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정민아의 영화이야기

 

'생일'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생일'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잊지 말자고 했다. 세월호의 원인 규명을 막았던 정권이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그 일이 있었던 5년이 지난 지금, 많은 이의 가방에 매달려 있던 노란 리본을 이제는 찾기가 힘들어졌다. 재조사 잘하고 있겠지 하는 믿음, 그리고 울다 지쳐 애간장이 녹아 버린 유가족들의 처지에 함께 엉엉 울던 울음소리도 잦아든 지금이다.

얼마 전, 마지막 3분의 CCTV 영상이 소실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유가족은 또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이 사고의 원인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밝혀진다고 한들 자식 잃은 가족의 아픔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처럼 자리한 ‘세.월.호’, 그 아픈 세 글자를 다시 새기는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조심스레 우려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좋겠다고. 어쩔 수 없는 상처고 고통이니, 말함으로써 더 상처를 후벼 파지 말라고.

세월호 사건 이후 남겨진 가족을 그리는 영화 '생일'의 제작 발표 소식이 들려오자 덧붙일 말을 잃었다. 세월호 치유 다큐 '친구들'을 만든 적이 있는 신인감독 이종언은 참사 당시 팽목항으로 내려가서 봉사활동을 통해 오랫동안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친구들'은 사고 당사자들의 가족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한 채 내동댕이쳐진 참사 피해자들의 친구들의 치유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감독은 몇 년간 세월호 관련 문제와 동고동락하면서 이야기의 기초를 구성했고, 현장에서 보고 들었기에 왜곡 없이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화가 문제. 이렇듯 치열한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신인감독의 영화는 통상 독립영화로 제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일' 각본에 스타배우 전도연과 설경구가 응답했고, 영화는 상업영화로 성격을 정하고, 투자와 제작을 거쳐 현재 관객과 만날 차례가 되었다.

이야기는 세월호 사고로 떠난 아들 수호의 생일을 앞두고, 그동안 각자 떨어져 지내던 엄마 순남과 아빠 정일이 이날을 어떻게 맞게 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빠는 사고 당시 베트남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마트 캐셔로 일하는 엄마는 아들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어린 딸과 생활하는 순남은 수호의 방을 그대로 유지하고, 때때로 새 옷을 사서 걸어 놓는다. 어른들의 아픔을 헤아릴 정도로 일찍 성숙해져 버린 어린 딸은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순남은 부부 사이를 회복하고 싶은 정일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고, 유가족 활동에도 거리를 둔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유가족을 돕는 단체에서 떠나간 아이들의 생일을 특별히 기억하는 행사를 진행하자 친한 친구를 잃은 수호의 친구들도 나선다.

떠난 사람, 그를 잃은 가족, 그를 잃은 친구와 이웃. 영화는 상실감과 트라우마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그 사건을 마주하고 서로 껴안는 영화다. 세월호를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소재를 다루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문제라는, 예술 창작의 오래된 격언처럼 이 영화는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세와 시각으로 이를 표현하는가의 문제다.

세월호를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영화들이 그간 많이 만들어졌다. 2014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아이의 죽음과 남겨진 부모를 그리는 영화가 많다는 것은, 세월호 문제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살아남은 아이', '로봇, 소리', '검은 사제들', '나를 잊지 말아요', '하루' 등의 영화는 아이를 잃은 가족의 상실감과 이후 또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어려움에 대해 말한다.

 

'생일'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생일'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는 첫 번째 극영화 '생일'은 우회적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후 삶에 대한 문제는 감독이 실제로 보고 겪은 많은 경험들을 토대로 재현되었다. ‘생일’ 에피소드는 감독의 의도 없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생일 모임’ 그 모습을 그대로 따서 가져왔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전도연은 '밀양'의 주인공 신애의 연장으로 여겨지고, 설경구는 '소원'에서의 역할과 겹쳐 보인다. 그럼에도 이 무겁고도 부담스러운 역할을 기꺼이 맡아 메소드 연기의 앙상블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두 스타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아픔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선물이 될 것이다. 힐링이니, 열연이니, 화해니, 용서니, 재기니, 그 많은 수사를 덧붙이고 싶지 않다. 다만 돌아선 뒷모습에서 무겁게 느껴지는, 오늘도 살아내고 있는 우리 이웃과 나,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영화다. 노란 팔찌를 다시 꺼내 손목에 끼웠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님은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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