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번째 ‘30-50’ 클럽

3만 달러 시대가 시작됐지만 기대만큼 장밋빛은 아니었다. 축포 없는 국민소득 3만달러는 오히려 서민들의 한숨을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 지난해 처음으로 3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1인당 국민총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지 12년 만의 일이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국가들 중에선 7번째 기록이었다. 하지만 정작 서민들과 일반 가계들은 늘어난 소득을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3만 달러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허울 좋은 그림의 떡인 것 같아요.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미래는 막막한데 이런 소식을 들으면 더 우울해져요.”

수도권에서 만난 40대 자영업자 A씨의 한탄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을 접을까 고민중에 있다. 노력은 계속 하고 있지만 줄어드는 손님의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요 몇 년 전부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외식을 하는 손님들의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처럼 보통 가계는 늘어난 소득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국은행도 “축배를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은은 최근 ‘2018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 자료를 내고 한국의 1인당 GNI가 3만 1349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06년 2만 795달러 이후 12년 만에 3만 달러대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5년, 미국은 9년이 걸려 2만 달러대에서 3만 달러대를 달성한 바 있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분석됐다.

선진국의 지표라는 3만 달러지만 경기 체감을 느끼기엔 거리가 있다. 성장의 열매가 가계보다는 기업 쪽으로 흘러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GNI는 국민 각자의 집안살림 이외에도 기업의 영업이익, 정부의 과세 소득 등이 합쳐져 구성된다.

한국의 경우 GNI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69.0%였지만 2017년엔 61.3%로 줄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의 선진국은 이 비중이 70%대다. 그만큼 가계의 비중이 크다.
 

가계 비중 적어

이는 3만 달러 가운데 가계소득은 2만 달러에도 못 미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실제 2017년 기준 1인당 가계처분가능소득은 1만 6573달러(약 1874만원)에 불과하다.

경기 후퇴 국면에서의 3만 달러 돌파였다는 점도 체감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은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명목 국내총생산은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3.0% 성장했다.

이 같은 수치는 외환위기 영향을 받던 1998년 -1.1%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의 기록이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양극화도 여전하다.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인 5분위 배율은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은은 3만 달러 발표와 함께 다음 과제로 ‘1인당 GNI 4만 달러’를 제시했다. 1인당 GNI 4만 달러를 돌파한 국가는 2017년 기준 22개국이다.

영국은 2년, 프랑스와 일본은 3년 만에 3만 달러대에서 4만 달러대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대내외 여건을 고려할 때 단시간 내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한국 경제의 주력 제조업들이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뒷받침한 것은 2007년 이후 11년 만의 최고치였던 정부 소비였다.

한은 관계자는 이와 관련 “4만 달러 도달까지는 10년 미만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저출산 및 고령화, 가계부채 등 구조적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소득 3만달러 도달 시점에도 선진국들이 달성한 복지·노동 등 실질적인 ‘삶의 질’ 수준이 여전히 차이가 남을 지적한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한 나라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총합인 국민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지표로, 국내총생산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그 나라 국민의 평균적인 소득·생활수준을 나타낸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 지표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져왔다. 인구 5천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6개 나라뿐이다.

이들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으로 서방 주요 7개국(G7) 멤버들이기도 하다. 한국이 7번째로 30-50클럽 국가가 됐다는 것은, 세계 11∼12위권인 국내총생산·교역규모라는 양적 기준뿐 아니라 경제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4만 달러 시대’로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민총소득의 근간을 이루는 명목 국내총생산의 지난해 증가율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 이후 최저인 3%에 그쳤다. 국민총소득도 2.9% 늘었지만 이 역시 1998년 -1.9% 이후 최저치였다.

수출물가보다 수입물가가 더 올라 교역 조건이 악화하는 바람에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0.1% 이후 가장 낮은 1% 증가에 그쳤다.

2015년과 2016년엔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이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압도했는데, 2017년엔 3.1%로 같아졌다. 지난해에는 1%와 2.7%로 역전됐다.

한은 관계자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하기 전과 후가 질적인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기에 통계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 수준의 경제활동이나 규모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축배를 들기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저출산·고령화, 소득과 고용의 양극화, 과중한 가계부채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사회’ 지표들이 적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7개국의 달성 시기 민생 지표를 분석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한국은 경제발전 속도에 비해 삶의 질 개선 속도가 매우 더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르면0 7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3만달러 달성 시기에 11.8%(7개국 평균)였다.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인구 중에서 빈곤위험에 처한 인구(중위소득의 50%미만)의 비율이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2017년)로 훨씬 더 높은 상황이다.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46.5%·2016년) 등 소득 불평등·양극화 심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이 3만달러 시대에도 큰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7개국의 3만달러 시기(20.7%)의 절반에 불과한 11.1%(2018년)에 그치고 있다. 소득수준은 선진국 클럽에 근접했지만,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도 복지지출을 통한 사회안전망은 매우 취약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세·재정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보여주는 ‘지니계수 개선율’의 경우도 7개국은 3만달러 당시 31.5%인 반면 한국은 12.6%(2017년)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지만,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며 “소득 양극화에 따른 박탈감, 소득 증가보다 빠른 자산가격 상승 등으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3만 달러 시대를 연 한국 경제가 실질적인 삶에서도 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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