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상 나무꾼인갑소!”
“나는 천상 나무꾼인갑소!”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9.01.2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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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하이에나란 동물이 그런 별명을 갖고 있다던가. 남이 먹다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버려둔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방식으로 밀림에 진동할 수도 있는 악취를 미연에 방지하는 청소부라고.

요 며칠 내가 나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바로 다름 아닌 하이에나라고. 최소한 하이에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논 가의 아카시아
논 가의 아카시아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예전에는 그렇게도 밉상스러워 보이던 하이에나가 제법 예쁘다고 여겨진다. 하이에나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동물의 왕국’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오는 하이에나는 소리도 무슨 굶어 죽은 귀신을 연상케 하고, 생긴 것 또한 쓰다가 버린 걸레를 발기발기 찢어서 붙여놓은 것만 같아 꿈에 볼까 두렵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내 자신을 하이에나와 비슷한 동급의 무엇이라는 따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세상이란 정말로 다 살아보기 전에는 함부로 뭐라고 규정해서 말할 일이 아니로구나, 싶기도 하다.

하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이것이 이것이구나, 했다가 몇 년 뒤에 이것은 이것이 아니라 저것이구나, 했다가 몇 년이 지난 뒤에는 다시 또 이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것인가 보다, 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지난날의 나 자신을 부끄러워한 경우를 찾아보기로 하자면 아마 열 손가락을 서른 번도 넘게 꼽아야 할 것이다.

땔나무만 해도 그렇다. 대나무 숲에 대여섯 평 규모의 단아한 별채 하나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당시의 나는 황토벽에 구들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게 벌써 십 년 가까이나 전의 일이다. 생각만 근사하게 하고 선뜻 일을 벌이지 못한 까닭은 내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기도 했지만, 땔나무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의 답을 내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굴삭기로 찍어놓은 나무들
굴삭기로 찍어놓은 나무들

황토방을 뜨끈뜨끈하게 데워놓고 뒹굴, 뒹굴, 뒹굴어가며 책갈피를 넘기는 그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땔나무를 내 손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예 모른다면 무식하게 그냥 일을 벌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린 시절 충분히 경험해 두었던,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게로 져서 날랐던 나뭇단이 집채 두 개만큼이나 되는데도 한겨울 서너 달을 지나고 나면 싹 다 없어지곤 했던 시절을 생각하노라면 고개가 절로 회회 저어지던 것이었다.

그런데다 그 즈음 화목보일러 소동까지 일어났다. 난방유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일 년 농사를 지어봐야 기름 값으로 다 나간다고 너나없이 투덜거리던 시절이었다. 때맞춰 등장한 것이 화목보일러였다.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것이라서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 2년이 채 안 돼서 기름 값 빠진다는 광고에 귀가 솔깃해진 사람들이 앞 다퉈 화목보일러를 설치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 몇 달 동안은 돈 안 드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재미를 2년 이상 누린 사람은 별로 없다. 트럭이나 경운기를 몰고 다니며 열심히 땔나무를 해 날랐지만 이게 끝이 안 보였다. 트럭으로 한가득 나무를 해 오면 그것을 다시 잘라야 하고 빠개야 하는데 그나마도 닷새를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놈의 화목보일러가 나무 먹는 공룡이라느니, 돈 몇 푼 아끼려다가 완전히 노예살이를 한다느니, 이런저런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화목보일러를 고물장사에게 넘기고 다시 기름보일러를 설치하는 사람이 등장했고, 이는 곧 유행이 되고 말았다.

“아 사람이 살자고 불도 때는 것인디, 불 때자고 골병들어 죽을 짓을 어찌케 할 것인가. 안 그려?”

 

로켓을 연상케 하는
로켓을 연상케 하는
장작난로 시험중
장작난로 시험중

화목보일러를 퇴출한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대체로 그와 같았다. 그런 얘기를 반복적으로 듣는 동안 나는 슬슬 겁이 나고 있었다. 아이고 안 되겠다. 사륜 구동의 트럭을 몰고 다니는 사람도 못 하겠다고 나자빠지는 판에 내가 어찌 그 많은 땔나무를 감당하랴.

