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깎여진 절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을 발하고…
일제에 의해 깎여진 절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을 발하고…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9.04.16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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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 마실하기] 창신동 돌산마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 서울 한복판에선 보기 드문 독특한 모습을 한 마을이 있다. 이화동과 같이 서울 동쪽 성곽에 등을 마주 대고 있는 창신동. 그 안쪽 그늘지고 주름진 동네 깊은 곳,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 밑에 저마다 다양한 형상의 집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동네. 바로 돌산마을이다.

 

절개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조선시대에만 해도 이곳은 깊은 산이었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단종과 이별한 뒤 64년 간 홀로 지낸 곳이기도 하단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느라 산을 깎아서 돌을 채석해갔다. 그렇게 쓰임을 다한 절개지는 아찔한 절벽만 남겨졌다. 60년대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상경한 이주민과 피난민이 모이며 판자촌으로 변신했다. 특히 가까운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렀다. 엄청난 경사가 있는 마을이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이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오래된 주택을 모두 헐어내고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뉴타운 사업이 추진됐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해제됐다. 전면 개발 대신, 동네 본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도로를 넓히거나 주차장, 놀이터 같은 공동 시설 등을 만들어 거주 여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 찾아가보았다.

 

창신초등학교 뒤편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길을 따라 죽 걸으니 곧바로 절벽마을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이어진다. 경사가 급하지만 그 계단을 따라 빼곡하게 집들이 모여 있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오르지 못 한다. 오로지 사람만 오를 수 있다.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는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아마 집을 보러 다니는 모양이다. 동네가 가파르고 계단이 많지만 조용하고 한적해 찾는 사람이 많다. 계단으로 계속 올라간다. 끝도 없는 계단길에 숨이 가쁘게 차오른다. 옹기종기 붙어있는 집들을 구경하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집 사이 좁은 골목길, 낮은 담벼락, 계단에 내놓은 빨래건조대, 고소한 밥 짓는 냄새가 정겹다. 아파트, 빌라가 대부분인 요즘 점점 잊혀지는, 잃고 있는 풍경이다.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정상(?)에 올랐다. 하늘과 바로 맞닿을 것만 같다. 거리는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하다. 높은 지대여서인지 바람이 꽤 세차게 분다. 바로 앞엔 넓은 공영주차장이 있다. 공영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니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높은 건물들이 전부 발아래 있다. 주차장이 높은 절벽 끝에 있어서다. 주차장 옆쪽엔 ‘창신소통공작소’가 있다. 창신동 주민을 상대로 공구도 대여하고 공작방 등도 운영하는 것이다. 예술 동아리나 재능 배우기 등을 할 수 있다. 마침 1층에서 나무를 깎고 있다. 2층에선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전망대 역할을 한다. 주민들이 애용하는 공간이 틀림없다.

 

공작소에서 나와 조금 더 내려가니 산마루 놀이터가 보인다. 놀이터에서 꺄르르 웃으며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 조기교육 열풍으로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책상 앞에만 앉아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놀이터 근처 담벼락엔 돌산마을을 지키는 길고양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경계심이 많아 금세 달아나 버렸지만 사진 한 컷을 건져냈다.

산마루 놀이터와 공작소 사이로 내려가면 유명한 집이 나온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유인나의 집, ‘시크릿 가든’에선 하지원의 집으로 나와 유명해진 집이다. 겉보기엔 그냥 사람 사는 집인데 인기 있는 드라마에 두 번이나 나왔다니 대스타의 집이라도 보는 것 같다.

 

발 닿는 대로 무작정 걸어본다. 좁은 골목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골목사이로 내려가는 계단들이 보인다. 어디로든 내려가도 된다. 끌리는 곳으로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창신동 봉제골목에 다다른다. 봉제골목은 얼마 전 방문한 경험이 있어 내려가지 않았다. 걷다보니 어느새 돌산마을 조망점에 도착했다. 절개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높은 절벽 그 아래로 펼쳐진 마을이 장관이다. 돌산마을에 온 사람이라면 이 조망점에서 꼭 인증사진을 찍고 간다. 셔터를 빠르게 눌러본다. 조망점 아래로는 위태로운 철계단이 이어지니 주의하자. 철계단을 내려가니 주택들의 담벼락이 이어진다. 조망점까지 이어지는 담벼락 마다에 벽화를 그려놓았다. ‘창신동의 명물로 자리잡은 아슬아한 절벽!’ ‘계절 따라 자연의 그림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에 마음을 설레게 하누나~’ 등 재치 있는 문구들이 보인다.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골목골목을 따라 갔다. 길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걷는다. 점점 지대가 높아질수록 집들의 지붕이 보이고 옥탑도 보인다. 옥탑엔 빨래를 걸어놓기도 하고, 평상을 놓기도 하고, 장독대나 창고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유명한 연극 ‘옥탑방 고양이’가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단다. 옥탑의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이번엔 반대편 절개지를 따라 내려간다. 반대편으론 아직 남아있는 판잣집들이 보인다.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 살고 있기는 하는 걸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픈 과거를 가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마을을 지켜낸 주민들 덕에 돌산마을은 이젠 빛을 발하고 있다. 유난히 햇살을 많이 받고 있던 동네다. 날씨가 맑은 탓이었겠지만 깎여진 절벽은 언제 아팠냐는 듯 멋스러움만 뽐내고 있었다. 그 앞을 돌산마을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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