 분주했다. 뾰족한 호미로 진흙을 파헤치자 어른 손가락 두 배만한 바지락이 나왔다.

개펄은 바다 생물들의 천국이었다. 참방게, 갯지렁이, 민챙이, 동죽, 비단고둥, 맛조개, 그밖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마한 벌레들까지.

윤지는 아빠를 따라 개펄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집에서 챙겨온 호미를 들고 발목까지 빠지는 개흙을 누비고 다닌 지 한 시간 남짓. 소쿠리에 제법 많은 바지락이 모였다.

바지락을 캐던 아빠가 이번에는 돌에 달라붙어 있는 굴을 따기 시작했다.

윤지야, 굴을 딸 때는 이런 작은 돌을 밟거나 뒤집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돌에 붙은 굴이 죽고 말거든.

윤지는 집으로 돌아오다 바닷가에 널려 있는 예쁜 조약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그 돌은 유난히 매끄러웠다.

윤지는 집으로 가지고 온 그 조약돌에다 연필로 ‘해 뜨는 마을’이라고 써서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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