이렇게 해서 뜨끈뜨끈한 구들방에 대한 낭만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나 또한 기름보일러에 이미 익숙해 있었던 탓이겠지만, 어쨌든 대밭에 별채를 짓기는 짓되 구들방이 아닌 보일러 난방을 전제로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도중에 발견한 것이 저 애물단지 같은 장작난로였다.

어느 하루 식당에 갔다가 발견한 장작난로가, 틱틱 소리를 내며 타 들어가는 불꽃이,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 장작난로의 그 소리와 불꽃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 삶을 풍성하게 살찌워줄 낭만 중에 낭만이라 여겨졌다.

생각이 짧아서 미쳤던 것일까.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본 까닭에 환장해 버렸던 것일까. 장작난로나 화목보일러나, 이름만 다를 뿐 소비하는 물량은 다를 게 하나도 없을 거라는 추론 같은 것은 해보지도 못한 채 나는 장작난로에 팍 꽂혔고, 그리고 작업 중인 별채는 아직 공사가 절반도 끝나지 않았건만 장작난로를 주문해서 실험까지 해 보았다.

실험은 국화 향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놓는 마당에서 초저녁에 진행되었다. 마당 한가운데 장작난로를 놓고, 연통 하나를 끼워놓고, 장작이 아닌 나뭇가지 마른 것들을 잔뜩 집어넣고 종이에 불을 붙여 집어넣으니 이것 좀 봐라, 난로 안에 갇힌 불꽃이 그야말로 활활 피어나는 꽃 같다. 연통으로 빠져나가는 불꽃은 연기와 섞여서 흡사 로켓이 치솟아 오르는 것 같다.

 

이 작은 톱 하나로
이 작은 톱 하나로

“와아따야. 이것 참 멋지다. 근사하다.”

내 입이 절로 그냥 감탄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나 혼자서만 멋지다고 여겼다면 그나마 덜 환장했을지도 모르지만, 내 옆의 그녀가 추임새라도 넣듯이 멋지다, 멋지다, 소리를 계속 해대니 나는 그야말로 환장이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부터 별채 공사에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일 년쯤 뒤에, 별채 공사를 다 끝내고 마침내 장작난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던 첫날 바로 알았다. 땔나무를 너무 많이 소비해서 퇴출되고 있는 화목보일러보다 장작난로가 오히려 땔나무를 더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을.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앉아 계산을 해보니 화목보일러는 차치하고, 구들방보다도 장작난로에 처넣는 땔나무가 양적으로 최소한 세 배 아니 다섯 배도 더 되는 것 같았다. 구들방은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 놓으면 연기가 돌고 돌며 구들을 데워놓은 뒤에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장작난로는 연기가 식기도 전에 빠져나가 버린다. 또한 구들은 일단 덥혀지면 열 시간 이상 지속되는 반면 화목난로는 지키고 앉아서 계속 땔감을 넣어줘야만 한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있을까. 멍텅구리도 이런 멍텅구리가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을까.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방구석을 죄다 뜯어서 다시 구들방으로 만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이미 불가능했고, 자존심이 상해서도 그렇게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장작난로가 나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준다고, 그런 억지주장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땔나무 사냥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져온 나무들
집으로 가져온 나무들

톱과 낫을 들고 나서긴 했지만, 내 손으로 생나무를 베어낼 일은 별로 없었다. 추석 무렵 벌초를 나온 사람들이 베어 넘긴 소나무가 여기저기 무덤가 도처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지고 산을 내려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내려오는 도중에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해서 내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정말로 이상하게 상처가 하나도 안 아프고, 쓰리지도 않고, 짜증도 안 나고 그저 재미있다는 기분이기만 했다.

