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급! 고독
[신간] 급! 고독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9.03.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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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지음/ 창비

 

1989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독특한 발상과 이질적인 화법으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이경림 시인의 신작 시집 급! 고독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한 지 만 30년, 시인의 생애 여섯번째 시집이다.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우연의 순간에 문득 생겨나고 움직이고 사라지는 존재들의 근원을 촘촘히 파고든다.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생(生)의 내밀한 풍경을 다채롭게 그려내며 독자를 한층 풍요로운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불교의 사유를 일상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존재론적 성찰”(김수이, 해설)이 돋보이는, 독창적이고도 깊은 사유가 담긴 시편들이 매력적이다.

칠순을 넘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활달한 상상력과 실험적인 어법이 도드라지는 이경림의 시는 ‘유쾌한 발상’과 같다. 시인은 때로는 유머와 위트가 섞인 거침없는 입담으로 “위태롭고 안온해서 아름다운”(「눈이 와서」) ‘지금-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과 서로 사랑하는 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삶’은 대체 무엇인가.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시인은 “엑스트라 배우만도 못한”(「에스토니아인 대천사의 장난」) 생을 감싸안는다. 그것은 곧 ‘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고뇌와 번민이 가득한, “어지러운 생각들이 잡고 가는 컴컴하고 기다란 길”(「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불립(不立)과 불면(不眠)의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이경림의 시가 오랫동안 붙들어온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삶은 진창에서 뒹구는 지렁이와 다를 바 없고, 우리는 “천지에 널린 고독 사이를 흘러다니”(「기수급고독원」)며 고독해진다. 시인은 묻는다. “아아, 그때, 우리/이목구비는 계셨습니까?/주둥이도 똥구멍도 계셨습니까?”(「지렁이들」)

시인은 “하고많은 목숨의 윤곽들이 거짓처럼 지워져도 그 울음만은 지우지 못하는 비밀”(「발광」)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울음뿐이었던 한생을 기억해”내고 “내용도 없이 미친 이 사랑”(「습(習)」)에 기대어 비로소 존재하고 살아가고 사랑할 힘을 얻는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질기고 긴 수천갈래 길 위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아 ‘무지공처(無地空處)’를 떠도는 일, 무수히 많은 나와 네가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며 함께 존재하고 사랑하는 일, 그러다 문득 ‘급! 고독(孤獨/高獨)’을 맞닥뜨리는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는 일임을, 이 시집은 다채로운 목소리를 통해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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