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경쟁구조에 기초한 수능이 공정? 그야말로 사상누각”
“잘못된 경쟁구조에 기초한 수능이 공정? 그야말로 사상누각”
  • 최규재 기자
  • 승인 2019.02.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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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나는 영원한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홍세화 선생
홍세화 선생

-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로 많은 국민들이 교육 문제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홍 선생은 ‘학벌없는세상’ 대표이기도 했다. 우리 교육 과연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 사람들이 좋은 것에 익숙해지면 좋은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좋은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너무 당연하게 여기다가 소원해진다. 좋은 것에 익숙해지면 그 소중함을 놓친다는 얘기다. 그런데 반대로 나쁜 것에 익숙해지면 금세 익숙해진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교육은 나쁜 것에 익숙해져 있다. 중증도 이런 중증이 없다.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어떤 프랑스 직장인이 한국에 출장을 다녀와서, 당신의 나라는 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경고하더라. 한국엔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학원, 과외, 0교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들 미친 것 같다고 하더라. 어떻게 애들을 저렇게 학대할 수 있느냐, 당신의 조국은 경제적으로 망가지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망가질 것이라는 식의 저주 섞인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은 게 30년 전이다. 이렇게 비판받는 우리 교육 문제 역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신상태와 연관돼 있다. 아이들에게 인간성이나 사회성을 요구할 수 없다. 현재 서울대생의 절반가량이 우울증 증세를 앓고 있다. 물론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지금과 달랐다. 다들 가난해서 위화감이 없었고 노력하면 대부분 안정적인 삶이 가능했기에 말이다. 지금은 가난하면 죄가 되는 사회가 돼버렸다. 수치화와 등수 때문에 결국 삶의 질을 놓치게 된 것이다.

 

- 수능은 학생 개인의 재능을 무시한다는 평가도 있고, 수행평가는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여지도 있다. 수능과 수행평가 양쪽 모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수능을 치르게 하는 게 공정성 때문이라고들 그런다. 과정의 공정성이 가장 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수시는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도 내신과 수시의 불신을 야기했다. 그런데 과연 수능만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수능은 주로 단답형이고 오지 선답이다. 수능 문제를 통해 학생들이 사유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수능을 잘 치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사고의 폭은 넓어지지 않는다. 잘못된 시험 시스템과 잘못된 경쟁구조에 기초해서 수시에 비해 수능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건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다. 수능만 고집하면 학교는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교사들이 모두 올바르다고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학생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담당 교사만한 기준이 없다.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의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 학부모는 자기 자식만 바라본다. 반면 교사는 학생 전체를 본다. 거기에 대한 차이를 중시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관건이다.

 

- 유럽선진국 교육 사정은 어떤가.

▲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지 않다. 대학자격시험은 학생 등수가 아니라 합격-불합격만으로만 나눠진다. 합격이 되면 대학가서 그 이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는 대학 들어가는 순간 미래가 어느 정도 정해지지만, 그들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본격적으로 자기공부를 한다. 졸업하기도 힘들다. 그들의 이력서에는 대학 몇 학년까지 수료했는지 적혀있다. 그 차이를 구조적으로 알아야 한다. 유럽의 경우 고등학교까지 놀면서 다니고 필요한 공부를 한다. 그렇게 해도 학생들의 사고력은 한국의 대학생 수준에 이른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제대로 못해 놀고먹는 프랑스 국민들의 철학과 논술 실력은 한국의 대학생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모든 권력은 폭력을 동반하는가’ 등의 질문지를 놓고 토론하고 서술한다. 그 학생들은 놀 것 다 놀면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술술 써내려간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텅 빈다는 이른바 ‘학이불사’의 뜻을 되새겨봐야 한다.

 

- 김태우 수사관 사태, 김경수 경남지사 구속 건 등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조심스럽게 평가하자면.

▲ 똑같다는 것은 지나친 평가다. 비교 자체를 삼가야 한다. 김태우의 경우 권력에 올라타서 일탈한 것이지, 정권 문제로 보기엔 어렵다. 자유한국당은 정말 적폐이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어야하는 세력들이다. 아니, 정치권에서 사라져야할 사람들이다. 권력자체에 내재돼 있는 특수성 때문에 권력은 민중적일 수 없다. 이런 권력의 속성 때문에 현 정부여당을 향해서도 당연히 비판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과 닮았다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

 

-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침몰할 줄 알았던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지지를 얻고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부자가 삼대 간다. 지금까지 적폐로 해먹었던 세력이다. 쉽게 망하지 않는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을 비롯 자신들이 적어도 국회의석수 180석까지 가능하다고 자신했었다. 그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까지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뻔뻔한데다 머리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물적 토대가 튼튼하고 조중동과 재벌이 밀어주고 있으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 많은 이들이 남북관계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 분단 상황이 70년이 지났다. 그러다보니 분단 자체가 지금은 정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김구 선생이 활동했던 시기는 하나의 국가가 둘로 되어서 비정상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분단이 정상이고 통일이 비정상이라고 여겨진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평화다. 평화 관계 유지하면서 서로 왕래하며 먼 훗날 자연스럽게 통일되는 것을 전망해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는 북미관계 변수에 종속돼 있다. 결국 북미수교가 중요하다.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 남쪽은 여기서 보조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가 보조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 김정은은 젊은 시절 스위스에서 공부해 아라비아 숫자 7도 유럽식으로 표기한다. 유럽적인 합리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지금까지 북한의 행보를 보면, 지정학적인 수동태에서 지리경제적인 능동태로 바뀌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독재적인 요인이 경제적인 측면으로 순조롭게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

 

- 끝으로 우리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앞으로 공급과잉으로 삶의 질이 더욱 낮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얘기가 나온다. 정말 이 플래카드가 확장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성세대들이 다양한 생각을 통해 이런 위기를 극복해나갔으면 좋겠다. 요즘 혐오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해 분노해야 하는데, 서로 혐오하기에 급급하다. 서로 맞서 혐오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분노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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