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정교과서’의 악몽

전당대회를 앞두고 흥행몰이에 고민해야 할 자유한국당이 이른바 ‘망언 블랙홀’에 빠졌다. 지도부가 부랴부랴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오히려 문제를 부채질하며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한국당은 최근 5·18 폄훼 논란의 당사자인 이종명 의원에 대해 ‘최고 수위’ 징계인 당적제명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2·27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태 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당규를 이유로 징계를 유보해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5·18 폄훼 논란은 한국당의 정체성과 태극기 부대 연대 여부와도 맞물려 있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어수선한 한국당 상황을 살펴봤다.

 

한국당의 역사인식이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이제 막 지지율을 회복해가고 있고 황교안 전 총리 등의 가세로 전환점을 만들려는 시기여서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문제를 기점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바 있다.

이 의원을 제명하긴 했지만 실제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의원 제명 결정은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내년 총선 구도를 흩뜨려놓을 수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5·18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통성 여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단순히 호남에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을 비롯 대다수 지역과 젊은층의 선택도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 한국당 의원들이 역사인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한국당이 제발로 넘어진 셈”이라며 “일부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념논쟁과 색깔론은 결국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동안 수세에 몰렸던 민주당 등도 연대를 형성하며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한국당이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나머지 두 의원에 대해서도 당장 출당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차원의 의원직 제명에도 동참하라는 것이다.

한국당의 불분명한 잣대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당 중앙윤리위와 비상대책위는 회의를 통해 이 의원에 대해서는 제명을, 김진태 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징계유예를 결정했다.

한국당은 ‘전당대회 후보자는 후보 등록이 끝난 때부터 당선인 공고까지 윤리위 회부 및 징계를 유예받는다’는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규정 제7조를 근거로 들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대학에서 학생의 잘잘못을 가리는 데도 일주일, 한 달이 걸리는데, 국회의원에 대한 판단이 하루 이틀 만에 내려지겠느냐”고 반박했다.
 

연이은 ‘후폭풍’ 예상

당내 일각에선 이 의원에 대한 징계가 다른 의원들에 비해 가혹하다는 동정론도 있어 실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통과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또 비례대표인 이 의원이 설령 출당되더라도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의원직 제명을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징계가 별도로 진행돼야 하는데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4당은 이들 세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한 상태다.

국회 윤리특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199표)이 의원직 제명에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공당이면 마땅히 5·18의 역사를 날조하고 국민을 분노하게 하는 3인방을 퇴출하고 국회 차원의 제명에 동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등 시민단체들도 “한국당은 전두환의 후예들이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정당이라는 것이 다시금 드러났다”며 한국당의 해산을 촉구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지만원씨 등의 발언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현역 의원들까지 가세해 망언을 한 것은 드물었다”며 “그들이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들이 현실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대에 출마한 두 의원을 제외한 것은 꼼수라는 지적이다. 당규를 모를 리 없는 당 지도부가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도 늑장을 부리다 회의를 소집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한국당의 제명 조치에 대해 ‘꼬리 자르기’라고 규정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사안을 두고 자당의 규칙을 내세워 보호막을 씌우는 한국당의 안일한 사태 인식이 놀랍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 윤리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비판했고 김정현 평화당 대변인은 “한국당 윤리위가 무책임한 결정으로 망신살이가 제대로 뻗쳤다”고 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도 “윤리 개념이 없는 한국당의 결정답다”고 비꼬았다.

홍성칠 광주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은 “소나기를 피해 가는 식으로 진정성을 읽을 수 없다.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징계를 하는 시늉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망언 3인방 영구퇴출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5·18 유공자인 민주당 설훈·민병두, 평화당 최경환 의원은 검찰에 논란을 일으킨 세 의원과 지만원씨 등 4명을 모욕죄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문제가 장기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전대에서 선출되는 지도부가 5·18을 비롯 역사 인식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역사인식과 ‘망언 블랙홀’에 빠진 한국당이 전대를 기점으로 탈출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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