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는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비둘기는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9.02.27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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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실 가기] 성북동-3회 북정마을

이번에 찾아간 동네는 성북동이다. 성북동은 풍광이 아름다운 서울시 자치구 중 하나로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될 한양도성과 연이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서울에 있는 한옥마을 중에서도 아름답고 뛰어난 가치가 있는 한옥들이 많이 모여 있다. 문화제, 한옥마을 뿐 아니라 맛집, 카페 등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성북동. 꽤 언덕진 산마을이라 할 수 있지만 찾는 사람이 많다.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 나름대로 코스를 잡고 돌아보기로 했다. 그 세 번째 이야기다.

 

이번엔 서울 내 몇 안 남은 달동네 중 하나로 꼽히는 북정마을을 찾았다. 북정마을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조선시대, 궁중에 바치는 메주를 만드는 일이 북정마을에 주어지며 메주를 만들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북적 북적’했기 때문이란다. 두 번째는 한양도성에 ‘북’쪽에 있는 이 마을에 ‘우물(井)’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지만 어찌됐든 지금까지도 북정마을이 달동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북정마을을 감싸고 있는 서울성곽이 이유가 아닐까. 물론 한양도성 바깥에 위치해있지만 성곽이 마을을 지키듯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안이건 밖이건 성곽은 지켜주는 용도로 사용된 게 분명하다. 또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남아있기도 하다. 이전 회에 소개했던 한옥마을 투어를 참고하자.

 

버스를 타고 어김없이 성북동을 올랐다. 북정마을은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을 안고 있다. 심우장을 들러본 경험이 있으니 그쪽으로 시작 지점을 잡는다. 버스에서 내려 심우장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던 중 아차, 저번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동상과 설명이 있었다. 또 한 쪽엔 성북동 마을 관광투어 안내지도도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는 북정마을이므로 일단 계단을 올라간다.

성북동은 대부분 가파른 언덕길의 연속이다.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갔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다보니 심우장이 보인다. 날이 따뜻해서 그런지 이 날은 심우장을 찾은 손님들이 보인다. 계속해서 올라갔다. 매우 좁은 골목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지붕들은 낮아지고, 발 아래로 서서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지대가 좀 높은 편이여서 그런지 주택들의 지붕이 낮다. 담벼락 너머로 연탄보일러 굴뚝이 보이기도 하고, 지붕 위에 앉은 새, 그들이 지어놓은 둥지도 눈에 들어온다. 북정마을엔 사람 말고도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골목을 오르다보니 폐지를 정리하는 할아버지, 장독대를 씻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가파른 골목길이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들에겐 아주 오랫동안 안정적인 삶의 터전이 돼주었을 것이다. 관절이 다소 안 좋아 보였지만 아주 느긋하게 동네를 누비고 다니신다. 어쩐지 동네가 한적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기엔 조용해서 좋다. 숨이 가빠질수록 마음속엔 편안함이 깃든다.

조금 더 올라가니 쉼터가 나온다.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있다. 한쪽 벽면엔 비둘기 모형과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쓰여 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도시 개발로 인한 파괴를 그린 시 <성북동 비둘기>. 이 시의 배경에 북정마을 일대가 포함된다. 때문에 북정마을을 돌다보면 비둘기를 상징하는 것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낡은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과 모형, 또 진짜 비둘기들까지. 작은 책방도 있다. 이름도 ‘비둘기 책방’이다. 책방은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겼다. 책방을 지키는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은 책을 빌렸다가 양심껏 다시 반납하면 되는 것이다. 책이 꽤 채워져 있는 게 북정마을 주민들의 민심이 느껴진다.

 

좀 더 올라가니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과 곧 무너질 것 같은 집 한 채가 보인다. ‘북정카페’라고 적혀있다. 벽엔 북정마을의 옛 모습들이 사진으로 걸려있다. 전부 빛바랜 걸 보면 그 세월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옆엔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마을버스는 북정마을을 한 바퀴 뱅글 돌아 내려간다. 북정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다.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에서 외출하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터. 젊은 사람들도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때문에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 큰 도로변으로 내려가는 마을버스가 어르신들의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해준다. 오로지 북정마을을 위한 마을버스인 셈이다.

