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역전세난’

봄바람을 타고 부동산 시장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제는 떨어지는 전세금에 세입자도, 집주인도 좌불안석이다. 특히 수도권 지역에선 2년 전보다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전세계약 종료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집주인이 돈이 없어 갈등이 벌어지는 사례가 속출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역전세난’ 경보음을 살펴봤다.

 

본격적인 이사철이 다가오지만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의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세입자와 집주인들 모두 고민이 적지 않다.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빨리 받고 나가고 싶어 하지만 집주인이 제때 돌려줄 수 있을 지 걱정이 크다. 집주인들도 기존 수준의 보증금을 낼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져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2년 전 시세보다 평균 2.6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약세를 이어갔던 지방 아파트 전셋값은 하락세가 더 커졌다.

서울 지역 또한 정부의 9ㆍ13 대책 여파로 최근 15주 연속 전세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일반적인 전세 계약기간인 2년 만기가 끝난 뒤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년 전보다 1.78% 높은 상황이긴 하지만 고가 아파트가 몰려있는 서초구는 2년 전 대비 3.86% 하락했다. 송파구도 0.88% 떨어졌다.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 고양시가 2년 전보다 3.24% 내려간 것을 비롯해 시흥시(-5.99%), 남양주시(-1.38%), 과천시(-1.29%) 등도 하락세다.

특히 올해는 서울 동남권을 중심으로 입주물량이 많을 것으로 알려져 추이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깡통주택’ 우려도 적지 않다. 깡통주택은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고 나면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주택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대출 비중이 많은 일부 주택은 ‘깡통주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세가격 연이어 하락

최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전세가격은 전년 대비 1.8% 하락했다. 올 들어서도 전세가격은 벌써 15주 가까이 연속 하락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아파트 전세에 이상기류가 분명하게 포착되고 있다.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달 셋째주와 넷째주, 각각 전주대비 0.08, 0.07%씩 하락하며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런 전셋값 급락은 2009년 2월 첫째 주인 -0.10% 이후 10년만의 일이다.

집값보다 전셋값이 빠르게 하락하자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지난해 67%까지 내려앉았다. 특히 서울 강남4구의 하락세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송파구 물량이 쏟아지면서 인근보다 전셋값을 2,000만∼3,000만원 더 낮춰도 문의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엔 매매가도 13주 연속 추락하면서 ‘깡통전세’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울산, 거제 창원 등 구조조정으로 경기 침체에 시달리는 지방엔 비상등이 켜졌다. 여기에 용인, 평택, 화성 등 경기 남부도 깡통전세로 고민이 적지 않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깡통전세에 따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작년 1∼11월까지 316건이 발생했다. 이는 2017년 전체인 33건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매매가격이 높은 서울은 아직 깡통전세를 걱정할 단계까지는 아니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입주 물량이 대규모로 증가하고 전세수요가 감소하면 전세금 미반환 사태가 늘어날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 “국지적 수급 불일치 등으로 전세금이 하락하고 임대인이 보증금을 제때 반환하지 못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은행권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해 92조 3천억원으로 전년보다 38% 증가했다.
 

집주인들도 ‘자금 압박’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과 서울보증보험의 전세금반환신용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보증보험 가입자와 보증금액은 전년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전세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올해 금융정책 방향 중 하나로 전세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를 건의하기도 했다. 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낀 상태에서 리스크가 높은 상황이라면 특히 전세보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셋값 하락은 집주인에게도 자금 압박이 될 수 있다. 전셋값이 4억원에서 3억원으로 떨어지면 집주인은 1억원의 자금을 더 마련해야 한다. 전세금과의 차액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전세 매물이 나가지 않으면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게 된다. 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깡통전세’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역전세난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올해 서울지역 입주물량은 지난해 2배 수준인 5만 가구가 넘을 예정이다. 경기도의 입주 물량은 작년보다 3만가구 정도 줄지만 2015년의 2배가 넘는 13만 7000여가구의 입주가 대기중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깡통전세 얘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주택시장이 바닥을 향해 가고 있음을 반영한다”면서 “일시적 급락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역전세난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대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깡통전세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경우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셋값 하락으로 고민하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늘면서 주택시장 경착륙 우려도 커졌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에서도 아파트 전셋값 하락으로 집주인이 전세기간 만료 이후 보증금을 제때 빼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역전세난은 전셋집의 물량이 증가한 데 비해 전세 수요가 줄어서 전세 계약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겪는 어려움을 말한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빼주려면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세입자는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못하는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이사철 성수기를 앞두고 부동산 시장에 불어닥친 ‘찬바람’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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