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지음/ 문학동네

 

첫 소설집 '라면의 황제'(자음과모음, 2014)와 첫 장편소설 '무한의 책'(현대문학, 2017)을 거치며 김희선 소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다른 무엇과도 구분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2019년 봄, 김희선이 두번째 소설집 '골든 에이지'로 돌아온다. 작가의 경이로운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한층 더 넓어진 김희선 소설세계의 지평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문제의 본질과 이면을 꿰뚫는 시선은 더욱 첨예해졌고, 작품에서 전해지는 감정의 깊이와 농도도 보다 깊고 진해졌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과거와 현재의 사건, 이곳과 저곳의 기구한 사연을 하나의 서사로 거뜬히 꿰어내는 김희선의 입담은 '골든 에이지'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현대식 축구공을 개발한 사람이 사실 개항기 인천의 한 조선인이었다거나(「공의 기원」),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일렉트로닉 힙합 듀오 LMFAO의 멤버 스테판 켄달 고디가 어쩌면 한국의 지방 소도시에서 원어민 강사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거나(「스테판, 진실 혹은 거짓」), 언제부턴가 자꾸만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내놓는 노벨문학상이 알고 보니 외계인들의 제비뽑기로 결정되고 있었다거나(「18인의 노인들」), 도심 곳곳에서 발생한 싱크홀이 지구의 곳곳을 잇는 통로의 입구로서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거나(「지상에서 영원으로」) 하는 허황한 상상이 김희선의 능청스럽고도 세밀한 서술과 강인한 사유에 의해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게 김희선은 실제와 백 퍼센트 일치하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맹점을 파고들어 진실이라고 공인된 이야기 속에 숨어 있을 법한 비밀과 뒷이야기를 무한히 생성해낸다.

'골든 에이지'는 비루하고 연약해서 곧잘 망각되어온 존재들의 삶을 포착해낸다.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았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가장 중요했을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이 책 속에서 잠깐이나마 빛을 발한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을 우리의 역사 또한 우리 스스로가 기억하는 한 오래도록 보존되고 재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하고 비참했던 그 기억들을 잊지 않음으로써 열리는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김희선은 믿는다. 그런 믿음으로 쓰인 이 놀라운 이야기들을 힘껏 따라 믿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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