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을 생각한다, 여기저기 꽃 피어나는 요즈음 부쩍 많이...
그 여인을 생각한다, 여기저기 꽃 피어나는 요즈음 부쩍 많이...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9.04.10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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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옛날옛적 촌놈의 연애행각(2)

수선화가 피었을 때는 그 꽃이 그녀를 닮았구나 싶더니, 벚꽃이 만개하고 보니 이게 또 그녀를 닮아 보이고, 목련이 피었을 때는 또 목련이야말로 그녀를 쏙 빼닮았구나 싶어서 헷갈린다. 어디 그뿐이랴. 노란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그녀를 연상시키고, 붉은 동백을 보면 이게 또 그녀인 것만 같고, 심지어는 딸기조차도 그 꽃이 그녀인 것만 같아서 나는 끝도 없이 미치광이처럼 허둥거린다.

 

수선화
수선화

사람이 나이가 들면 망령이라 하는 전에 없던 녀석이 새로 찾아와서, 헛생각은 물론이요 뜬생각도 자주 하게 한다더니 그 말에 틀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봄나물을 뜯어다가 향기도 그윽한 비빔밥을 한다고, 바지런을 떠는 그녀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세상에, 까마득한 옛 시절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딴 여인을 생각하고 있으니, 이게 진정 망령이 아니고 무엇이랴.

망령을 글자 그대로 영혼이 미쳤다는 것쯤으로 해석을 한다면, 미친 사람이 스스로를 미쳤다고 말하기도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기는 한다. 대체로 미친 사람은 나 아직 안 미쳤다고 주장하고, 미치지 않은 사람은 미친 척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무엇인가 치부 같은 것을 감추려고 애쓰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까 간략하게 정리를 하자면, 나는 안 미쳤다. 망령이 든 게 아니다. 미치지도 않고, 망령이 든 것도 아니면서, 자꾸 생각나는 그 시절 그 여인의 실루엣을, 나 자신도 어찌해볼 수 없는 그 상황에 대한 변명이랄까, 알리바이 조성을 목적으로 망령이란 단어를 차용하고 있다는 자백 아닌 자백을 우선 해두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나는 그 여인을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꽃이 막 피어나는 요즈음 부쩍 많이, 자주 생각한다. 그 해의 그 겨울 그 밤에 잠깐 보았던 그 여인은 대체 누구인가.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어쩌고 하는 유행가 한 소절이 생각난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노래는 남녀가 얼싸안고 춤추는 카바레 같은 데서 자주 쓰는 음악이다.

 

목련
목련

세상에, 카바레라니. 이 무슨 불온한 상상인가. 그 시절 그녀는 내게 있어 성녀 중에 성녀였다. 요정이기도 했고, 선녀이기도 했고 천사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한밤중에, 그것도 눈이 정강이를 넘어서 허벅지에까지 차오르는 삼십 리 길을 허둥지둥 갔다가 되돌아오는 미친 짓을 차마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렇게 아무런 무서움도 없었을까. 아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무서웠다. 밤길이 무서웠던 것은 아니다. 눈이 정강이를 넘어서 허벅지까지 차오른다는 그 사실이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그녀가 무서웠다.

그녀를 보고자 그 먼 길을, 그것도 눈이 쌓인 밤길을 허위단심 걷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녀를 정말로 만나게 되면 어쩌나, 내심 두렵기만 했었다. 누가 알겠는가. 내가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 순간 어느 골목에서 그녀가 불쑥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런 우연한 순간이 나는 두려웠다.

