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홍 지음/ 단비

 

단비의 새 책 '쉬엄쉬엄 가도 괜찮아요'는 작은 산골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농부로 산 지 어느덧 14년이 지난 산골 농부 ‘서정홍’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은 시집이다. 서정홍은 경상남도 합천 황매산 자락의 산골 마을에서 철따라 농사를 짓고, 청년 농부들과 함께 ‘담쟁이인문학교’를 운영하면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도 하고 짬을 내어 도시 학교나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면서 지내다 어느 쓸쓸하고 고달픈 날에 절로 찾아오는 시를 반가이 맞이하며 산다. 시가 찾아오는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기에, 그에게 시는 곧 밥이다. 그런 그가 새들이 물고 찾아오는 시들, 지나가는 바람이 안고 찾아오는 시들, 봄비가 품고 찾아오는 시들을 모아 청소년 아이들과 여럿이 함께 먹고 나눌 수 있는 정갈한 시 밥상을 차려 내놓았다.

‘이 시집이 세상 밖으로 나가 어떤 생각을 낳을지 알 수가 없어요. 다만 이 시집을 읽고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넓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도시만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본다면 좋겠어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메마른 도시를 벗어나, 스승인 자연(농촌)으로 돌아와 손수 농사짓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이러한 시인의 바람을 담은 농부 시인의 삶이 묻어나는 시들은 자연이 주는 넉넉함과 흙냄새, 땀 냄새, 사람 내음이 폴폴 풍기는 향기로운 시편들로 1부는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를, 2부는 청소년들의 삶과 꿈을, 3부는 산골 농부의 삶과 꿈을, 4부는 산골 어르신들의 소박한 삶과 슬기를 그렸다. 자연 속에서 삶을 배우는 청소년들과 산골 농부의 일하며 나누는 소박한 삶, 산골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가 58편의 시들에 고봉밥으로 수북이 담겨져 있다. 

농부 시인 서정홍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도시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사는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생경한 모습들이다. 필요한 것은 부위별로 비닐팩에 담겨 얼마든지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분절된 세계가 아니다. 그가 속해 있는 세상은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두어 남을 살게끔 돕는 세상이고, 경쟁과 욕망으로 자기 것만 추구하기보다는 서로서로 도와야만 굴러가는 곳이다. 그는 세상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 그 비로 밥을 지어 / 오순도순 살아가는 곳’(‘지구는’에서)이라고 한다. 이런 시인에게 아이들의 자리는 ‘공부 잘해서 유명한 대학 가고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사는’(‘제자리’에서) 자리가 아니다. 남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더 많이 애쓰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기보다 ‘잘난 데 하나 없는 / 그냥 사람으로 // 꼴찌를 해도 좋은 / 그냥 사람으로 //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 그냥 사람으로’(‘그냥 사람으로’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고 인정하고 격려한다. 그의 앞에서라면 ‘조금 가난하게 살더라도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살고 싶어요. 눈을 감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들으며 바보처럼 환하게 웃으며’(‘제자리’에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느 한 사람도 기죽지 않고 고루고루 넉넉한 세상을 꿈꾸는 서정홍 시인에게 시는 결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시인은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스승님께 배웠다. 그래야 함께 울고 웃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러한 철학 덕분에 정말로 서정홍의 시는 읽기가 쉽다. 이해하기도 쉽다. 그렇기 때문에 따로 운율이나, 상징, 은유 등 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방편들로 분석을 하거나 공부를 해가며 시를 읽지 않아도 마음속에 편하게 시가 스며든다. ‘공부’를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시를 수업시간에 배움으로써 시를 접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서정홍의 시는 ‘시가 이렇게 편하게 읽힐 수도 있구나!’하는 놀라움과 새로움을 안겨줄 것이다. 학교와 학원, 입시 스트레스로 삭막한 아이들의 일상에 잠시 짬을 내어 시를 노래하는 여유와 낭만이 주어진다면 좋겠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