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공녀’(2018년)

 

영화 ‘소공녀’ 포스터
영화 ‘소공녀’ 포스터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전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일까. 아마 행복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좇는 행복이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서울 안에 있는 대학? 알아주는 직장? 안정적인 돈벌이?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미소’. 요즘 한국엔 미소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지만 정작 지금은 행복을 찾는 과정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괴로워한다. 그 행복의 정의란 무엇일까. 영화 <소공녀>(2018년 개봉)가 우리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미소(이솜 분)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이지만,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새해가 되자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미소는 차라리 집을 포기한다.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해나가는 사랑스러운 현대판 ‘소공녀’ 미소. 대학시절 밴드를 함께한 멤버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지난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소공녀>. 언론과 평단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에 이어 제41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특히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마다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단숨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미소라는 캐릭터는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다. 그의 행복은 담배, 위스키, 사랑하는 남자친구. 그 행복이 분명하기에 남들은 전전긍긍하는 집을 포기한다. 미소를 재워주는 멤버들은 전부 집이 있다. 하지만 행복이 없다. 사회생활에 자신을 맞춘 친구, 결혼생활에 자신을 잃은 친구, 집은 있지만 가족을 잃은 친구, 집도 있고 가정도 있고 돈도 있지만 여유가 없는 친구 등. 영화 끝부분에 그들은 말한다. 미소는 여전하다고. 어떻게 보면 미소는 신념을 갖고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다. 반면 사회에선 그녀의 신념과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해 불쌍한 사람이기도 하다. ‘YOLO(You only live once)’,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의 신조어가 나오며 요즘 많은 청춘들의 신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 인식, 분위기 때문에 그 신념을 확실하게 이행하진 못한다. 미소는 그런 이들을 대변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삭막한 사회의 현실에서 유쾌하고 재치 있게 살아나간다. 그럼에도 가끔 그녀의 낯빛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무시할 수 없다. 현실과 이상 세계 사이에서 여전히 부딪힌다.

미소를 연기한 이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러블리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이솜은 그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며 캐릭터를 덤덤하게 표현해냈다. 자칫하면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재치 있게 풀어낸 영화인만큼 미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너무 붕 떠 허망만 가득 찬 사람처럼 보이지도, 너무 무거워 현실에 부딪힌 사람처럼도 보이면 안 된다. 독특한 캐릭터였던 만큼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잘 살려냈다고 본다.

 

영화  ‘소공녀’ 스틸컷
영화 ‘소공녀’ 스틸컷

미소 외에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만들어낸 캐릭터들로 공감을 자아낸다. 더 큰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링거액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문영(강진아 분), 결혼 후 시댁식구와 살며 고충을 겪는 현정(김국희 분),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이혼 후 20년 동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대용(이성욱 분), 늦은 나이에도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록이(최덕문 분), 부자 남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정미(김재화 분) 등. 미소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친구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본래 도움을 받으러 갔지만 되레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미소의 모습과 “결혼이 병인 거 같아”, “여긴 집이 아니고 감옥이야 감옥”, “연애는 남자친구랑 하고 결혼은 나랑 하자” 등 절로 공감을 자아내는 대사들은 삶에 지친 현대인들의 모습도 되돌아보게 한다.

내용, 배우뿐만 아니라 영상도 예뻐서 호감이 갈 수 밖에 없다. 절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알찬 구성을 본다면 호불호가 갈릴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일단 누구나 공감되는 주제로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까울 뿐인 영화다. 한 번씩 찾아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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