이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자. 차도 많이 다니지 않고 사람도 드물다. 때마침 날씨가 좋아 마을은 따뜻한 햇살을 듬뿍 받고 있다. 한적하다. 비둘기 날아가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대부분 주택들은 낮다. 높은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건물의 벽보다는 지붕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쭉 돌다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따뜻한 햇살 아래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사람이 와도 경계하지 않고 여유가 넘친다. 북정마을을 꼭 닮았다.

 

마을 곳곳 디자인이 남다른 건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부분 공방, 디자인, 편집숍 등이다. 감각 넘치는 젊은 사람들이 한적한 북정마을을 일찍이 알아보고 서서히 찾아오는 추세다. 외관에 햇살이 잘 들어오는 통유리를 설치했다. 가게 안 사람들은 차 한 잔을 나누며 수다를 떨고 있다. 얼굴엔 여유가 가득하다. 환한 햇살, 길고양이의 걸음 거리, 그들의 얼굴까지, 북정마을의 모든 것들은 평화롭다.

할머니 노인정이 보인다. 작은 주택 앞 옹기종기 벗어놓은 할머니들의 신발들이 정겹다. 뜨끈한 방에 모여 무슨 얘기를 나누시는 건지 밖에까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노인정에서 나온 할머니는 길을 따라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가니 또 버스 정류장이다. 외출을 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그 옆으로 작은 쉼터가 있다. 쉼터라 하기엔 소소하지만 나름 갖출 건 갖췄다. ‘북정마을 우물 미니 쉼터’다. 우물도 있고, 사용하진 않는 작은 물레방아와 항아리로 장식을 했다. 알고 보니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돼 있었다. ‘2018 꽃피는 서울상’에서 인증도 받고, ‘제16회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에서 특별상도 받은 곳이다. 아마 날이 풀리면 더 많은 마을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일 것이다.

쉼터 뒤로는 성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주택가 사이로 올라가기 때문에 초행길인 사람들은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안내 표지판이라도 세워진다면 좋겠다. 가파른 오르막길 한쪽으론 계단이 나있다. 이 좁고 작은 계단이 언덕 위에 사는 주민들에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계단을 차곡차곡 오르며 생각했다. 오르다보니 어느덧 성문이라고 적힌 입구에 다다랐다. 성문 입구를 알리는 아치형 파이프로 만들어진 작은 터널엔 담쟁이 넝쿨들이 마른 채 붙어있다. 그 뒤로 펼쳐지는 거대하고 든든한 성곽에 비해 초라한 모습이다. 봄이 되고 새순이 돋아나면 이 초라한 문도 빛을 발하겠지.

 

성곽길에 오르니 혜화문으로 내려가는 길과 성곽 밖을 따라 쭉 타고 올라가는 길이 있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성곽이 감싸고 있는 북정마을, 성북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성곽이 마을을 품에 안은 듯한 모습이다. 발 아래로 펼쳐진 마을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있다. 그 마을을 정찰하듯 비둘기들이 날아다닌다.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셔터를 여러 번이고 누른다. 저절로 마음을 먹게 한다. 언젠간 이곳에 살리라….

 

성곽길에서 다시 마을로 내려와 남은 동네를 돌았다. 여전히 마을 어디를 가도 한적했다. 조그마한 가게는 운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북정마을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구불구불한 길과 많은 곡몰길에 마치 ‘엘리스’가 된 것 같다고들 한다. 기자는 시간 여행을 하는 엘리스가 된 것 같았다. 마을의 구조를 떠나 이 복잡한 서울에서 이렇게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에 오니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집들도, 따사로운 햇살을 받는 울긋불긋 지붕들도 모두 한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걷다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마을이다. 어느새 가쁘게 쉬던 숨도 평온을, 고용함을 찾았다. 어느 순간 북정마을 분위기에 푹 빠져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한걸음씩 느긋느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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