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탐방] 서울약령시

 

경동시장 일대는 시장이 넓은 만큼 항상 사람들로 들끓는다. 특히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서울약령시’ 때문이다. 부지런히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도, 배낭을 멘 할아버지도,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있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약령시 입구 대로변은 인산인해,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약령시(藥令市)는 원래 조선 효종 때 귀한 한약재의 수집을 위해 왕명으로 주요 약재 생산지에 관찰사를 상주시키면서 만든 약재상 집결지이다. 그 당시에는 약재의 채취, 수확 시기에 맞추어 춘령시와 추령시로 1년에 두 번 열리는 계절장이었다. 현재는 서울약령시 이외에도 대구, 제천 등 전국에 여러 약령시가 있지만 서울약령시가 규모나 역사로 볼 때 가장 크고 오래됐다. 현대적인 서울약령시의 역사는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동부도심권의 교통요충지인 청량리역과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약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형성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이 생산하거나 채취해온 농산물과 채소 및 임산물들이 옛 성동역(城東驛, 현 한솔동의보감 자리)과 청량리역을 통해 몰려들어 그 반입과 판매를 위해 인근 논을 매립한 공터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서울약령시의 시초이다. 이러한 변천 과정을 거쳐 서울약령시는 전국에서 가장 큰 한약재시장으로 자리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약재시장으로 커나가고 있다. 1995년 ‘서울약령시(전통한약시장지역)’로 정식 명칭이 지정된 이후 한약과 관련된 다양하고 새로운 시설과 제도를 마련, 운영하고 있다.

 

사시사철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약령시를 찾아갔다. 청량리 청과물시장과 용두동 사거리 사이 서울약령시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면 바로 서울약령시다. 벌써부터 건강한 향기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이 길은 지나가기만 해도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횡단보도에서부터 사람이 넘친다. 일명 손수레족(?)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드르륵 드르륵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경동시장 사거리 횡단보도 바로 앞에 있는 가게가 가장 인기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진열돼 있는 한약재들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게 되고 구매욕이 발동되는 것이다. 분말가루로 된 느릅나무, 율무, 계피, 녹차, 청국장 등 수십가지의 약재가 투명한 통에 담겨 진열돼 있다. 요즘 한창 유행이라는 노니 진액도 보인다. 인기가 많다. 꿀과 홍삼도 효자 상품이다.

 

정작 약령시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약령시 입구 대로변 노점상 들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드는 주요인이다. 노점상에는 약재뿐 아니라 채소, 건어물 등 먹거리가 넘쳐난다. 갓 수확해온 것으로 보이는 나물들부터 쌈채소, 뿌리채소 등 종류도 다양하고 싱싱하다. 거기다 인심은 덤이다. 듬뿍듬뿍 담아준다. 1000원 짜리 한 장만 건네도 검은 비닐봉지에 상추가 가득 담긴다. 이러니 카트나 배낭, 장바구니는 필수일 수밖에 없다. 인기가 많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많은 인파 사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눈길을 끈다. 옥수수와 군고구마, 떡 등은 전통시장에서도 인기 먹거리로 꼽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즐겨 찾는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먹는 따끈한 찰옥수수는 별미 중 별미다. 옥수수에서 나오는 즙액은 달큰하고 향기롭다. 방금 쪄낸 떡도 장바구니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대로변 노점상들을 구경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약령시 입구다. 대궐문 마냥 화려하게 입구를 장식해놓았다. 그 양옆으로는 한약을 달이는 주전자와 약초를 빻는 절구 모양의 석상이 세워져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유적지를 탐방하러가는 느낌이다.

 

예상 외로 약재골목엔 사람이 없다. 한적하다. 택배 차량만 좁은 도로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약재가게, 한의원, 탕제가게 등이 연이어 있다. 가게 밖은 조용해 보이지만 안은 다르다. 상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국으로 배송 나갈 제품들을 포장하는 것이다. 배송시간이 다돼가나 보다. 포장을 하는 손놀림이 기계처럼 날래다. ‘생활의 달인’에 나올 법한 포스다. 포장하고 싣고 나르고를 반복한다. 허리 한번 펴는 것도 잊은 듯하다. 배송을 완료하고 나서야 간신히 기지개를 켠다. 뿌듯한 얼굴이다. 약재상마다 택배상자가 가득 쌓여있다.

 

걷다보니 커다란 한옥건물이 보인다. 서울한방진흥센터다. 지어진지 얼마 안 돼 보인다. 깨끗하다. 안에는 한방카페, 한방뷰티숍, 한방체험실, 족욕체험장까지 갖춰져 있다. 여러 가지 체험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한방을 알리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센터 안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유롭게 쉬고 계신다. 한방카페에는 젊은 층의 손님도 꽤 많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우리 한약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화시키는 것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약재 한류를 조성하는 데 한 몫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골목으로 나온다. 약재시장에 뭐 볼 게 있냐고 생각하겠지만 신기한 것들이 많다. 사슴뿔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나무란 나무, 뿌리란 뿌리는 전부 이곳에 모여 있는 듯하다. 이 모든 것들이 한약재로 유용돼 사람들의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취재 내내 한약재 달인 냄새로 코가 호강을 한다.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입구로 오니 포토존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작고 낡았지만 조금만 손을 본다면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손님의 연령층을 고려해 시장 곳곳에 벤치 등 휴식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