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봄노래
다산의 봄노래
  • 박석무
  • 승인 2019.03.2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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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작년 가을, 집안의 정원을 꾸미면서 만 그루에 가까운 야생초를 심었노라고 자랑하는 지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홍매화도 몇 그루 심었다고 자랑하기에, 제 집에도 뜨락이 조금 있으니 홍매 한 그루 정도 얻어다 심을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구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강원도 정선에서 12년 자란 홍매를 구했노라고 사람을 시켜 제 집 뜨락에 심어주는 수고까지 해주셔서 앙상한 가지만 있는 홍매 나무가 집안 뜨락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박석무
박석무

지난해 이른 봄이 되자, 마른 가지마다에서 꽃망울이 머물더니, 많지 않았지만 몇몇 가지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홍매가 피었습니다. 경이로울 정도로 붉은 농도가 짙기에 보고 또 보고 했는데 1년이 지난 금년 봄, 며칠 전에는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꽃이 가지마다에서 피어나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봄이 왔구나 했더니 춘분이 지나고 말았으니, 이제는 참으로 봄노래를 읊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은 마을 배꽃 하얗게 피자

깊은 산골엔 진달래 붉게 피었네

돌비탈 오솔길 더디게 따라 걷다

안개 낀 강 낚시 배로 다시 찾아가네

村小梨花白立

山深杜宇紅然

徐從石磴樵路

還訪煙磯釣船

 

어떤 소년이 봄을 맞아 마을 비탈길을 걷고 산에 가서 진달래도 구경하고는 다시 마을로 돌아와 안개 낀 강 위의 낚시 배로 찾아가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그림 같은 시 한 편입니다. 정확한 연대는 없지만 아마도 다산의 20대 후반으로 짐작되고 자신의 마을 소내(苕川)의 사시(四時)에 대한 시여서 제목은 「소천사시사(苕川四時詞)」라 하였습니다. 마을의 봄 풍경을 읊었으니 배꽃과 진달래가 등장했습니다. 벼슬하기 전의 꾸밈없는 시상이 곱게만 느껴집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모진 겨울을 견뎌내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홍매화, 꽃을 보면 겨울을 이겨낸 신통함 때문에 사람도 희망과 용기를 되찾게 됩니다. 다산이 다산초당에서 귀양살이할 때에도 “겹겹이 싸인 산이라도 봄바람 오는 길 막지 못하네(攢峯未礙春風路).”라고 읊어서 자연의 섭리는 어느 누구도 어긋나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무섭던 유신독재도 견뎌내고, 5공 독재의 폭압정권도 이겨내고, 민주주의의 꽃망울을 터트려왔습니다. 이른바 ‘운동권’이라는 독재에 맞서 싸워온 세력을 ‘썩은 뿌리’라고 저주하는 세력이 한창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있으나, 그런 논리가 절대로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매화와 산수유가 한창 피었으니, 배꽃, 진달래 등이 만발하여 봄의 찬가를 외칠 날이 오고 있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 나오듯이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라는 내용처럼, 새봄처럼 새 시대는 기필코 오고 말 것입니다. 적폐를 씻어내는 진통으로 오늘 우리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잘 견디고 간다면 그래도 예전과는 다른 세상이 올 것입니다. ‘운동권’이라며 저주받는 사람들, 똑똑히 정신 차리고 욕을 먹지 않도록 잘 해서 좋은 세상, 새봄을 맞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세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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