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왜구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토착왜구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9.03.27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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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저런 말] 김수복

알고 나니 그들에게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뭘 몰랐던 시절에 나는 그들이 직업적으로,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그런 광란의 파티에 참석한 줄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내심 세상을 꼭 저리도 너절하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고 무시해 버렸다.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용서받지 못할 더러운 것들이라 욕하고 저주까지 했었다. 언론이 그런 식으로 보도를 하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을 해야 할까?

아니다. 이 땅에서 언론을 믿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온 내가 차마 그런 낯부끄러운 변명을 내놓을 수는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게을렀던 거다. 생각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리지 못하고, 그냥 대충 무딘 칼로 무나 썰어대며 까불고 있었던 거다.

 

사진 속 별장='KBS뉴스' 캡쳐
사진 속 별장='KBS뉴스' 캡쳐

내막을 알고 나니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사건의 개요를 새삼 돌아보매 치가 떨리기도 한다. 어쩌면 그 중에 한 명쯤 내 누이 촌수나 조카 혹은 사돈네 팔촌의 고명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친구의 딸이나 누이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는 후배의 누이나 어린 고모 혹은 이모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의 직업은 알몸으로 사내들을 유혹하는 그따위 것이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수사를 했지만 매번 암장을 당해야만 했던 경찰관들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한 마디씩 흘리는 얘기에 따르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배우를 지망하는 새내기 모델이었고, 또 한 사람은 손톱을 예쁘게 치장하는 네일아트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의기 충만한 대학원생이 있었는가 하면, 젊은 부동산 중개업자도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다 그렇고 그런,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특징을 찾기로 하자면 낯선 남자를 지나치게 의심하지 않고 쉽게 믿는 순진성을 갖췄다고나 할까. 하긴 순진했기에 그런 짐승 같은 자들의 꾐에 빠져들었을 것이고, 그자들은 또한 순진무구해 보이는 여성들을 열심히 찾아다녔을 것이다.

늑대 얘기가 생각난다. 간단한 소품으로 늑대의 본모습을 감추고, 달콤한 말로 아이를 꼬드겨서 아이도 잡아먹고 아이의 할머니도 잡아먹은 늑대, 그런 교활한 늑대가 여기저기 도처에 숨어서 순진한 여인들을 기다린다.

“아이고, 그렇게 해서 언제 사람답게 살아보겠어요, 네?”

교활한 늑대들은 대체로 그런 말을 아주 능숙하게 잘한다. 한심하고 안타깝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걷다가 발에 걸린 돌멩이라도 무심히 걷어차는 식으로, 간단하게 그냥 한 마디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이다.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현실을 언뜻 돌아보고는 열등감에 빠진다. 그동안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해 왔지만 이뤄낸 것은 하나도 없고, 빚만 잔뜩 지고 있는 자신의 생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하다. 늑대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낚시를 던진다.

“우리 별장에 한 번 와 봐요. 굉장한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드니까, 무엇이든 어느 쪽으로든 괜찮은 길이 열릴 거예요.”

그러면서 명함을 건네고, 별장으로 가는 길을 상세히 알려준다. 그녀가 만약에 그 명함을 아예 안 받았거나, 예의상 받았다 해도 즉시 버렸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지 모르지만, 일단 받아서 핸드백에 간직했다면, 그녀는 이제 곧 늑대의 밥이 되어갈 것이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아예 모른다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고, 많이 안다면 그것 뭐, 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지만, 아는 듯이 모르는 듯이 조금만 안다면 그것이 자꾸 생각나기 마련이다.

‘굉장한 사람들이 드나든다고 하는 그 별장은 어떤 곳일까? 나는 비록 굉장한 사람으로 태어나진 못했지만, 그곳에서 혹시 뭔가 새로운, 지금의 이런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어느 날 문득, 뭐에 취한 듯이 그놈의 별장이란 데를 한 번 가보기로 한다.

한 번 가보기나 하자는 심사로 출발했지만, 일단 그곳에 들어갔다 하면 빠져나올 길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 모른다.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별장의 규모에 놀라 주눅이 들어버렸다. 영화 같은 데서나 봤음직한, 호사의 극치를 다한 별장에 주눅이 든 그녀는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 채로, 주인이 가자는 대로 가고, 하자는 대로 한다. 먹을 것을 주면 먹고, 마실 것을 주면 마신다.

피해자 중에 한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주인이 건넨 음료수를 마시고 난 뒤에 갑자기 몸에 힘이 빠졌고, 나른하게 자꾸 풀어져서 깜빡 졸았는가 어쨌는가 하여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몸이 알몸이고, 알몸일 뿐만 아니라 알몸의 낯선 남자와 엉켜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마신 음료수에 무슨 짓을 사전에 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어쩌면 누군가가 말했던 그 유명한 돼지발정제 같은 것을 주입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뒤의 일이다. 알몸의 그녀가 알몸의 남자와 뒤엉켜 있는 장면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다.

그녀는 자신의 알몸이 영상에 담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로 허둥지둥 그놈의 별장 집구석을 빠져나왔는데 며칠 뒤에 전화가 걸려온다. 별장에 귀한 손님이 오니까 와서 접대를 하라는 거다. 이게 웬 미친 소리인가 싶어 욕지거리를 퍼부어대고 전화를 확 끊어버리긴 했지만, 십 분도 안 돼 사진 한 장이 날아온다. 그녀 자신의 알몸이다. 그 아래 문장 한 줄이 있다.

