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휘게’ 스웨덴의 ‘라곰’ 그리고 한국의 ‘포차’
덴마크의 ‘휘게’ 스웨덴의 ‘라곰’ 그리고 한국의 ‘포차’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9.01.15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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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최근 케이블 TV tvN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국경 없는 포차’가 인기다. 프랑스 파리에 이어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무대를 옮겼다. 박중훈 안정환 신세경 이이경 등이 코펜하겐 관광의 핵심인 뉘하운(Nyhavn)에 한국식 포장마차를 차리고, 한국식 안주를 팔고 있다.

무대가 코펜하겐이다 보니 덴마크의 시민 정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스웨덴이 아닌 스웨덴의 이웃나라인 덴마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덴마크 휘게 -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휘게’는 스웨덴의 ‘라곰’이나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과도 같은 개념이다. (사진 = 이석원)
덴마크 휘게 -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휘게’는 스웨덴의 ‘라곰’이나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과도 같은 개념이다. (사진 = 이석원)

덴마크는 스웨덴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면이 많다. 우선 언어가 비슷하다. 모음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단어의 유사성도 깊고, 발음도 비슷하다. 스웨덴 사람과 덴마크 사람은 각각 자기들의 언어로도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는 이뤄진다. 서울 사람과 사투리가 심한 경북 문경 사람 정도의 언어 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은 역사를 함께 한다. 덴마크는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함께 바이킹이 세운 나라다. 조상이 같다는 뜻이다. 게다가 14세기부터 126년 간 덴마크는 스웨덴 노르웨이와 사실상 같은 나라가 되기도 했다. 당시 칼마르 동맹을 통해 덴마크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지배하기도 했다.

근대에 와서 덴마크는 노동조합이나 노사 문화, 사회민주주의에 입각한 복지 등의 여러 제도를 스웨덴으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덴마크는 오히려 스웨덴보다 더 폭넓은 복지 정책을 수립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살고 있다.

그런데 덴마크가 세계 최고의 행복지수를 누리는 이유는 단지 경제적인 부유함이나 최고의 복지 시스템 때문만은 아니다. 그 중심에는 ‘휘게(Hygge)’가 있다.

‘휘게’의 뜻은 단순하다. 평범하고 소소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본질적인 행복감을 나타내는 단어다.

‘휘게’는 ‘편안함’ 또는 ‘따뜻함’을 뜻한다. 그런데 그 편안함과 따뜻함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단란하게 모여 있는, 일상 속에서의 소소하지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다. 즉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소박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다.

2016년 마이크 비킹 덴마크 행복연구소장이 발간한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A Little Book of Hygge)’가 영국에 출간되고 BBC 등에서 ‘휘게’를 소개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 보다 먼저 유명해진 ‘잘했다’는 뜻의 핀란드어 ‘휘바휘바(Hyvaahyvva)’와 혼동도 하지만,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데서 유래한 ‘소확행’은 덴마크의 ‘휘게’와 가장 닮은 단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휘게는 이전에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스웨덴의 ‘라곰(Lagom’과도 통한다. ‘적당한, 알맞은’이라는 뜻을 지닌 ‘라곰’은 ‘절대 과하지 않고, 대단하지도 않으며 욕심과 부족함을 모두 잊게 해주는 적당함’으로 표현되는 스웨덴 라이프스타일이다.

 

코펜하겐 뉘하운 - 덴마크 코펜하게 관광의 핵심인 뉘하운.(사진 = 이석원)
코펜하겐 뉘하운 - 덴마크 코펜하게 관광의 핵심인 뉘하운.(사진 = 이석원)

물론 덴마크의 ‘휘게’나 스웨덴의 ‘라곰’은 안정적이고 평안한 복지 정책, 국가의 이익보다 시민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도, 개인의 무한 행복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질서를 지상 가치로 여기는 정치 지도자들의 인식으로 인해 가능한 이야기이다.

경제가 풍요로울 때는 그 이익을 시민들과 충분히 나누고, 국가의 발전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행복을 제한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전체 공동체의 공통의 행복을 위해 시민 스스로가 고통화 행복을 충분히 분담하는 의식에 의해 ‘휘게’와 ‘라곰’이 이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이 제안될 수도 있고, 개인의 행복보다는 기업의 이윤 추구가 국가 운영의 우선순위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휘게’니 ‘라곰’이니 하는 소소한 행복이 소소하지 않고 대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개발독재시대, ‘잘 사는 나라’를 만든다는 미명하에 개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면서 대기업에 모든 혜택을 몰아준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면서도 아직도 그 혜택을 ‘희생했던’ 개인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라고 최저임금을 8350원으로 만들었더니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 못하기로는 매한가지인 영세 자영업자들만 죽게 만든다. 편의점 본사나 조물주의 형님 건물주는 피 한 방울, 눈물 한 모금도 흘리지 않는다. 그런 대한민국에는 ‘휘게’니 ‘라곰’이 애당초 가당치 않은 일이 되는 것이다.

‘휘게’의 덴마크나 ‘라곰’의 스웨덴은 어떤 명분으로도 개인을 기업이나 국가의 희생물로 만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공동체를 위해 개인은 스스로 자기행복의 일부를 양보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복은 거창하고 요란하지 않은 것이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소박한 식탁의 음식을 나누고, 각자가 사들고 온 몇 병의 술로 친구들의 자리가 따뜻해지는 것이 거의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인 것이다.

‘국경 없는 포차’를 찾은 덴마크 사람들은 “한국의 포장마차는 가장 적합한 ‘휘게’의 공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친구와 나눌 수 있는 한 잔의 술,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전문적이지도, 어설프지도 않은 안주, 큰 의미 없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내 잊어버릴 수 있는 주인과의 말 한 마디가 전형적인 ‘휘게’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포장마차는 소소한 행복의 공간이라기보다 암울한 현실에 대한 하수구가 되고 있지는 않을까? 그나마도 주머니 속 찬바람이 북풍한설인 최저임금 생활자나,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내보내고 하루 24시간의 노동에 신음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포장마차조차 사치스러운 공간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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