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요즘 스톡홀름이나 예테보리 등 스웨덴의 대도시는 물론 작은 시골의 카페에서조차 가장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은 셈라(Semla)라고 부르는 생크림빵이다.

셈라는 번(bun)이라는 둥근 빵의 윗부분을 잘라낸 후 그 위에 달콤한 생크림을 잔뜩 올려서 잘라낸 빵을 뚜껑삼아서 먹는,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다. 진한 블랙커피나 카푸치노, 또는 카페라테와 같이 먹는 것을 스웨덴 사람들은 무척 좋아한다.

스웨덴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피카(Fika. 함께 모여서 커피를 마시는 일) 때 계피향 가득한 시나몬 롤빵 카넬블레(Kanelbulle) 다음으로 사랑하는 빵이 셈라다. 그런데 연중 아무 때나 먹는 카넬블레와는 달리 셈라는 먹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요즘이다.

 

베테 카텐 셈라 – 스톡홀름에서 가장 유명한 셈라 카페.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곳인데, 셈라를 먹는 시즌이 되면 더욱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사진 = 이석원)
베테 카텐 셈라 – 스톡홀름에서 가장 유명한 셈라 카페.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곳인데, 셈라를 먹는 시즌이 되면 더욱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사진 = 이석원)

좀 더 정확히 따지면, 셈라는 먹는 날이 있다. 스웨덴에서는 펫티스다겐(Fettisdagen)이라고 부른다. 직역을 하면 ‘뚱뚱한 그 화요일’이다. ‘fet’은 ‘기름진, 살찐’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다. ‘tisdag’은 ‘화요일’이고, 뒤에 붙은 ‘en’은 스웨덴의 정관사다. ‘The’라고 생각하면 된다.

‘펫티스다겐’은 매해마다 날짜가 다른데, 그리스도교의 ‘부활절’과 연관된 날이다.

부활절은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개신교)까지 공동으로 기념하는 그리스도교 최대 대축일이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의 전례력에 따라 같은 날이고,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정교회는 날짜가 다르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기준으로, 부활절은 서기 325년 1차 니케아 공의회 때 ‘춘분이 지난 첫 번째 보름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로 정했다. 올해 부활절은 4월 21일이다. 부활절 40일 전날을 가톨릭에서는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르고, 이 날부터 부활절 전까지 40일을 사순기간이라고 한다. 절제와 금욕의 기간으로 지낸다.

사순 기간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날이 ‘카니발(Carninal)’이다. 40일 간 고기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부부 간의 성관계도 가지지 않는 금욕과 금육이 시작되기 전날, 1년 중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고 환락적인 축제를 연다. 브라질 리오 카니발이나 프랑스 니스 카니발 등 유명한 카니발 축제가 열리는 날이 ‘재의 수요일’ 전날, 즉 올해는 3월 5일이다.

스웨덴의 ‘펫티스다겐’이 바로 그 날이다. 이미 9세기 무렵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스웨덴이니 ‘재의 수요일’ 전례는 오래전부터 지켜왔을 것이다. 그리고 ‘펫티스다겐’이라는 명칭도 1594년부터 역사 기록에 나온다. 그리고 20세기 초까지는 이 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퇴세 셈라 – 셈라로 여러 차례 스웨덴 참피온을 차지했던 퇴세바게리엣은 다양한 종류의 셈라로 유명하다. (사진 = 이석원)
퇴세 셈라 – 셈라로 여러 차례 스웨덴 참피온을 차지했던 퇴세바게리엣은 다양한 종류의 셈라로 유명하다. (사진 = 이석원)

올해는 ‘재의 수요일’은 3월 6일이고, ‘펫티스다겐’은 3월 5일이다. 이날 스웨덴 사람들은 셈라와 함께 가장 기름진 음식을 먹고, 맘껏 술에 취한다. 그리스도교적 윤리가 강하던 과거에는 이 날 남녀의 방탕(?)한 섹스가 남발하고 사순 기간에는 금욕했다고 한다.

