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위기자 ‘신속지원’ 방안

문재인 정부가 취약계층의 연체 위험을 잡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정부는 최근 실업 등으로 빚을 갚지 못할 위험에 놓인 취약계층 개인 채무자들을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연체가 시작된 경우에는 채무 원금 감면 범위를 종전보다 늘리기로 해 효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개인채무자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안’을 얼마전 발표했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대출 문제가 이번 해법으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취약 계층의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안은 과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금융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안을 발표했다. 총 4단계로 이뤄진 개선안은 연체 전부터 연체 초기 사이, 연체 후 90일부터 채무 상각 전까지, 채무 상각 이후, 상환 불능 상태 등의 4단계로 나눠 단계별 맞춤형 채무조정을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다.

당국은 이번 개선안에서 취약계층의 채무 연체를 사전에 막는데에 무게를 뒀다. 채무 연체는 신용도 하락, 추가 금융 지원 불가, 상환 포기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이를 조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여러 채무를 지닌 ‘다중채무자’ 중 아직 연체는 하지 않았지만 일시적으로 소득이 없어졌거나 감소한 경우를 위한 신속지원 제도도 신설됐다.

대상은 다중채무자 중 최근 6개월 이내 실업자, 무급휴직자, 폐업자, 3개월 이상 입원해야 하는 질환자, 대출 당시보다 소득이 현저히 줄어 구제할 필요성을 인정한 경우 등이다.

소득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기준이 추상적인 점을 감안해 신용 7등급 이하 혹은 2개 이상 채무 중 하나라도 1∼30일 연체 중이거나, 최근 6개월 이내에 5일 이상 연체한 횟수가 3회 이상인 채무자를 기준으로 할 방침이다.
 

‘신속지원 대상’ 관심

신속지원 대상이 되면 갑작스러운 소득 감소만 해소돼도 다시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채무자의 경우 최대 6개월 간 원금상환이 일시 정지되고, 약정금리로 거치이자만 내면 된다.

소득 감소가 해결되더라도 ‘만기일시상환’ 같은 대출 구조로 상환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채무자는 최대 6개월 원금상환 유예와 함께, 유예기간이 끝난 뒤 최대 10년 간 장기분할 상환을 추가로 허용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자영업자 채무 연체율 증가 속도를 고려했을 때 신속지원제도 혜택 대상은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개인 채무자들이 재기하기 힘든 이유가 연체로 인한 신용도 하락인데,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연체 단계에 진입한 채무자 지원대책도 나왔다. 현재까지는 금융위 산하 신용회복위원회에 90일 이상 채무자가 채무조정을 신청하면 기존 연체이자와 향후 이자만 면제해줬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상각채무 원금의 30%까지 탕감해주는 혜택이 도입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원금 감면을 위해 고의로 연체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채무조정 신청일 1년 이내 대출은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말했다.

상각은 금융사에서 돌려받기 힘든 채권을 ‘손실’로 처리하는 것이다. 금융사는 통상 연체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나면 손실로 처리한다.

상각 채무에 대한 지원 범위도 늘어났다. 연체 90일 이상인 상각 채무는 원금감면율을 최대 70%로 올릴 예정이다. 현재 상각 후 채무 원금감면율은 30∼60%지만 앞으로는 20∼70%로 범위가 늘어날 전망이다.

아예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 채무자’ 대상 혜택도 추가했다. 대상은 3개월 이상 연체한 이들로 기초수급자, 장애인연금 수령자, 70세 이상 고령자가 포함된다. 10년 이상 1,500만원 이하 채무를 장기 연체한 저소득층도 해당된다.

금융위는 이들의 채무에 대해 상각채권은 원금 70∼90%를, 미상각채권은 30%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채무 1,500만원 이하 장기 연체자의 경우 채무조정으로 감면된 채무를 3년간 연체 없이 성실히 상환하면 남은 채무를 모두 면제해준다.
 

“단계별 지원 마련”

한편에선 이런 정부 대책에 대해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단계별 지원마다 상황 능력 대비 채무액과 상환 의지를 측정하는 기준을 준비했다”며 “채무조정 신청자 상당수가 30개월 이상 연체를 해결하려고 고통 받다가 찾아오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현재 신용회복위원회는 단기연체자(연체 31∼89일)를 대상으로 한 프리워크아웃과 연체 90일 이상 채무불이행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워크아웃 등의 채무조정제도를 운영해 왔다.

때문에 연체 30일 이전에는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 또 연체 30일 이후에는 신용등급이 하락해 연체부담도 급증해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그래서 연체 30일 이전이 '신용회복의 골든타임'으로 불렸다.

이번 개선안은 신용회복의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 연체위기자 신속지원제도를 신설키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연체발생 전이나 연체 30일 이내 구간에 있는 연체위기자가 선제적으로 신용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채무를 상환유예해주는 방식이다.

이미 연체에 빠진 차주에 대해 채무감면을 대폭 늘려 정상화를 도울 수 있게 '미상각채무 원금감면'을 도입키로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상환능력이 결여된 취약계층에 대해 최소한의 상환의지만 확인되면 잔여 채무를 면책해주는 '취약채무자 특별감면' 제도도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채무자의 경우 고정적 소득이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는 법원의 개인회생·파산이나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 등으로는 채무조정을 받기 어려웠다.

순재산이 일정액 이하여야 하며 고령자와 장기소액연체자의 경우 소득도 중위소득 60% 이하여야 한다.

금융위는 연체위기자 신속지원제도와 취약채무자 특별감면 프로그램은 6∼8월 중 시행하고 상각채무 감면율 조정은 3∼4월 중 조기 시행할 예정이다. 미상각채무 원금감면은 기획재정부와 협의 후 연내 도입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월 중순 서민금융포럼 기조연설에서 "대부분 채무자는 자력으로 채무를 상환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스스로 해결하려다 신용회복의 적기를 놓쳐 감당할 수 없는 장기연체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과감한 채무조정제도를 가지게 된 것은 전략적 파산과 같은 도덕적 해이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현실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번 안은 그동안 취약계층 채무감면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신용회복의 골든 타임을 잡기 위한 이번 개선안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