무덤가에 버려진 소나무 나르기를 하루에 서너 시간씩 열흘쯤 하고 나니 이번에는 굴삭기로 찍어 넘어뜨린 나무들이 눈에 보였다. 이번에는 산속이 아니라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농로 변이었다. 논 옆에 작은 산이 있는데 이 산의 나무들이 멋대로 마구 자라서 통행을 방해하고, 논에 그늘까지 드리우니, 논 주인이 아마 톱으로 예쁘게 베어낼 생각까지는 못하고 그냥 굴삭기를 끌고 와서 찍어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정경이 자못 처참했다.

가지를 굴삭기로 쿡쿡 찍어서 찢어놓았는가 하면, 중동 부위를 콱콱 찍어서 부러뜨려 놓았고, 뿌리는 얼마나 실랑이를 당했는지 부러지고 찢겨진 채로 절반쯤 드러나 있었다. 중세 시대의 사형 방법으로 육시처참이 있고, 소 네 마리를 동원해서 팔 다리를 각각 찢어놓는 거열형이 있었다는데 꼭 그런 방식이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우울하고, 참혹하기까지 했다. 톱으로 곱게 베어낸 것이라면 우울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나로서는 횡재를 만난 셈이다. 작은 톱으로 곱게 자르고 다듬어서 가져 나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데 지나가던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 왔다. 지금 때가 어느 시절인데 장난감 같은 손 톱으로 커다란 나무를 자른단 말이냐. 요새 흔해빠진 엔진 톱을 들이대면 한 시간도 안 돼서 끝날 일을 손 톱으로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몇날며칠이 걸릴 것이다. 이런 멍청한 시간 낭비를 왜 하느냐 등등 뭐 그런 이상한 얘기를 혼잣말로 중얼중얼 내 뒤에서 하고 있는데 그것 참, 뭐라고 대응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모른 체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난로의 크기에 맞게 잘라놓은 나무토막들
난로의 크기에 맞게 잘라놓은 나무토막들

“나는 시방 운동 하는 것이오, 남 운동 하는데 뭔 시비요?”

했더니 그는 여전히 혼잣말로 뭐라고 꿍시렁대며 가버렸다. 그가 떠난 뒤에 생각해보니 아 이것이구나 싶었다. 작은 톱으로 쓱싹쓱싹 나무를 자르는 재미에 나는 빠진다는 의식도 없이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발을 딛고 있는 땅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도 이마와 가슴에서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재미, 그 맛을 누가 알 것인가 말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점차 나무꾼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어느 하루 옆집 아주머니께서 당신 남편 산소 주변으로 나무들이 너무 크게 자랐다고, 남편이 꿈에 나타나서 나무들 좀 베 달란다고 나한테 베어가라 하더니, 며칠 뒤에는 아랫집 남자가 자기네 고추밭 두렁에 참나무가 너무 많다고, 나무 그늘 때문에 고추 농사가 안 된다고 베어가라고 하더니, 또 며칠 뒤에는 엉뚱하게도 우리 마을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타동네 사람으로부터 그런 청탁을 받았다.

“아 이놈의 아카시아가 말이요 잉. 아따 참말로 징글징글하당게요.”

산자락 아래 도로가 있고, 도로 아래쪽에 논이 있는데 논과 도로 사이의 공한지에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해서 농사 때마다 짜증이 난다고, 그것을 베어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자기네 집에 기계톱이 있다고, 그것을 빌려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기계톱 싫다고, 내 손에 딱 맞는 작은 손톱으로 그냥 천천히 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도대체 이게 어느 별에서 온 괴물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이나 쳐다만 보고 있더니 고개를 회회 내두른다. 뭐라고든 한 마디 안 해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나는 천상 나무꾼인갑소야.”

별 생각도 없이 내뱉은 그 말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 어쩌면 내 몸에 나무꾼 디엔에이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밖에만 나갔다 하면 나무가 눈을 가득 채운다. 쓰러진 나무는 물론이고, 안 쓰러지고 서 있는 나무들도 보는 순간 내가 베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자동으로 척척 구분돼서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니, 이만하면 나무꾼 자격이 충분하다고 해도 되는 것 아닐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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