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완연한 해안가, 고요만이 흐르지
봄빛 완연한 해안가, 고요만이 흐르지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9.03.14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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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의 어른을 위한 동화] 바다로 간 조가비

 

아, 봄이 왔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바람에 묻어오는 저 냄새를 맡아 봐. 계절은 냄새로 실체를 드러내지. 며칠 잠잠하기만 하던 바람이 살며시 나타나 뭍의 소식들을 한아름 풀어놓았어.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해. 지난겨울은 길고도 지루했지만 한편으로는 감개가 무량했어. 고향을 떠난 지 꼭 일 년 만에 다시 돌아왔거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봐.

내가 누구인지부터 말해야 하겠군. 내 이름은 조가비. 조개의 껍질이지. 한낱 조개의 껍질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알맹이 빠진 조개껍질이라고 해서 주눅 들어 살라는 법은 없지. 비록 살아서 꿈틀거리지는 못하지만 내게도 생명체 못지않은 힘과 아름다움이 있거든.

나는 사람들에 의해 신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그래, 조개목걸이라고 들어보았을 테지. 나 같은 조가비를 여러 개 실에 꿰어 만든 것인데, 소녀들이 아주 좋아하지. 나처럼 잘 생긴 조가비는 장식품으로 쓰이기도 하지.

수많은 조가비가 있지만 장식품이 되려면 모양이 아름다워야 해. 운도 따라야 하고. 모양이 신기해도 사람 눈에 안 띠면 제 빛을 못보고 말지. 그냥 고향이나 지키는 거지 뭐.

바람이 전해준 말 중에는 소녀의 소식도 끼여 있었어.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고 보니 소녀와 헤어진 지도 어느 덧 두 달이 다 돼 가는군. 바닷가 바위에 볼품없이 나동그라진 나를 멋진 장식품으로 만들어준 소녀. 그리고 다시 내 고향에 보내준 소녀를 나는 잊을 수 없어.

나는 저 뭍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알고 있지. 그래, 누군가가 낙엽을 태우고 있군. 마른 풀잎 냄새 같기도 하고. 아, 저기를 보아.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산이 온통 연녹색이야. 칙칙하던 산이 비로소 제 빛깔을 찾은 거야.

나는 올 겨울까지만 해도 뭍에서 지냈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이야. 아파트 11층이 내가 살던 곳이야. 정확히 말하면 산이 바라보이는 소녀의 방에서 일 년을 보낸 것이지.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어.

바위벼랑에 붙어 살던 내가 소녀의 눈에 띈 것은 작년 늦겨울이었지. 소녀는 나를 본 순간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하더군. 나는 소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어.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거든. 장식품으로 쓰기 위해 나를 가져가려는 것 같았어.

나는 사람 눈에 띄어 장식품이 된 친구를 여럿 알고 있지. 바람이 전해준 말에 따르면 장식품이 된다는 것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갑갑하다는 거야. 무엇보다 고향이며 친구들과 영영 볼 수 없으니 겁이 날 수밖에.

소녀는 바위 틈새에 낀 나를 꺼내느라 무척 애를 먹는 것 같았어. 바위 모서리에 몸을 기대고 조심조심 오른손을 내뻗는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었어. 자칫하면 발이 미끄러져 바다에 빠질 수도 있었거든. 드디어 소녀의 손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나는 무서워 몸을 떨었지.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지 뭐야. 부모님이며 친구들과도 영영 이별이고. 그렇더라도 바위틈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파도 소리나 듣고 있던 내가 장식품이 되어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들었어.

소녀는 나를 요리조리 만져보더니 호주머니에 넣고는 기쁜 표정을 짓는 것이었어. 소녀의 가슴에서 가느다란 맥박이 느껴졌어. 소녀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야.

소녀의 책상 위에서 장식품이 된 지도 어느 덧 오 개월.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아침밥을 먹고 책가방을 챙기던 소녀가 나를 가방 안주머니에 넣는 것이었어. 학교에 가지고 가려는 것 같았어.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지. 바깥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겠어.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날이었지.

