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혼자인 걸 못 견디죠
[신간] 혼자인 걸 못 견디죠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9.01.14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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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 지음/ 창비

 

소외된 사람들의 비극적 삶을 특유의 시각과 기법으로 그려내며 호평받아온 이기인 시인의 세번째 시집 혼자인 걸 못 견디죠가 출간되었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 2010)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이전의 시세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색다른 화법을 구사하며 단순한 변모를 뛰어넘는 시적 진화의 경지를 선보인다. 감각과 의미의 상투성을 전복하는 다각적인 시각으로 대상의 이면에 끈질기게 다가가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알쏭달쏭한 언어 실험”(임선기, 추천사)을 보여준다. 낯선 이미지와 정밀한 언어가 어우러진 ‘초주관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간명한 시편들이 인상 깊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스무행을 넘지 않는 시가 태반이다. 그만큼 최소한의 정제된 언어로 삶의 장면과 시적 대상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것인데, 특히 한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를 눈여겨봄직하다. 이를테면 “수저를 떨어뜨렸나”(「까마귀」), “천국으로//김칫국물이 떨어졌다”(「점심」), “누가 한뿌리씩//전생의 빛을 뽑아간다”(「파」) 같은 단 한 문장의 시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흙을 만지는 시간」) 하나의 사물 또는 일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매가 얼마나 깊고 매서운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기인 시의 독자라면 이번 시집을 여는 순간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기존의 언어 체계나 실감 또는 경험 논리로는 단어 하나하나에 촘촘히 새겨넣은 의미를 알아채기가 녹록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시인은 상투적 정서에서 벗어나 낯선 시각으로 세상을 달리 보고자 한다. “발버둥 팔다리를 축축하게 담그는 포도당 용액”(「밑그림 반항」), “흰 수건에서 헤엄쳐 나오는 오리 한마리”(「그렇다면 혼자」) 같은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사물의 뒷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밝혀내려는 시인은, 시는 경험한 것이나 보이는 것만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져 관념의 바다를 유영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아무도 말도 없는 곳에서 당신을 찾아내”(「이루어지도록」)듯 시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기인의 시를 읽기 위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언어 체계를 기반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아직 없는 것’ 혹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의 자리를 더듬으며 다르게 경험해보는 전복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기인의 시에는 전혀 별개의 사물이나 단어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서로에게 수수께끼처럼 흩어진”(「탈지면 눈썹」) 채 나열되어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경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임선기, 추천사)의 세계에서는 ‘사랑해요’를 “요해랑사로 읽”(「노인과 바다」)는 “엉망이 필요”(「옮긴이」)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인은 “너는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라지는 농담이야”(「앵무」)라는 문장에서 보듯 우리가 ‘말’이라고 믿었던 것은 어쩌면 뜻도 모르면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깨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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