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8년이 지났습니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은 후쿠시마 부흥의 상징으로 적극 귀환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후쿠시마를 떠났던 젊은 부부들의 귀환을 위해 교육부와 함께 막대한 돈을 투입하여 새로운 학교를 건축했습니다. 이 학교들에는 잔디운동장과 수영장 그리고 강당 등의 최신 시설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부터 8년. 나미에마치 쓰시마에 있는 쓰시마 중학교는 폐허로 변했다. 돌아갈 수 없는 학교가 되었다. ⓒ장영식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부터 8년. 나미에마치 쓰시마에 있는 쓰시마 중학교는 폐허로 변했다. 돌아갈 수 없는 학교가 되었다. ⓒ장영식

그럼에도 학교로 돌아온 학생 수는 후쿠시마 핵사고 발생 전의 5퍼센트입니다. 특히 나미에마치와 토미오카는 후쿠시마 핵사고 발생 전의 1퍼센트에 불과합니다.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 대부분은 핵발전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후쿠시마시와 가와후마치 등지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합니다. 기차역 앞에는 학생들을 수송할 통학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수는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가와후마치의 야마키야지역 초, 중학교는 전교생이 15명밖에 되지 않아 휴교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폐허로 변한 학교 운동장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그 잡초 속에는 방사능 측정 장비만 존재하고 있었다. ⓒ장영식
폐허로 변한 학교 운동장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그 잡초 속에는 방사능 측정 장비만 존재하고 있었다. ⓒ장영식

2011년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모든 것을 정지시켰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반경 20킬로미터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40킬로미터 지역에까지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3-4세대가 함께 살던 대가족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80살 이상의 노부부들은 “죽더라도 고향에서 내 집에서 죽겠다”라며 돌아오지만, 어린이들이 있는 젊은 부부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신 시설로 새로 지은 학교는 적막했다. 학생도 선생님도 없는 학교가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장영식
최신 시설로 새로 지은 학교는 적막했다. 학생도 선생님도 없는 학교가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장영식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전의 학교들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된 잡초만 무성합니다. 새로 지은 학교는 학생들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이 없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로 선생님들이 지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돌아오라고 합니다.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굳게 닫힌 학교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영식
굳게 닫힌 학교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영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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