다행히도 그런 우연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속이 상했다. 사람 세상에서 얼마든지 있음직한, 그런 좋은 우연이 왜 안 발생했는가. 섭섭하고 속이 상한 채로 돌아서는 내 발길을 겁나게도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한 사흘 제대로 앓았다. 감기 같지는 않았다. 그저 몸이 불처럼 뜨겁고 머리가 아팠고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개나리
개나리

앓고 난 뒤에는 있는 돈을 죄다 끄집어내서 들고 읍내로 달려갔다. 그녀에게 뭔가 선물을 하고 싶어서였다. 선물을 어떤 방식으로 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생각 밖이었다. 일단 서점으로 들어가서 시집을 한 권 샀다. 소월의 ‘진달래꽃’이었던가 윤동주의 ‘서시’였던가, 지금 그 기억은 분명치 않지만 둘 중에 하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예쁘게 포장한 시집을 들고 문구점으로 들어가서 일기장을 골랐다. 일기장은 종류도 많고 가격 차이도 굉장했다. 어쨌든 평범한 일기장은 내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 당시 한참 유행이었던, 이십여 페이지마다 연분홍, 보라 등등으로 색깔이 달라지면서 환상적인 배경 그림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고, 갈피마다에는 세계 명언이라든가 살갗이 오글거리는 명시 같은 것들이 적혀 있으면서 자물쇠까지 부착된, 한 마디로 말해서 고급 중에서도 고급한 일기장 한 권을 사 들고 나니 내 주머니의 돈은 완전히 떨어졌다.

선물을 사 들고 돌아올 때의 내 마음이 아주 뿌듯했던 걸로 기억된다. 있는 돈을 다 쓸어 모아서 그녀에게 줄 선물을 샀다는 거, 세상에 이보다 더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주머니에 돈이 남았다면 감동은 아마 밋밋했거나 초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하지? 드디어 그 문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직접 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녀의 집도 모르거니와, 안다 해도 그녀에게 직접 내 손으로 선물을 내민다는 것은 내가 설령 죽었다가 깨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그것은 얼굴이 활활 타오르고, 심장은 오그라들고, 손발은 덜덜 떨려서 그만 캑, 소리를 내며 죽어버릴 일이었다.

 

동백
동백

간신히 생각해낸 방법이 우체국이었다. 우체국을 활용하면 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환호작약하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런데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몰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 밤 그 수건돌리기 놀이 현장에서 누구든지, 어떤 이유로든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법도 하건만 나는 도대체가 기억이 안 났다.

다시 또 길을 나섰다. 고모님 댁에 가서 그녀의 이름을 알아낸 뒤에 우체국을 활용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밤길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갔다가 저녁 때 돌아오자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걸었지만, 막상 고모님 댁에 도착했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여쭤봐야 하는지 도통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나는 그만 고모님이 또 보고 싶어 왔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대충 시간을 때우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신통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려니 했는데 그것조차도 아니었다. 덮어놓고 그 여자 이름이 뭐냐고 물어볼 만한 배짱이나 만용 같은 것은 내게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일이라면 나는 아마 되든 안 되든 무턱대고 밀고 들어갔을 터이었다. 그런데 여자의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그렇게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뭔가 특별한 절차가, 이를테면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녀에 대해 아주 무지한 것만도 아니었다. 적어도 세 가지 정도는 그녀에 대한 단서랄까 정보가 내게 있었다. 웃을 때면 손바닥 끝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는 게 그 첫째였고, 그날 밤 수건돌리기 놀이에서 ‘동구밖 과수원 길’ 노래를 불렀다는 게 그 둘째였으며, 그녀가 부엌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쳐서 두 사람 다 화들짝 놀랐다는 게 그 세 번째였다.

마지막 것은 나와 그녀만의 특수한 개인적 체험이니 단서니 정보니 논할 사안은 못 된다 해도, 앞의 두 가지는 일반화해서 말한다 해도 이상할 까닭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문제는 계기요 상황이었다. 어떤 얘기를 끄집어내서 그쪽으로 연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

 

딸기
딸기

하지만 뭐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답이 보였다고나 할까. 그날 밤 기타를 들고 와서 ‘어느 날 여고시절’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불렀던 녀석이 불쑥 떠올라 왔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머슴아가 어쩌면 그렇게도 여성성의 목소리로 여고시절을 부를 수도 있는지 참 신기했다는 둥, 어쩌고 저쩌고 몇 마디 하다가 마침내, 드디어 그녀의 이야기를 슬쩍 끄집어냈다.