바깥에 나오니까 힘이 솟는 것이었어. 고향 생각도 간절하고. 학교에 도착했는지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했어. 소녀는 가방을 열고 나를 꺼내더니 필통 옆에 가만히 올려놓는 것이었어. 선생님 말씀을 공책에 꼬박꼬박 옮겨 쓰는 소녀의 눈동자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지.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어. 앞자리에 앉은 곱슬머리 남자아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만져보는 것이었어. 남자아이는 나를 갖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야. 반에서 힘이 세기로 소문난 아이였기에 자칫하면 강제로 뺏길 염려도 있었어.

남자아이는 소녀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었어.

“너, 이거 나한테 줄 수 없겠니?”

“안 돼,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건대.”

소녀는 단호하게 거절했지. 곱슬머리 아이를 노려보면서 말이야. 나는 그런 소녀가 너무 고마웠어. 혹시 다른 아이한테 넘어간다면 내 운명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예감이 스친 것이었지.

그 다음 날도 소녀는 나를 가지고 학교에 갔어. 그런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나를 선생님이 우연히 본 것이었어.

“어머, 예쁘다. 이거 어디서 났니?”

소녀는 머뭇머뭇하더니 작은 소리로 대답했어.

“바다에서 주웠어요.”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나한테로 쏠렸어.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소녀의 방에서 지냈어. 허공이나 바라보면서 말이야.

소녀는 나를 무척 좋아하였어. 매일 학교 갔다 돌아오면 내게 입을 맞춰 주었지. 그 짜릿한 순간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마구 뛰어.

소녀는 매일 아침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싱그러운 바람을 맞아들였어. 바람이 물어온 고향 소식은 나를 애타게 했지. 고향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 되기도 했어.

아파트 11층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어. 혹한의 겨울이 지나가자 봄이 찾아왔어. 그리고 다시 여름, 가을.

어느 햇볕 쨍쨍한 날이었어. 소녀네 가족이 갑자기 부산을 떠는 것이었어. 어디로 가려는지 짐을 챙기는 게 아니겠어.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엿들었지. 아, 내 고향 바다에 간다는 것이야. 하지만 나는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어. 모두 떠나면 나 혼자 집에 남아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소녀가 나를 여행 가방에 가만히 넣는 것이 아니겠어.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뭐야.

“자, 이제 너를 보내줄게. 너는 바다에서 살아야 돼. 그 동안 답답한 곳에서 지내느라 고생이 많았지. 곧 그리운 바다로 가게 될 거야.”

소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을 흘렸어. 너무 좋아서이지. 그간 알게 모르게 소녀를 미워했었는데…. 소녀가 보내준 넓고 따뜻한 마음은 내 조급한 생각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지.

소녀는 엄마 아빠와 함께 기차에 올랐어. 기차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단잠에 빠져들었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소녀가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었어.

“와, 바다다. 아빠, 바다가 보여요.”

“그래, 다 왔구나.”

“그렇게 좋니?”

“그럼요. 바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원, 녀석도.”

짭짜름한 바다 냄새를 맡자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는 감격과 함께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살짝 눈물이 나지 뭐야. 아득히 펼쳐진 바다 위로 갈매기가 날아다녔어. 친구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더군.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도 살짝 윙크를 하고.

소녀는 나를 손에 쥐고 꿈에도 그리던 바위로 걸어갔어. 파도가 밀려와서 나의 귀향을 축하해 주었지. 소녀는 내게 입맞춤을 해주면서 이별을 고했어.

“조가비야, 안녕. 너를 보러 다시 올 거야.”

나는 멀어져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어.

그로부터 여섯 달이 흐른 지금은 봄빛이 완연해. 사람 발길이 뚝 끊긴 이곳은 고요만이 흐르지.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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