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백두에 머리를 두고
[신간] 백두에 머리를 두고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9.02.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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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 지음/ 창비

 

1962년 『자유문학』에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잔잔한 창작 활동을 해온 시단의 원로 강민 시인의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가 출간되었다. 이 시선집은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도서출판답게 1993),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나보다』(문학수첩 2002), 『미로(迷路)에서』(책만드는집 2010), 『외포리의 갈매기』(푸른사상 2014)에서 94편을 가려 뽑고 신작시 4편을 더하여 모두 98편의 시를 주제별로 갈라 4부에 나누어 실었다. 시인으로서의 숙명 같은 경건함이 느껴지는 이 시선집을 통해 시대와 인간을 화두로 삼고 격동의 세월을 건너온 원로 시인의 치열한 시대인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삶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농울치는 시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시집에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온 시인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굴곡진 삶과 “문지르면 묻어날 피의 역사”(「노래」)의 격랑 속에서 온몸으로 써내려간 문학적 연대기이자 한국현대사의 비망록이라 이를 만하다.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감수성이 엿보이는 초기 시에서는 젊은 날의 고뇌를 읽을 수 있고, 시대의 어둠에 굴하지 않는 양심과 지조가 서린 후기 시에서는 현실 문제를 깊이 성찰하는 지사적 결기를 느낄 수 있다. 오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양평 동오리에 터를 잡은 전원생활의 맑은 시심에서 일구어낸 최근 시편들(연작시 「동오리」 「인사동 아리랑」)에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와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오롯하다.

시인은 전쟁과 분단과 독재로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를 몸소 겪으면서 삶의 애환과 시대의 고통을 노래하였다. 6․25전쟁 당시 ‘장정 소개령’으로 끌려가던 모습(「삼도천(三途川) 기행 1」), 1․4후퇴 때의 죽음의 행진(「미로(迷路)」), 내무부 청사 앞의 4․19혁명 시위대(「비망록에서 1」), 개발독재 시대의 철거 현장(「비망록에서 2」),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기상도(氣象圖)」)는 불의의 현실에 맞서 “병든 민주주의의 회로”(「오월, 바보새에게」)를 제대로 돌려놓고자 하던 촛불의 광장까지 한국현대사의 장면장면을 재현하는 시편들을 대하노라면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통일과 민주주의에 대한 오랜 소망을 간직해온 시인에게 역사의 미로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시인은 문단에 발을 들인 지 30년 만에 첫 시집을 내고 시력 57년 동안 단지 네 권의 시집을 펴냈을 뿐이지만 ‘걸어다니는 한국문단사’라 불릴 만큼 문단의 산 증인으로서 문학의 삶을 살아왔다. 사상이나 학벌이나 지연 등 세속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순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감싸안아온 시인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휴머니스트’이자 “가장 인간적인 시인”(구중서)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인의 나이 86세. 그렇게 청춘의 한 시절은 가고 이제 황혼의 언덕에 올라섰지만 시인은 오늘도 꿈의 본향을 찾아 “추억의 앨범 속”(「명동, 추억을 걷는다」) 어느 거리를 헤맬 것이다. 이 무잡한 세상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흘러 멀리 가는 강물”(염무웅, 발문) 소리가 저 “꺼지지 않는 진실”(「꺼지지 않는 불꽃」)의 광장 한복판에 우렁우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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