너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날이라고 해서 ‘뚱뚱한 화요일’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한 것이다. 하얀 밀가루로 만든 빵에 고칼로리 생크림을 잔뜩 얹어먹으니 살이 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나 미국 등 영미 문화권에서는 같은 날이 ‘팬케이크데이(Pancakeday)’라고 불린다. 셈라보다 더 높은 칼로리를 자랑하는, 달콤한 시럽을 잔뜩 얹어서 먹는 팬케이크를 먹는 것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와 스페인 등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 문화권에서는 명칭은 다르지만 그 날을 같은 개념으로 지낸다.

하지만 ‘펫티스다겐’은 그저 먹고 즐기는 의미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펫티스다겐’을 지내고 난 스웨덴 사람들은 ‘재의 수요일’부터 스스로는 금욕과 금육, 즉 절제와 절약을 하면서 그렇게 절제한 만큼을 다른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즉, 내가 덜 먹은 만큼의 식비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식재료를 나눠줘서 아무리 사순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굶는 사람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스웨덴에는 ‘밥을 굶을 만큼’ 가난한 사람이란 거의 없다. 국가가 그런 상황을 이미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곳곳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난한 시민’을 민들지 않는 스웨덴에서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집시들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그들의 의상으로 미뤄 짐작컨대, 유럽 남부 발칸 반도 등에서 유입된 사람들로 보인다. 스웨덴에서 거의 유일한 장기 불법체류 그룹이다. 즉 스웨덴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스웨덴에 체류의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집시 구걸 –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체류 허가도 없이 스웨덴에 머물며 구걸 행위로 연명하는 집시는 스웨덴 정부에서도 골칫거리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의 구걸행위를 금지하려는 노력이나 이들을 국외 추방 시키려는 정치권의 행동은 번번히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돼 왔다. (사진 = 이석원)
집시 구걸 –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체류 허가도 없이 스웨덴에 머물며 구걸 행위로 연명하는 집시는 스웨덴 정부에서도 골칫거리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의 구걸행위를 금지하려는 노력이나 이들을 국외 추방 시키려는 정치권의 행동은 번번히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돼 왔다. (사진 = 이석원)

이들이 연중 가장 풍요를 누리는 때가 사순 기간이다. 대부분 지역을 기반으로 지하철 역 입구나 대형 슈퍼마켓 앞에서 구걸을 하는 그들은 지역 주민들과 어느 정도 인간적인 교류도 이있다. 그러다보니 사순 기간에는 오며 가며 그들에게 돈이나 식재료를 주는 시민들이 많다.

또 매년 보수 성향의 정당들이 이들에 대한 ‘구걸 행위 금지 법안’을 발의하지만, 이를 저지하는 이들도 상당수의 스웨덴 시민들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 그들에게 스웨덴의 복지 혜택을 나눠주는 것은 부당해도, 그들을 구걸도 하지 못하게 해서 굶어 죽이는 것도 스웨덴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 서로 나누며 살던 ‘펫티스다겐’의 마음들이 켜켜이 쌓인 것이다.

아직 ‘펫티스다겐’이 되진 않았지만, 이미 스웨덴 사람들은 셈라 먹는 것이 일상이다. 스톡홀름의 ‘퇴세바게리엣(Tössebageriet)이나 베테 카텐(Vete Katten) 등 셈라로 유명한 카페나 콘디토리(빵집)에서는 셈라가 불티나게 팔린다.

스웨덴 언론에 따르면 오는 3월 5일 ‘펫티스다겐’ 당일에는 전국적으로 800만개 이상의 셈라가 팔릴 것이라고 한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시기니 아직 셈라를 먹을 수 없는 아기들을 제외하더라도 1000만 인구 대부분이 셈라를 먹는 셈이다. 다음 날부터 함께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기 위해. och så kallade "novembersemlor!"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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