동영상도 있거든. 넌 이제부터 나의 개다. 빨리 와서 개 노릇을 해 이X아.

그녀는 부들부들 떤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오직 하나, 남들이 알면 어쩌나, 일가친척들이 알면 어쩌나, 이것뿐이다.

그까짓 거 뭐라고, 과감하게 그냥, 단호하게 그냥 내가 이리저리해서 이리저리한 일을 당했는데 도와달라고, 용감하게 한 마디만 가족들에게 털어놨으면 됐을 것을, 용감이나 단호함보다는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더 크게 작동한 탓으로 그녀는 늑대의 개 노릇을 하러 간다. 가야만 한다.

도대체 이 늑대는 어디서 왔는가. 무슨 믿는 구석이 그리도 많기에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알고 보니 늑대의 주변이 어마무시하다. 평검사 정도는 부하 다루듯이 하고, 부장이나 차장, 검사장쯤은 돼야 그나마 친구로 대해주는 늑대의 기술은 가히 전설의 고향급이다.

대한민국에서 검사는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이 직접 수사를 하기도 하는, 거기에 플러스 기소권까지 움켜쥐고 있는 슈퍼울트라파워다. 그렇게도 대단한 권력자들을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대는 늑대의 진짜 신분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명색이 건설업자란다. 직위는 사장도 아니고 회장님이다.

늑대 회장님께서 슈퍼울트라파워 권력자들의 아가리에 돈을 쑤셔 넣는 한편 여자들을 품에 안겨주고, 그러면 권력자들은 회장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다. 기발하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권력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가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이런 방식이야 뭐 흔해빠진 고전이라서 그리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진실로 크게 놀랄 만한 것은 늑대가 직업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여성들은 신선미가 없다고, 그래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여성들을 하나하나 주밀히 관찰하고, 그 눈에 이거다 싶으면 다가가서 낚시를 던진 다음 강제로 끌어다가 슈퍼울트라파워들의 품에 안겨주는 방식으로 슈퍼울트라파워들을 관리해 왔다는 점이다.

자, 어쨌든 그런 일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피해자 중에 한 명이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잠도 잘 수 없고, 그렇다고 자살을 해버릴 수도 없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검찰에 신고를 했다면 초장에 묻어버렸을 텐데, 신고를 경찰에 한 덕분에 일은 완전히 묻히지 않고 때를 기다리게 되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사건은 대한민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 또 했지만 기소권을 틀어쥐고 있는 검사가 매번 기각해 왔다는 것도 함께 알려졌다.

그런데 담당 검사의 행위는 단순히 그냥 기각을 한 정도가 아니었다. 매우 적극적으로, 사건 자체를 아예 없었던 것으로 묻어버리려고까지 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얼굴도 예쁜데 다 잊고 그냥 살라’고 했다던가. 수사를 해야 할 검사란 자가, 감히 판사의 역할을 도용해서 조정까지 시도했었다는 얘기이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짐승들이 사람 가면을 쓰고 판을 쳐도 되는 나라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정부에서, 대통령 실에서 직접 나서야만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통령이 나섰다. 대통령의 지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장난치지 말고 수사 제대로 해라.’

그러자 슈퍼울트라파워 집단을 자신들의 새끼처럼 거느리는 정치집단 자유당에서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이는 명백하게 위법이요 탄핵감이라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이 땅에서 가이드라인은 일찍이 대통령 박근혜가 친절하고 착실하게 모범을 보인 바 있다. 정윤회 문건이라는 것이 터졌을 때 그것은 ‘찌라시’라고, 마치 무슨 주문이라도 외듯이 읊조린 그 말씀은 몇 년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고전 반열에 올라 있다. 만약에 대통령 박근혜가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대통령처럼 장난치지 말고 수사 제대로 해라, 라고 했다면 그는 아마 영웅이 되어 죽어서도 추앙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사람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들이 대통령의 수사 제대로 하라는 지시를 가이드라인이라 규정했다. 이런 자들이 이 땅의 국회의원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비서에 보좌관을 아홉 명씩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뽕잎 먹는 누에처럼 세금을 쓱싹쓱싹 먹어치우는 이 자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돌아보면 놀라움은 배가 된다.

대통령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낸 이후 이 자들이 국회의원으로서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일을 하기는커녕 뭔가 일이 될 것 같다 싶으면 달려가서 방해만 놓았다. 이 자들의 존재 의의는 오직 하나,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게 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행동해 왔고, 지금도 그런 꼬락서니를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누군가 그들을 향해 토착왜구라 했을까.

그들 중에 일부가 왜구의 후손들을 추종한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긴 하지만, 토착왜구란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매우 적절해 보인다. 쥐꼬리 같은 월급 따위를 바라고 새빠지게 일하는 직장인 대비 남의 것을 빼앗는 토착왜구는 부가가치가 매우 높고 세금으로 빼앗길 걱정도 없으니 상대적인 우월감도 대단치 않겠는가.

자유당의 인기가 연일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조사로는 삼십 퍼센트를 넘어섰다고 하니,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질 만도 하겠다.

그러면 그 삼십 퍼센트 안에 들어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단순히 그냥 토착왜구를 응원하자는 사람들은 아닐 테고, 그들 자신이 숨어 있는 토착왜구일까. 아니면 나도 그런 부가가치 높은 토착왜구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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