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돼지의 보복
[신간] 돼지의 보복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9.02.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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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따요시 에이끼 지음/ 곽형덕 옮김/ 창비

 

전후 오끼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마따요시 에이끼(又吉栄喜)의 대표작 두편을 수록한 '돼지의 보복'이 창비세계문학 67번으로 발간됐다. 마따요시 에이끼는 1947년 오끼나와 남부 우라소에(浦添)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 살고 있는 작가이다. 오끼나와의 전통뿐 아니라 미군 기지촌의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미군 병사와 오끼나와인의 내면을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왔다. 특히 이 책에 실린 중편 '돼지의 보복'과 '등에 그려진 협죽도'는 각각 오끼나와의 정신세계와 현실세계를 상징하는 ‘돼지’와 ‘미군기지’라는 두가지 테마를 다루고 있다.

중편 '돼지의 보복'은 오끼나와 문화를 상징하는 ‘돼지’와 ‘풍장(風葬)’, 그리고 민간신앙에서 참배의 대상이 되는 성소 ‘우따끼(御嶽)’를 작품의 소재로 채택했다.

스낵바(술집) ‘달빛 해변’에 돼지가 난입했을 때 호스티스 와까꼬는 넋을 떨어뜨린다. 대학 신입생 쇼오끼찌는 액운을 없앨 방법으로 우따끼 참배를 권하며 술집 여자들을 자신의 고향 마지야섬으로 안내한다. 그런데 고향으로 가는 쇼오끼찌의 진짜 목적은 마지야섬 해안가에 풍장된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문중묘에 납골하려는 것이다. 쇼오끼찌의 아버지는 12년 전 바다에 빠져 사망했고, 마지야섬에서는 비명횡사한 사람은 12년간 풍장을 하는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마지야섬에 도착한 쇼오끼찌 일행에게는 일련의 사건이 닥친다. 먼저 민박집 여주인이 술을 마시고 창가에서 달을 바라보다 떨어져 쇼오끼찌 일행이 여주인을 진료소에 입원시킨다. 부인을 도와준 보답으로 민박집 주인 남자가 돼지고기를 주지만 이를 먹고 술집 여자들은 설사를 심하게 한다. 여자들이 모두 배탈이 나 우따끼 참배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고 체류 일정은 길어진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던 쇼오끼찌는 상태가 악화된 마담을 진료소에 입원시키고 두명의 호스티스를 돌본다. 그사이 여자들은 남편에게 배신당한 일, 아이를 낙태한 일 등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다. 이런 진솔한 고백과 참회를 통해 여자들은 아픈 과거를 드러내고 치유할 전기를 마련한다. 마지막날 쇼오끼찌는 풍장 상태인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하러 해안가로 찾아가며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오끼나와에서 돼지는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보복을 하거나 보답을 하는 양의적 존재로 인식됐다. 돼지가 난입해 넋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돼지고기를 먹고 속병을 앓기도 하지만 결국 이를 계기로 고뇌에서 해방된다는 이야기 구조는 오끼나와인의 돼지에 대한 전통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돼지의 보복'은 쇼오끼찌와 술집 여자들이 고백과 참회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로, 이 소설에서 고통스러운 삶의 기억은 ‘돼지’와의 인연을 거쳐 부드럽게 정화된다.

중편 '등에 그려진 협죽도'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오끼나와 미군기지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 즉 미군 아버지를 둔 혼혈인, 술집 호스티스, 스트립댄서, 파병을 앞둔 미군 병사 등을 그렸다. 베트남전 당시 오끼나와는 일본 반환(1972) 전이었기에 미군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오끼나와 미군기지는 베트남전 당시 후방기지 역할을 담당하며 베트남에 투입할 미군 병사를 훈련시키는 곳이자 베트남에서 건너온 부상자와 전사자가 머물던 장소였다.

미군 아버지와 오끼나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찌꼬는 카데나(嘉手納) 공군기지 앞에서 협죽도를 그리던 중 미군 병사 재키를 만난다. 미군기지에서 밴드 활동을 하는 열아홉살 재키는 오끼나와로 징병된 후 언제 베트남전에 파병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백인의 피부를 가진 미찌꼬는 미군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사망하고 아버지를 뒤쫓아 한국으로 건너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외할머니 밑에서 오끼나와인으로 성장한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던 미찌꼬는 재키와 서서히 가까워지며 자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인 가족사를 털어놓는다. 미찌꼬는 재키와 마리의 사이를 질투하기도 하는데 마리는 재키의 밴드 동료인 퇴역 군인의 딸로, 애인이 베트남전에 파병됐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아픔을 지닌 스트립댄서다. 재키는 베트남전 파병이 확정되자 탈영해 미찌꼬의 집에 머문다. 두 사람은 잠시나마 정신적 안정을 누리지만, 재키는 결국 미찌꼬의 만류에도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로 결심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오끼나와인으로 자랐지만 백인의 외모를 지닌 열아홉살 미찌꼬가 베트남전 파병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미군 병사 재키에게 끌린 것은 동병상련의 감정이다. '등에 그려진 협죽도'는 미찌꼬와 재키가 안고 있는 내면의 고통을 참회와 두 사람의 사랑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문제작이다.

'돼지의 보복'과 '등에 그려진 협죽도'에서 참회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주인공의 참회는 내면의 고통을 드러냄으로써 정신적으로 자신을 치유하고 존재를 회복하는 중요한 의례다. 이 소설집에 실린 두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참회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참회의 과정을 거쳐 고통을 치유하는 마따요시 에이끼의 작품은 오끼나와의 정신세계와 현실세계를 상징하는 ‘돼지’와 ‘미군기지’를 담아내며 오끼나와만의 독특한 시선을 일본문학사에 선명히 새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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