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캐스팅보트 주목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추진하는 선거법 개편 패스트트랙(신속지정안건) 협상이 마지막까지 안개 속을 헤맸다.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에 실리는 '패키지 법안'들을 손질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패스트트랙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검경수사권조정 등에 중립성과 독립성을 더욱 확보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달았다. 정치권의 선거법 개편 협상 또한 또 다시 ‘장애물’을 만났다. ‘패스트트랙’ 논의와 향후 후폭풍을 전망해 봤다.

 

한국당을 둘러싼 ‘장막’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협상을 기치로 ‘반한국당 전선’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다. 바른미래당이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14일 오후 9시 국회에서 선거법 및 패스트트랙 방향 논의를 위한 비공개 의원총회를 개최했다. 손학규 대표, 김관영 원내대표와 유의동, 김성식, 정병국, 이혜훈, 하태경, 지상욱, 오신환 의원 등 20명이 참석해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회의는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약 3시간 50분 동안 이어졌다. 회의를 끝낸 김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에 대해 아예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히 있었지만, 적어도 패스트트랙이 지금 상태에선 불가피하다고 의견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패스트트랙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단 내부에서 패스트트랙 '결사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던 이전 상황과 비교하면 합의를 모으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3일 전 의원총회에서는 5선의 정병국 의원이 “정부여당의 술수”라며 패스트트랙을 강력 반대했다.

역시 '반대' 입장을 보인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국민의당계 호남 의원들 사이에서 당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바른미래당 ‘내부 이견’

이런 갈등은 14일 의원총회에서도 재현됐다. '패키지 법안 연계 반대', '보완 찬성'. '적극 추진' 등 갖가지 주장이 엇갈렸다. 이에 대해 결론은 패스트트랙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되 패키지 법안인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등을 바른미래당 입장을 담아 내놓는 것으로 모아졌다.

김 원내대표는 "선거법에 대해 좀더 협상을 하고, 특히 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충분히 담보하는 내용을 우리 당의 내용으로 정리해 전달하겠다"며 "그 부분이 관철되지 않으면 더이상 패스트트랙을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패키지 법안 내용의 수정을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달며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경찰 비리 의혹이 번지는 '버닝썬' 사건과 검찰 부실수사 비판이 일고 있는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사건 등 최근의 이슈들도 영향을 미쳤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화두가 될 전망이다.

선거법에 대해선 애초 바른미래당이 요구했던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일단 철회하기로 했다. 이를 도입할 경우 의석수 300석 제한을 넘을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해서다.

선거법 개편의 핵심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 의석수가 정당득표율로 정해지고,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현재 여야 4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개편안(지역구 225석 + 비례대표 75석)을 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전체 정당득표율의 50%를 의석으로 보장하는 '준연동형제'를 주장한 바 있다. 이 경우 한 정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10%의 정당득표율을 얻으면 30석 중 15석을 보장받게 된다. 하지만 100% 연동형은 30석 전부를 배분받게 돼, 전체적으로 300석을 초과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300석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최대한 확보할지가 협상의 초점"이라고 언급하는 등 갈등의 뇌관은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바른미래당이 제동을 걸면서 여야(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4당이 정한 협상시한(단일안 도출)인 15일은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15일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 국회제출 시한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획정위는 총선 13개월 전까지 국회의장에게 획정안을 제출해야 한다.

다만 데드라인을 넘겨도 협상을 진행하는데는 아직까지 문제는 없다. 패스트트랙은 최장 330일 후 본회의에 자동상정되지만, 국회의장의 결정으로 상정 시점을 최대 60일까지 앞당길 수 있다.

총선 선거제 개편을 두고 진행되고 있는 첨예한 대치는 벌써 8개월여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국회의원 정수와 비례대표 확대 여부였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한 축이고 다른 축은 자유한국당이다.
 

‘총선, 대선 구도 전초전’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설치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지난해 7월 말이었다. 하지만 정개특위 위원 정수를 두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3개월 후인 10월이 돼서야 첫 회의가 열렸다. 선거제 개편에 적극적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개특위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이후 거대 정당들이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논의에 진척도 없었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소수 야당들이 강하게 몰아붙였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해 열흘간의 단식 농성이 이어졌다. 마침내 같은 달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쉽게 지켜지지 않았다. 구체적 방안을 올해 1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한국당이 특검과 선거관리위원 임명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임시국회가 마비됐다. 자연스럽게 선거제 개편 논의는 미뤄졌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에서는 2월 말부터 '패스트트랙' 카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내년 4월 예정된 총선을 고려해 내년 2월까지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추진에 강력히 반발하며 3월 10일 자체 개편안을 내놓았다. 의원정수를 300명에서 27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는 안이었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는 다른 정당의 안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이에 맞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선거제 개혁안과 개혁 법안을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만 합의했을 뿐 비례대표 배분 방식 등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아직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여야 4당이 함께하는 패스트 트랙은 앞으로도 정치권의 주요 화두로 등장할 수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4당의 공조를 거듭 강조하며 “국민을 위한 개혁 입법을 자유한국당 때문에 더 미룰 수 없다. 4당 공조를 통해 국민과 입법 성과를 내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12년 도입된 패스트트랙은 국회법(85조의 2)이 정한 ‘안건의 신속 처리’를 말한다. 신속 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되면 일정 기간과 절차를 거쳐 법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된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는 정족수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또는 안건의 소관 위원회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이다.

선거제도의 소관위인 정치개혁특위(위원 18명)는 한국당을 제외한 4당 위원(12명)이 67%이고, 공수처법의 소관위인 사법개혁특별위원회(위원 18명)는 11명(61%)이다. 현재 재적의원(298명)의 구성도 4당 및 무소속 의원으로 60% 이상(179명)의 정족수가 가능하다.

민주당(128), 바른미래(29), 민주평화(14), 정의당(5) 소속 의원이 176명이고, 민중당 1명과 범여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 4명(문희상, 손혜원, 손금주, 이용호)을 합치면 181명이 된다.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패스트트랙에 올리면 의원직을 총사퇴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인 그룹들이 10명 안팎이기 때문에 이들이 실질적인 캐스팅보트로 불린다.

현 상황에서 ‘패트스트랙’은 반한국당 성격이 적지 않다. 이 같은 구도가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선거구제 개편 등을 놓고 진행되고 있는 ‘패스트트랙’이 어떤 결과로 마무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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