“그러고 보면 이 동네 애들은 다들 노래를 잘 하는 것 같애. 동구밖 과수원 길도 겁나게 잘 부른 노래잖어.”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고모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구밖 과수원을 누가 불렀대야?”

고모님의 그 한 마디가, 그 한 말씀이 내게는 바야흐로 구세주가 되었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내 입이 즉각 반응하고 나섰다.

“아 그 왜 웃을 때면 항상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모님의 아들이, 나와는 동갑이지만 생일이 한 달 빨라서 형으로 불러야만 하는 그 형이 아아, 하고 나섰다.

“아아, 그.”

아아, 다음에 그녀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보석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즉각 그 보석을 받아서 가슴에, 머릿속에 집어넣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몇 마디 더 인사치례로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홍매
홍매

그날 밤은 뭐랄까, 일언이 폐지하고 천국이었다. 밤이 다하도록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쓰다가 찢고, 또 쓰다가 찢기를 얼마나 했는지, 창호지가 푸름하게 밝아오는 시간이 돼서야 편지 쓰기는 끝났다. 편지라고 했지만 사실은 몇 자 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장황하게 이것저것 좋은 말이라면 생각나는 대로 무조건 다 썼지만, 너무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워서 한 줄 빼고, 또 한 줄 빼고 하다 보니 달랑 세 줄인가, 네 줄 정도만 남았다. 어쨌든 나는 그 편지를 시집 속에 집어넣고, 자물쇠 달린 일기장과 함께 정성껏 포장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돈이 없다. 무슨 돈으로 소포를 보내지? 하는 수 없었다. 동네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일가친척 여동생 중에 한 명을 찾아가서 돈을 꾸기로 했다.

드디어 보냈다.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녀는 내가 보낸 선물을 잘 받았다고 답을 할까? 안 할까?

하루는 엄청나게 행복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이틀째도 행복했다. 사흘째도 그럭저럭 행복했다. 그리고 나흘째부터, 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서부터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울 것만 같아지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났다. 고모님 댁을 다시 찾아가 보기로 했다. 가서 무엇을 어찌 할 수 있을까마는, 안 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그때 마침 나한테 돈을 꾸어줬던 한 살 아래의 사촌 여동생이 찾아왔다. 그 순간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 시방 아산 고모네 갈란디, 너 항꼬 안 갈래?”

 

산수유
산수유

그랬다. 사촌 여동생을 데려가면 뭔가 대단한 수가 생길 것만 같았다. 미끼도 던졌다. 고모네 동네에 기타를 아주 멋들어지게 치는 남학생이 있다고, 여고시절 노래를 무지하게 잘 한다고, 그렇게 미끼를 던졌더니 사촌 여동생 왈 정말? 정말?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내고 정말 소리를 다섯 번이나 연거푸 쏟아내더니 좋다고, 함께 가겠다고, 집에 가서 준비를 하고 오겠다며 뛰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사촌 여동생 그녀가 왔는데 세상에나, 혼자가 아니었다. 무려 다섯 명이나 여동생들을 더 데려왔다. 그 당시 우리 동네는 씨족 마을이어서 모두가 친척들이었다. 사촌부터 오촌, 육촌, 구촌까지, 집에서 밖으로 나가면 나가는 순간부터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친척이었다. 그 친척들이 이상하게도 아이를 낳았다 하면 다섯 중에 넷은 딸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엄청나게 많은 누나와 여동생을 두고 있었고, 그런 사실 자체가 때로는 까닭도 없이 창피해서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여동생을 한두 명도 여섯이나 데리고 고모님 댁으로 가면 고모님은 틀림없이 입이 귀에 걸릴 것이고, 그리하여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환영행사를 개최할 것이고, 그러면 내가 보낸 선물을 받고서도 한 달이 넘도록 침묵하고 있는 그녀도 결국은 얼굴을 내밀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가슴에 가득 안고 보무도 당당하게 나는 길을 나섰다. 물론 여동생들에게는 그런저런 모든 사실 일체를 비밀에 붙인 채로.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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