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동네 마실하기] 삼선동 장수마을

성북구 삼선동은 언덕과 골짜기의 연속인 동네다. 좁고 넓은 계단과 삐뚤빼뚤한 골목이 많다. 서울 성곽 아래로 이어지는 동네 장수마을. 서울 안에서도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라 대체로 연로한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동네가 새롭게 단장했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길에 급경사의 계단으로 가득한 작은 동네. 젊은이들은 이런 동네를 왜 찾는 것일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서울성곽과 삼선공원 사이의 경사지에 자리한 장수마을. 전후에 서울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이나 판잣집을 지으면서 형성되었다. 급한 경사에 저마다 다른 지형조건 속에서 길을 내고 축대를 세워 터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허술했던 집들이 60~70년대를 거치며 양성화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동묘역에서 마을버스 종로 03번을 타면 종점인 낙산공원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성곽길을 따라 쭉 걸으면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산책, 데이트코스다. 낮과 밤의 모습이 달라 몇 번이고 찾게 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낙산공원 정류장에 내리니 장수마을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걸어 내려가다 보니 성벽 아래 난 암문이 보인다. 그 높이가 4~5m는 됨직하다. 리어카를 끌고 겨우 지날 만큼 좁은 길이 성곽을 따라 이어지고 그 아래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급경사에 층층이 내려앉은 집들 사이로 골목들이 흘러 어디론가 사라진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다. 그렇지만 장수마을의 첫 이미지는 어둡기보단 정겹다.

 

성곽길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반긴다. 낯을 가리지도 않는다. 고양이 특유의 성격은 어디가고 기자의 다리를 부벼대며 갖은 애교를 부린다. 살짝 만지니 바로 홀라당 누워버리는 녀석. 덕분에 장수마을 탐방이 한층 더 흥미로워진다. 고양이가 올라온 방향으로 내려가니 이 녀석 졸졸 뒤따라온다. 그리곤 갈림길에서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햇볕아래 드러누워 고양이 세수를 한다. 고마움의 표시로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날씨도 맑고 때마침 비행운(비행기가 지나간 뒤 생기는 구름 같은 흔적)도 지나가 인생샷 아닌 묘생샷을 건졌다.

 

자그마한 데다 통일성 없이 자유롭게 이뤄진 마을. 발길이 닿는 대로 걷자. 이곳에선 어떠한 코스도 무의미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걸었다. 작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이어진다. 낡은 집들이 대부분이지만 보기 드물게 새 주택도 보인다. 이곳 장수마을의 주민들은 약 55% 정도가 노인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네의 매력에 빠져 눌러 앉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종종 젊은 사람들의 센스가 느껴지는 곳도 보이니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이곳의 주된 매력은 역시 낡고 오래된 집들이다. 페인트가 다 벗겨진 철문과 얼룩진 담들. 그 위로 알록달록한 지붕도 귀엽다. 나름 고지대라 대부분 햇살이 잘 들어서 마당에 빨래를 널기 좋다. 빨랫줄이 걸린 앞마당의 모습도 보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요즘엔 빨랫줄 걸린 집을 보기 힘들다. 기술이 발달해 빠른 시간 내에 건조해주는 건조기를 쓰거나 극심해진 미세먼지를 피해 실내에서 말리기 때문이다.

 

장수마을은 낡고 오래된 주택들과 골목을 없애지 않고 보존하며 그 매력을 살려냈다. 곳곳에 벽화를 그려 골목의 분위기도 환하게 하고, 포토존도 만드는 등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벽화를 구경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마을의 곳곳을 다 돌게 된다. 얼룩덜룩한 오래된 벽 위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다. 오래된 마을 고유의 분위기가 살아있으니 이를 구경하려는 발길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 탐방을 하다 보니 길고양이들이 굉장히 많다. 마을 주민들은 길고양이들을 위해 자그마한 대문 앞에 먹이를 둔다. 고양이들이 다들 토실토실한 이유다. 고양이들은 굳이 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되고, 마을은 더 깔끔하게 유지된다. 작은 배려로 사람뿐만 아니라 고양이들도 장수할 수 있는 마을이 됐다.

마을 아래엔 삼선공원과 한성대학교가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장수마을과 달리 북적북적하고 시끌벅적하다. 그 가운데 길목에서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길 하나를 두고 마치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느낌이다. 마을은 계단의 연속이지만 골목골목을 더 보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마을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가게 되고, 저 골목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젊은 사람들이 왜 많이 찾아오는 지 알 것 같다. 이전에 방문했던 성북동 북정마을과 매우 닮았다. 북정마을의 축소판이랄까. 하지만 작은 마을인 만큼,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가지 않게 구경하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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