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30-50’ 클럽

고대했던 ‘3만 달러’ 시대가 열렸지만 길고 긴 그림자는 여전하다. 한국은행은 최근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 추정치가 3만 1000달러를 넘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1인당 GNI가 3만달러를 돌파한 건 2006년 2만달러 돌파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3만 달러는 선진국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경제 불황이 겹치면서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이면서 소득 3만달러를 넘는 ‘30-50 클럽’ 국가로는 세계 7번째다. 하지만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부익부빈익빈 현상의 심화는 이 같은 달성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3만달러 시대에 돌입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살펴봤다.

 

목표는 달성했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소득 3만달러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마음껏 축포를 터뜨리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다

국민들의 만족도나 행복 체감도를 비롯 향후 경제 전망조차 그다지 밝지 않다. 당장 2%대로 내려앉은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빛 만큼 어둠을 짙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소득불평등의 심화, 고령화 사회로의 부담 등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좌초한 나라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조심스러운 이유다.

대한민국의 1인당 GNI는 2006년(2만 795달러) 처음 2만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해 2만9745달러로 3만달러에 근접했다. 2만에서 3만달러까지 평균 10년이 걸린 앞선 나라들과 비교하면 2년 가량 더 걸렸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점을 감안하면 양호한 결과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오는 6월 공개되는 국민계정 기준연도 개편(2010년→2015년) 결과에 따라서는 3만 달러 진입 시점이 2017년으로 1년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그 동안 1인당 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문턱으로 간주됐다. 1인당 3만달러는 미국의 5만 6810달러엔 못 미쳐도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규모다.

특히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에 속한다. 2016년 기준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국가는 30곳이지만, 우리처럼 인구가 5000만명을 넘는 이른바 ‘30-50클럽’ 국가는 6개국(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에 불과하다.
 

“성장전략의 한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상승은 전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만큼 상승세를 보여왔다. 1963년 100달러, 1977년 1000달러, 1994년 1만달러, 2006년 2만달러를 잇따라 돌파한 뒤 3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더구나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고 이룬 성과여서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다음 목표인 4만 달러에 대한 희망은 현재로서는 희미하기만 하다. 세계적으로 1인당 소득이 4만달러를 넘는 국가는 23곳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보다 앞서 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나라들은 4만달러까지 도달하는 데 평균 4.3년이 걸렸다.

문제는 주변 여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4만달러 달성 국가들의 3만∼4만달러 시기 경제지표 평균치를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성장률(124)과 경상수지(319), 제조업 성장률(124), 연구개발 투자 비율(183)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내수 성장률(67), 서비스업 성장률(92), 고용률(98)에선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위주 수출에 집중된 성장전략의 한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자본으로 분류되는 정부 효율성(70), 비즈니스 효율성(37), 사회적 갈등(55), 투명성(65) 등 이른바 선진국형 지표들은 더욱 차이가 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의 전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글로벌 리스크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대외건전성을 탄탄하게 하고 재정 적자가 지나치게 늘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출산 고령화 심화 현상도 넘어야 할 산이다. 금융위기 이후 심화되는 경제적 조로현상을 극복하고 무엇보다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2∼3%대에 머물며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금의 고령화 속도가 늦춰지지 않을 경우 성장률은 2016∼2025년 연평균 1.9%, 2026∼35년 0.4%로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익부 빈익빈’ 심화

소득양극화 현상도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3만 달러 시대의 도래에도 일반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은 냉랭하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17년 63.0%로 하락하며 2014년 62.8%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성장 과실이 가계보다 기업에 몰리며 '풀뿌리 경제'를 약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계 사이에서의 양극화도 뚜렷하다. 지난해 상반기 소득 10분위별 가구소득 증가율에 따르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포괄하는 1∼5분위 소득은 일제히 감소했다. 대신 이보다 소득이 높은 6∼10분위 소득은 모두 상승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40대 중반 남성 K씨는 “3만달러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 체감 경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교육비와 주택비의 상승은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 청년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체감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대기업 수출에 의존해 상당 부분을 벌어들이는 구조라 소득의 많은 부분을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3분기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지만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명목국민소득과 실질 국민소득의 괴리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명목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었지만 실질 구매력은 이에 못미친다는 얘기다.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실질적인 국민들 삶은 여전히 어려움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를 비롯 경제 주체들이 이에 걸맞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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